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패밀리

오늘도 손주와 영상 통화하셨나요?

by 로아 할아버지

[장면 1]

‘로아야, 안녕, 아빠야, 아빠!

우리 로아 잘 놀고 잘 먹고 있지?

아빠 보고 싶지? 아빠가 돌아갈 때까지 며칠만 참아, 알았지?‘


지난주 뉴욕 출장의 바쁜 일정 중에 수현이는 하루도 빠짐없이 로아와 영상 통화 시간을 가졌다. 아빠는 로아가 알아듣지 못해도 연신 로아에게 말을 건다. 로아는 아빠의 기대에 부응해 주며 화면 속 아빠의 모습과 목소리에 환한 미소로 반응을 보인다. 아빠로서는 로아와의 영상 통화에서 그날그날의 피로를 풀어낸다. 로아는 아빠에게 피로회복제다.



[장면 2]

‘로아야, 안녕, 할머니야, 할머니!

할머니 곧 연주해야 하는데, 로아가 파이팅해줘.

하이파이브! 할머니 최고! 이렇게’


로아와 자주 볼 수 없는 아내는 내가 로아 육아하는 날이면 거의 매일, 하루에 적어도 두 번 이상은 로아와 영상 통화를 한다. 로아는 영상 속 할머니 모습과 목소리에 매력적인 미소로 반응을 보인다. 아내는 중요한 일을 앞두고는 나보다 로아를 더 찾는다. 할머니가 내민 손에 로아는 기특하게도 곧잘 자기 손을 뻗어 하이파이브 흉내도 낸다. 로아는 할머니에게 치어리더다.





[장면 3]

‘로아야, 백일 축하해!

삼촌이야. 우리 로아 무럭무럭 잘 커.

삼촌이 나중에 예쁜 선물 사줄게.‘


로아의 백일 잔치날에 미국에 있는 삼촌이 영상으로 로아에게 축하 말을 건네주었다. 실제로는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삼촌이지만, 로아는 영상 속 삼촌에게서 눈을 떼지 않고 웃어주기까지 하며 삼촌을 감동하게 한다. 이 영상이 담긴 스마트폰을 로아 품에 안고 찍은 사진을 삼촌은 지금도 카톡 프로필 사진으로 쓰고 있다. 로아에게 삼촌은 선물 바우처다.



이렇게 로아가 태어난 이후 우리 가족은 로아를 중심으로 ‘네트워크 가족’이 되었다. 코로나 상황 이전부터 보편화된 영상 통화가 코로나 상황 이후로는 가족이나 친구 사이의 사적인 소통이나 비즈니스 소통과 처리에서 실제 만남을 급격하게 대체해오고 있다.


할머니 할아버지에게 손주와의 소통에서 영상 통화는 더더욱 유용하다. 멀리 떨어져 사는 자식의 집에 건강상으로나 다른 이유로 자주 방문하기 어려운 조부모로서는 손주와의 영상 통화를 통한 연결과 소통은 물리적 거리 문제를 해소해주고 편리하게 자주 접촉할 수 있게 해주는 유용한 도구가 되었다.



영상 통화가 이처럼 유용하고 편리한 소통 수단인 점은 분명하지만, 직접적인 만남과 소통을 대체하지는 못한다는 점 또한 사실이다. 특히, 로아와 같은 아기와의 소통과 관계 형성에서 영상 통화는 아주 제한적이라는 점은 경험으로 확인한다. 무엇보다 직접적인 애착 관계 형성이 먼저다. 할머니 할아버지 품에 안겨 체온을 느끼고 자신을 내려다보는 따뜻한 시선과 사랑이 뚝뚝 떨어지는 표정에 담긴 감흥을 직접 받을 때, 아기는 할머니 할아버지와 강한 애착을 쌓아간다.


그러니 손주와의 영상을 통해 애착 관계를 이어가면서 소통하고 싶은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먼저 손주를 품에 안는 기회를 자주 얻는 것이 먼저다. 애착 관계가 형성되기 이전에는 할머니나 할아버지라도 영상 속 모습은 아기에게는 텔레비전 화면 속에 등장하는 사람들처럼 그저 이미지에 불과한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아기가 할머니 할아버지의 얼굴을 기억하는 데는 얼마나 걸릴까?

아기들은 어느 형태나 모습보다도 사람의 얼굴에 가장 많이 이끌리고 가장 오랜 시선을 집중한다고 하지만 엄마의 얼굴을 구별하는 데도 생후 만 3개월이 되어야 가능하다고 한다.


할머니 할아버지를 알아보는 데는 얼마나 걸릴까?

얼굴을 보는 빈도수에 따라 다르겠지만, 매주 한 차례씩 볼 경우, 아기가 6개월에서 9개월 사이에 할머니 할아버지를 알아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매일 본다면 당연히 그 시기는 훨씬 앞당겨지겠지만. 로아가 태어난 지 약 3개월 되는 시기부터 매주 3일씩 낮에 거의 전담해온 이 할아버지를 온전히 알아보기 시작한 것은 로아가 5개월에 접어들고 부터이니, 아기와의 애착 관계 형성에는 함께 보내는 시간과 횟수가 적지 않게 필요한 것은 분명하다.



‘매주 한 차례 만남과 6개월 경과.’

이 공식이 성립되기 훨씬 이전에도 아기들은 할머니 할아버지에게 웃음을 지어주고 반응을 보임으로써 마음을 설레게 한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전문가들의 의견을 참고해보면, 얼굴은 인식하지 못하는 상태에서도 할머니 할아버지의 목소리를 알아듣기 때문일 가능성이 크다. 아기들은 시각보다 먼저 목소리를 통해 상대를 인지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아기들은 엄마의 목소리는 태어나는 순간부터 알아차리며, 아빠나 할머니 할아버지 목소리도 얼굴 인식보다 훨씬 빠르다고 한다.


로아가 할머니를 실제로 만난 횟수는 위 공식의 필요조건에 턱없이 부족하지만, 반복적인 영상 통화로 로아는 할머니 목소리에는 익숙해 있다. 영상 없이 스피커폰으로 흘러나오는 할머니 목소리가 멀리서라도 들리면, 로아가 반응을 보이는 것을 보면 그렇다. 하지만, 할머니의 모습만으로는 로아는 대체로 할머니를 기억하지 못한다.


흥미로운 점이 있다. 로아는 할머니가 단정한 모습, 잘 차려입은 모습으로 나타날 때 더 잘 웃어 준다. 로아와 통화하는 영상 속 아내의 모습은 하루의 일과에 따라 모습이 적지 않게 다르다. 잠자고 일어난 직후의 모습은 종종 내게도 낯선데, 로아도 낯선지 좀처럼 웃어주지 않는다. 로아는 할머니가 부스스한 모습일 때보다는 화장하고 잘 차려입었을 때 더 잘 웃어주고 적극적인 반응을 보이는 듯하다. 이젠 아내도 알고 잘 대처한다. 갓난 아기도 매력적인 용모에 더 끌리고 집중한다는 연구 결과도 많이 나와있는 것을 보면 로아의 반응에는 일리가 있다. 나와 매주 교대하며 로아를 애정 것 돌봐주시는 외할머니는 로아가 목소리뿐만 아니라 모습만으로도 잘 알아차린다. 여기에는 외할머니의 미모도 한몫하는 것은 아닐까?


손주를 드문드문 보는 경우 할머니 할아버지가 손주에게 각인되는 데는 족히 1, 2년은 걸린다고 한다. 자주 만날 수 없는 상황에서는 영상 통화도 시간을 앞당기는 데 도움이 된다고 하니 적극적으로 활용해 볼 일이다.


오늘도 예쁘게 단장하고 소중한 손주와 영상 통화하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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