우리 부부의 선물 이야기

by Geoff Jung

나와 아내는 3년의 연애와 39년의 결혼 생활 동안 많은 선물을 주고받았다 - 액자, 귀걸이, 목걸이, 반지, 팔찌, 시계, 타이, 벨트, 쵸코렛, 옷 등등. 수많은 물건들이 오갔지만, 그중에서도 특히 기억에 남는 선물들이 있다.


첫 번째 선물 — 내 인생 첫 해외여행에서의 액자


1982년 겨울방학, 나는 대학에서 주관하는 2주짜리 미국 연수 프로그램에 참가하게 되었다.

당시는 해외여행이 자유화되기 전이라 외국에 나간다는 것이 매우 특별한 일이었다.


대한항공에서 항공료를 지원하고, 지상비 약 200만 원은 자비로 부담해야 했는데, 당시 대학 등록금이 20만 원 정도였으니 결코 적은 금액이 아니었다. 다행히 부모님이 “좋은 기회니 다녀오라”고 지원해 주셔서 내 인생 첫 해외여행길에 오를 수 있었다.


그 당시 해외여행을 하려면 안기부 (현재의 국정원)에서 하는 보안 교육과 기타 연수 교육을 수료해야만 했다. 교육을 받으려고 가보니 같은 대학교에서 선발된 30여 명이 일행이었다.


뉴욕, 워싱턴 D.C., 보스턴을 여행하며 자유무역센터(9·11로 무너진 그곳),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 자유의 여신상, 컬럼비아 대학교, 백악관, 국회의사당, 하버드와 MIT까지 방문했다. 그 여행은 내 인생의 시야를 넓혀준 전환점이었다.


뉴욕의 한 쇼핑몰에서 Hallmark 선물점에 들렀을 때, 발레리나 사진이 들어간 나무 액자 하나가 눈에 띄었다. 나는 그 액자를 구입했고, 1년 후 아내와 사귀기 시작한 지 100일째 되던 날 선물로 주었다.


액자 뒷면에는 당시 유행하던 레트라세트(Letraset)로 “I will love you more and more every day.”

라는 문구를 옮겨 적었다. (레트라세트란 얇은 비닐 시트에 알파벳, 숫자, 기호가 인쇄되어 있어서 원하는 글자를 물건에 올린 뒤, 펜이나 막대로 문질러 글자를 하나하나씩 옮기는 것이다.) 당시로서는 꽤 로맨틱한 표현이었고, 아내는 감동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


그 액자는 지금도 캐나다에 있는 서랍 속에 고이 보관되어 있다.

ChatGPT에게 “40여 년 전 미국 홀마크에서 판매하던 발레리나가 있는 나무 액자 사진을 찾아줘”라고 했더니, 놀랍게도 그 정확한 액자를 찾아주는 바람에 40년 전의 추억이 되살아났다. 기가 막히도록 놀라운 ChatGPT!

OIP_(1).jpg?type=w773
OIP_(2).jpg?type=w773 레트라세트 용지

두 번째 선물 — 아내가 손으로 만든 연애 일기장


우리가 만난 지 1년이 되던 날, 아내는 손수 만든 작은 노트를 나에게 선물했다. 요즘 말로 하면 ‘다꾸(다이어리 꾸미기)’ 같은 것이었다. 언제, 어디서 만났는지, 어떤 대화를 나눴는지, 함께 본 영화표와 놀이공원 입장권, 손으로 직접 그린 삽화, 그리고 만남 속에서 느꼈던 감정들까지 정성스럽게 기록해 놓았다.


나는 그 노트를 펼치는 순간 눈물이 날 만큼 감동했다. 그렇게 진심과 정성이 담긴 선물은 평생 처음이었다. 그 노트 또한 지금까지 캐나다에 있는 서랍 속에 소중하게 보관되어 있다.


세 번째 선물 — 아내의 마지막 생일 선물, 안마 의자


2024년 9월 내 생일을 앞두고 아내는 내게 말했다. “여보, 이번 생일에는 안마 의자를 사줄게요.”


사실 나는 오래전부터 안마기에 관심이 많았다.

에드먼턴 시절, 아내의 대모님이 미건 안마기 대리점을 운영하셔서 종종 찾아가 무료로 ‘체험’을 하곤 했었다.

한국에 돌아온 뒤에도 세라젬과 바디프렌드 매장을 오가며 체험을 했지만, ‘우리가 한국에 얼마나 오래 머물지 모른다’는 이유로 늘 구입을 미뤄왔다.


그런데 그해 아내가 “내 비자금으로 사줄게요”라며 직접 나섰다.

결국 우리는 당근마켓에서 가성비 높은 출시된 지 2년 된 바디프렌드 중고 모델을 찾았다. 설치 기사를 불러 생일 당일 아침에 집으로 옮겨왔다.

그날 아침, 나는 아내의 선물을 받고 안마 의자에 앉아 행복하게 웃었다. 아내도 내 미소를 보고 흐뭇해했다.


지금도 그 의자를 거의 매일 사용한다. 아내의 손길처럼 내 피로를 풀어주는 고마운 선물이다.

그것이 아내가 내게 남긴 마지막 선물이 되었다.

ppp.jpg?type=w773



네 번째 선물 — 아내를 위한 마지막 스카프


결혼 39주년 기념일은 아내가 세상을 떠나기 불과 나흘 전이었다. 어쩌면 이번이 생전 마지막 결혼기념일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나는 꼭 선물을 준비하고 싶었다. 아내가 좋아하던 보라색의 실크 스카프를 떠올렸다.


아내 병문안을 위해 한국을 곧 방문하는 딸에게 캐나다 밴쿠버 공항 면세점에서 사 오라 부탁했지만, 적당한 것이 없어 결국 한국 온라인몰에서 주문했다. 다행히 다음 날 기념일 아침에 도착했고, 나는 그 스카프를 들고 병원으로 달려갔다.


하지만 아내는 반응을 보일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고, 여러 기기에 연결되어 있어서 스카프를 목에 둘러줄 수도 없는 상태였다. 그날 나는 스카프를 조심스레 집으로 가져와 보관했다.


며칠 후, 입관식 날 아침, 나는 장례업체 직원에게 그 스카프를 건네며 말했다.

“이걸 아내의 목에 꼭 둘러주세요.”

입관식장에서 아내의 모습을 보았을 때, 보라색 실크 스카프가 목에 아름답게 둘러져 있었다.

생전에도 보라색이 잘 어울렸지만, 그날은 유난히 평온하고 고왔다.

그렇게 아내는 나의 마지막 선물을 두르고 나와 작별했다.


그리고 나는 지금도 바라고 있다.

“다시 만나는 날, 그 스카프를 두르고 나를 반겨주길…”

temp_1760194407544.1686675426.jpeg?type=w773

선물에 담긴 사랑의 시간들


세상에는 값비싼 보석보다 더 소중한 선물이 있다. 그건 정성과 기억, 그리고 사랑의 시간이다.


아내와 내가 주고받은 선물들은 단순한 물건이 아니라, 우리가 함께 걸어온 인생의 이정표였다.

그 안에는 설렘, 감사, 위로, 그리고 영원한 사랑이 담겨 있다.


이제 그 선물들은 내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다.

아내는 여전히 나를 미소로 바라보고, 나는 매일 그 미소를 떠올리며 살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