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 두 번의 경매

by 수연행

남들은 살면서 한 번도 겪지 않을지도 모르는 일.


경매...


그래도 사회적으로 남편이나 나나 괜찮은 학벌에 먹고살 만한 직업을 갖고 살았고 살고 있는 사람인데..


우리는 돈과 집과는 거리가 먼 사람들일까..


나의 첫 번째 경매는 약 20여 년 전이었나 보다.

신혼 초 뭣도 모르고 덜컥 대형 오피스텔을 돈 없이 사서는 그 대출금을 갚지 못해 생전 처음 경매라는 걸 겪어보았다. 결혼할 때 양가집으로부터 집과 관련한 지원은 한 푼도 받지 못했으나 둘 다 번듯한 직장이 있었기에 겁이 없었던 거지..

돈 개념도 경제관념도 없던 때라 '경매'라는 두 글자는 너무도 무섭고 크게 다가왔었다. 나름 똑똑하고 아는 것 많은 줄 알았던 남편도 그 당시에는 잘 몰랐던 거 같다. 그런 남편만 믿고 어떻게든 되겠지 하며 집을 덜컥 사서는 그 지경이 되었으니...

지금 생각하면 경매 넘어가지 않도록 하는 다른 방법들도 분명 있었을 텐데 그걸 몰랐었다.


주위에 도움 청할 사람도 없어 그나마 시댁에 시어머니께 어렵게 말씀드렸었다. 어머님이 부산에서 서울까지 올라오셔서 그날 하룻밤 주무시고는 별말씀 없이 그냥 내려가셨다. 어머님께서 보시기에 도와주셨을 때 크게 도움이 안 된다고 판단하셨던 듯싶다.


그땐 세상이 다 끝난 것만 같았는데, 끝나지 않았다.

지금도 이렇게 멀쩡히 잘 살고 있는 걸 보면...

아니.. 멀쩡하진 않는 걸까..


도대체 뭐 하고 살았냐... 이렇게 답답하고 한숨 섞인 목소리로 나무라보아도... 아직도 답답하다.

악착같이 벌어서 돈 모으고 살았어야 하는데... 부끄럽다.


약 2년 전 우리 형편보다 조금 좋은 집으로 이사를 했었다. 당연히 비싸니까.. 전세로..

이사 와서 잘 살고 있는데 1년 반 지나서 집주인에게 연락이 왔다.

집주인 사업이 잘 안돼서 집이 경매로 넘어갈 거 같다고...


다행히 우린 전세계약할 때 전세보증보험에 가입을 해서 보증금이 떼일 일은 없었다.

그러나 그때부터 가슴에 돌 하나가 생겼다.

우선 허그에 연락해서 이런 경우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아보았다. 뭐라 뭐라 하는데 도통 무슨 말인지...

결국 안전하게 하자 싶어 법무사를 통해서 임차권 등기, 배당요구, 법원, 이행청구 신청 등등 때마다 해야 할 일은 너무 많았고 제출할 서류도 많았다. 게다가 허그는 담당자와 통화 연결도 너무 어려웠고 상담사는 자세한 내용보다는 원론적인 내용만 알려줄 뿐이었다.

그렇게 지나온 게 지난 가을과 겨울, 봄까지였다.


우린 지금 살고 있는 집에서 이사를 하고 싶은 생각이 없었기에 되도록 늦게 다른 곳으로 가고 싶었다. 1차 경매가 넘어갔을 때는 가격이 너무 높아서 유찰이 되었다고 했다. 남편말로는 이 동네 경매 나온 곳도 많고 가격이 더 내려가야지 낙찰될 거니 당분간은 시간이 있다고 했다. 그래. 그럼 올 겨울 즈음 큰 아이 수능 끝나고 움직이면 딱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뭔가 시간도 벌고 아이들에게 할 말도 만들고...


그러다 7월에 지금 집을 중개해 준 부동산에서 전화가 왔다. 그동안 몰랐었다고 지금 누가 낙찰을 받았다는데 집을 알아봐야 하는 거 아니냐고..

벌써? 유찰된 지 한 달 만에 누가 낙찰을 받았지 싶어 가격을 물어보니 생각보다 높은 가격인데 어떤 아저씨가 받았다고 한다. 그렇지만 아직 잔금을 납부한 건 아니라 두고 봐야겠다고 생각하던 찰나, 낙찰자가 전화를 해왔다. 앞으로 이사계획이 어떻게 되냐고, 자기가 낙찰받아서 언제까지 잔금을 낼 거라고...

그때부턴 가슴에 돌덩이가 바위덩이가 된 거 같았다.

그 후로도 물론 아주 점잖은 척 연락이 왔지만 전화나 문자가 올 때마다 숨이 턱턱 막혔다.

내가 원하지 않는데 이사를 가야 하고 원하지 않는데 이런 전화를 받아야 하고 시간에 쫓기듯 뭔가를 결정해야 한다는 사실이 너무 싫었다.

게다가 지금 집도 세를 줄 거라는데 그 조건이 터무니없이 높은 가격이었다.

도대체 시세를 알고 하는 소린지... 가만 보니 경매를 처음 배워 어설프게 배운 대로 하는 모양새다.

하긴 이 가격에 낙찰받은 것만 봐도 이상하니..


그래.

이사를 가야 한다면 방학 중에 가는 게 낫겠다 싶어 오늘 부동산을 통해 몇 군데를 둘러보았다.

오전에 다섯 군데를 둘러보았고 있다가 또 두 군데를 더 보기로 했다.

매매를 해버릴까 생각도 해봤다. 더 이상 집으로 고생하고 싶진 않아서...

그러나 그러기엔 부담이 크고 그렇다고 아예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가기엔 둘째 학교랑 친구관계 등도 마음에 걸렸다. 둘째가 초등, 중등 다닐 때까지만이라도 이 아파트 단지에서 계속 살고 싶기에..


'그동안 뭐 했어... 그동안 뭐 하고 살았어......'

또 마음속으로 후회와 한숨과 자책이 밀려온다.


돈을 버는 능력과 모으는 능력, 불리는 능력이 다 다르다고 하더니만, 이제 보니 남편은 버는 능력과 쓰는 능력이 탁월한 사람이고 나는 적당히 벌고 적당히 모으는 능력이 있는 사람이었다.

아무리 해도 바뀌지 않는 남편과 나..

평생 이 꼬락서니로 살아갈까 봐 두렵다.


주위 아무도 모른다.

아무에게도 말 한마디 못하고 안 하고 산다.

그래서 가슴속 바위 덩어리가 더 무겁다...


내일 친정 가기로 했는데...ㅠㅠ

6개월 만에 보는 늙은 엄마, 아빠...

두 분께 최고의 자랑인 막내딸....

절대 걱정 끼쳐드리고 싶지 않으니

조용히 그냥 조용히 다녀와야겠다.


막내딸 잘 살고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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