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학교일기

그 아이가 웃는 이유를 알았다

생활교육위원회 참석은 기분이 나쁘다

by 수연행

개학 후 한 달여만에 1차 생활교육위원회가 열렸다. 과거 우리 때 용어로는 선도위원회.


개학 첫날부터 노란 머리 아이가 1학년 교실을 막 들어와서 휘젓고 다닌다는 제보가 들어왔다. 작년에도 다니고 있었던 아이일 텐데 처음 보는 3학년 남자아이.

놀란 1학년들이 교무실로 뛰어오고 선생님들은 무슨 일인가 싶어 지도를 하러 갔더니, 교복도 입지 않고 빛바랜 검은색 후드티셔츠를 입고 허용되지 않는 슬리퍼를 끌며 머리카락은 노랗게 염색한 아이가 1반 교실 앞에서 소란을 피우고 있었다.

마음대로 교실로 들어가서 돌아다니고 교실문을 두드리고 창문을 확 열고...

복도에서 다른 선생님들이 제지하고 오라고 해도 듣지 않고 도망가던 아이...

그게 시작이었다.


그 후로도 계속 쉬는 시간마다 심심하면 올라와서 난리를 치고 갔다. 결국 선생님들이 돌아가며 복도 순회를 하고 특히 1반 앞을 주시하며 지켰다. 3학년부와 인권부, 교감선생님께도 말씀드려서 협조를 구했다. 알고 보니 3학년에서 가장 주목받는 아이 중에 한 명이었고 3학년부에서도 너무너무 힘들어하는 상황이었다.


하루는 그 학생이 1반에 와서 한 여학생의 멱살을 잡고 끌고 나갔더랬다. 그다음 쉬는 시간에도 또 올라와서 행패(?)를 부리고는 나름 자기는 이유가 있다고 떠들어댔다. 한두 명의 선생님들이 내려가라고 말을 하는 건 전혀 듣지 않았고 그 와중에 한 선생님과 실랑이가 벌어졌다. 선생님은 화를 냈고 아이는 욕설을 하며 계속 오려고 했고 1학년 교실에 못 오게 막는 선생님을 그 아이가 밀치기까지 하였다. 뒤늦게 여러 명의 선생님이 달려가 그 아이를 내려보낼 수 있었다.


한 달여간 이 아이가 학교에 등교를 하는 날이면 으레 하루 한 번씩은 마음대로 올라왔다 내려갔고 어쩌다 안 올라오는 날은 결석을 했거나 일찍 조퇴를 한 날이었다.


학년부장으로서 이 사태의 심각성은 진즉에 알고 대처를 위해 애썼지만 학교 차원에서 정말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3학년에서 그 아이의 담임과 학년부장이 여러 차례 상담을 하고 지도증을 주고 집에 연락해 부모님과 상담을 하여도 달라지는 건 없었다. 우리 학년 선생님을 밀친 사건으로 교권보호위원회를 열 수도 있었지만 그 과정이 또한 험난하여 정작 당사자인 선생님께서 이 사건은 교사지시 불이행 등으로 인한 선도로 넘기겠다 하셨고, 해당 1학년 여학생의 부모님은 그날의 일로 학폭 신고를 하여 학폭이 진행 중이다.


그렇게 한 달 하고 조금 넘은 오늘 그 아이를 비롯한 몇 명의 학생에 대한 생활교육위원회가 열린 것이다. 흡연 및 무단외출로 인한 2학년 아이들의 선도 이후 3학년의 가장 어려운 두 명의 차례였다. '생활교육위원회'라는 걸 교직 생활 20년 만에 처음 참여한 나로서는 긴장도 되고 떨리기도 하고 마음이 참 복잡했다. 그것도 학년부장이라는 타이틀로 그 자리에 앉아 있자니 말이다.


마지막 순서로 그 아이가 들어왔다. 역시나 교복도 입지 않고 낡고 빛바랜 검은색 티셔츠를 입은 채 삐딱하게 앉았다. 먼저 인권부에서 그 아이의 잘못들을 이야기하고 본인의 인정 여부를 물었다. 다음은 3학년부장님이 차근차근 침착하게 아이에게 잘못한 사실들을 열거하고 앞으로의 약속을 물었다. 그때까지는 평범한 듯 보이는 아이의 대답...

나도 1학년부장으로서 그동안 이 아이를 지도하느라, 이 아이로부터 우리 1학년들을 지켜내느라(?) 고생한 걸 생각하며 질문을 했다. 앞으로는 우리 1학년 교실로 오지 않겠다고 약속을 할 수 있겠는지..

"네~"라고 대답하는 그 아이의 얼굴에 알 수 없는 웃음기가 돌았다.

아이의 대답과 약속이 정말 지켜지지 않을 수도 있다고 생각은 했지만, 그 웃음을 보는 순간 얼굴이 화끈거렸다.

지금 내 질문에 대한 대답을 저딴식으로 한다고?

숨을 한번 깊이 들이쉬는 순간 나도 모르게 내 얼굴에 냉소가 번졌다. 그동안 1학년 아이들을, 1학년 담임선생님들을 그렇게 힘들게 하더니 진지한 반성은 1도 없구나... 하는...

그 아이의 알 수 없는 웃음에 나도 알 수 없는 비아냥이 섞인 웃음이 나왔다.

결국 인권부와 3학년부에서 아이의 태도를 나무라고 아이는 겨우 이상한 웃음을 참았으며 그렇게 그렇게 생활교육위원회가 마무리되었다.


그날따라 교감선생님께서 자리하지 못해서일까...

아이에게 학교는 얼마큼의 권위가 있는 공간일까...

저 아이에게 학교 선생님들은 어떤 존재일까...


답도 없는 질문들을 머릿속으로 해대며 퇴근하는 차 안에서 마음이 너무도 착잡했다.

학교에서 어찌할 수 없는 아이들, 다른 잘못으로 선도에 넘어온 아이들의 징계 수위를 위원들과 의논해서 가장 타당한 수준으로 정했는데 마음이 깔끔하지가 않다.


바르게 커나가길 바라는 마음에서, 잘못된 것이 무엇이고 하면 안 되는 것이 무엇인지 알게 해주는 과정에서 어쩔 수 없이 선도를 하고 '징계'를 내리는 것이지만 마음이 그랬다.


집에 가는 내내 커피 열 잔은 마셔 속이 화끈거리는 느낌처럼 내 속과 마음이 계속 뜨겁게 데어있는 느낌이었다.


그 아이는 왜 웃었을까...


집에 가서 세수하면서 생각이 났다.

그 상황의 머쓱함을 모면하기 위한 웃음... 딱 그거였다.

진지하게 반성하지 않는다는 건 이미 알고 있던 부분이었고, 그 자리가 어색하고 이상하고 힘들고 불편하고 무안하고 등등... 그런 감정.


어머니도 안 계시고 아버지가 계시지만 몸이 편찮으셔서 아이를 잘 돌볼 수 없는 가정환경...

어릴 때부터 어떻게 커왔을지 짐작이 가는,

내가, 우리가 그나마 이 아이를 안쓰럽게 봐야 하는 한 부분이다.


제발 이대로 말고 조금만 더 제대로 바르게 커줬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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