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시세끼 엄마밥을 먹고 집으로 가는 길

by 수연행

오늘도 두 손 꼭 모으고 마치 소녀처럼 서 있다. 부산역에서 딸과 손주를 기차에 태워 보내는 엄마의 모습이다. 창밖으로 잘 보이지도 않는데 기차가 출발할 때까지 손을 흔들고 또 흔들고 몇 분 동안을 계속 그렇게 서있다.


방학이 다가오면 긴장이 풀려서인지 늘 여기저기 아프다. 그게 몸살이든 감기든 급체든, 하나씩은 꼭 앓고 지나가야 한다. 한 학기 동안 에너지를 다 소진하고 방전되기 직전..

그럴 때 생각나는 게 바로 엄마밥이다. 고기나 기름진 게 별로 없고 풀때기 반찬만 그득해도 그게 너무 맛있다.

이번에도 엄마가 " 뭐 먹고 싶노?" 물었다.

바로 대답했다. 고구마줄기볶음, 꽈리고추무침, 그리고 엄마표 잔치국수...

"그거야 얼마든지 해줄 수 있지. 다른 건 없나?"

"엄마 손주가 할머니 곰국 먹고 싶대~"

"곰국도 벌써 다 해놨다. 소비쿠폰 받아가 곰거리 샀지"


둘째 방학하고 바로 출발했다. 열차가 지연돼서 30분 정도 늦게 부산역에 도착했는데, 엄마는 무려 한 시간도 전에 나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방학 때마다 역에서 엄마를 만날 땐 살짝 기대반 걱정반이다. 그동안 너무 늙어버린 모습은 아닐지, 얼굴빛이 괜찮을지, 오랜만에 만나는 엄마 얼굴이 어두워 보이거나 살이 빠진 거 같거나 하면 그게 그렇게 속상하다. 다행히 이번엔 걱정만큼 많이 늙어 보이지 않고 얼굴이 환해져서 예뻐 보였다. 마음이 놓였다. 멀리서 보자마자 속으로 '다행이다' 생각했다.


친정 가서 가장 좋은 건 아침에 눈뜨자마자 먹는 아침밥이다. 잠결에 맛있는 밥 냄새가 풍기고 된장찌개의 보글보글 끓는 소리가 들리고 방아잎을 넣어 바삭하게 부친 부추전 냄새가 나면 없던 식욕이 솟구쳐서 안 먹을 수가 없다.


보통 주부들이 하는 말, 남이 차려준 밥은 다 맛있다는 건데, 하물며 엄마가 차려준 밥이 얼마나 맛있겠나...


첫날 저녁 도착하자마자 저녁식사를 했다. 다이어트고 뭐고 순식간에 밥 두 그릇과 곰국 한 그릇을 먹어치웠다. 밥 두 그릇을 먹는 게 얼마만인지...


집에서는 조금만 많이 먹어도 소화가 안돼서 힘들어하던 나였는데.. 엄마밥은 그렇게 먹어도 밥때가 되면 또 입맛이 땡기고 소화가 잘 되는 미스터리...


이렇게 4박 5일간 엄마밥도 먹고 외식도 하고 집으로 가는 길...

몸무게는 늘고 배는 나왔지만 그만큼 힘을 얻고 간다.

또 열심히 살아갈 힘을...

충분히 빈둥거렸고 충분히 잠을 잤고 친구도 편하게 만났고 엄마아빠와 여유로운 시간을 보냈더니, 이제 남은 방학을 뭘 하고 어떻게 보낼지 계획도 떠오르고 의욕도 생기고 책 속의 글자도 천천히 깊숙이 다가온다.


허기진 내 속을 엄마밥으로 가득 채우고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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