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카톡방에 사진이 하나 올라왔다. 현아의 서너 살 때 사진으로 옆모습이 로아와 판박이다. 현아 어머니께서 앨범에서 우연히 발견하셨고, 닮은꼴이 신기해서 현아가 올린 것이다. 이쁜 딸이 자신을 닮은 것보다 엄마로서 신나는 일도 많지 않을 듯싶다. 현아 역시 그런 듯하다.
‘누굴 닮았지?’
아기가 태어나는 순간부터 성장하는 내내 엄마 아빠뿐만 아니라 할머니 할아버지 등 가족 모두에게 이 질문은 초미의 관심사다.
로아 역시 예외가 아니다. 로아의 경우는 태어나기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약 8개월 경에 초음파 검사 영상에 코에서 턱까지의 윤곽이 의사 선생님의 끈기와 운 덕분에 제법 선명하게 잡혔다. 그동안 상상으로만 로아의 얼굴을 그려보면서 궁금증이 최대치에 달했던 시기, 얼굴의 일부분이긴 하나 로아 와의 첫 대면이었던 만큼 현아 수현에겐 물론 가족 모두에게 가장 신비롭고 가슴 설레던 순간 중 하나였다. 엄마 아빠 중 누굴 닮았는지의 퍼즐 맞추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시점이었다.
태어난 첫 모습부터 한 달, 두 달, 100일, 그리고 6개월이 다 되어가는 지금에 이르기까지 로아의 얼굴 모습은 조금씩 계속 변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현아와 수현이는 자신들의 아기 시절 모습과 로아의 모습이 얼마나 닮았는지 궁금해했고, 현아 어머니와 아내는 그동안 별로 들춰볼 일이 없던 사진첩에서 보물찾기 하듯 현아와 수현이의 아기 시절 사진을 찾아내느라 바빴다.
로아는 엄마를 닮았을까, 아니면 아빠를 닮았을까?
대체로 현아 가족과 지인들은 엄마를 닮았다고 하고, 수현 가족과 지인들은 아빠도 못지않게 닮았다고 한다. 두 가족이 말하는 ‘닮았다’는 표현에는 각기 다른 뜻이 있다. 현아와는 외모의 닮음이다. 외모만으로 보자면, 로아는 아빠보다는 엄마를 많이 닮았다. 현아의 현재의 얼굴 모습이 로아에게서 많이 나타난다. 현아 지인들도 이구동성으로 그렇게 말한다고 한다. 수현과는 느낌의 닮음이다. 아내와 나, 우리 형제들도 로아가 외모는엄마를 더 많이 닮았지만, 수현이와 비슷한 분위기가 풍긴다고 한결같이 느낀다. 수현이를 오래 지켜복 성품을 익히 알고 있는 가족이라서 한 눈에 파악해 낸다.
외모적으로 딸은 엄마를 닮고, 아들은 아빠를 닮는다고들 한다. 유전적으로 보자면 이 가정은 맞지 않는다. 아들에게는 엄마에게서 받은 X염색체에 아빠에게서 받은 Y염색체보다 약 4배나 되는 유전정보가 더 들어있어서 엄마를 더 많이 닮아야 한다. 딸은 엄마를 닮는다는 가정 역시 유전적으로 보자면 근거가 부족하다. 딸은 엄마와 아빠에게서 유전자 X를 하나씩 공평하게 받으니 이론적으로는 반반씩 닮아야 한다.
사실, 부모에게서 물려받는 유전정보는 다 발현되는 것이 아니며, 부모-자식 승계를 유전자만으로 설명되지는 않는다. 엄마를 닮은 아들이나 아빠를 닮은 딸도 아주 흔한 것을 보면, 부모와 자식의 닮음이란 잘 정립된 이론이라기보다는 차라리 속설에 가깝지 않을까 싶다.
‘딸은 아빠를 닮는다’는 말도 우리 사회에 널리 퍼져있는 속설이다. 외국에서도 이 믿음이 우리 사회만큼이나 널리 자리 잡고 있다. 이 속설은 그저 ‘속설’에 불과할까?
어느 심리학 전문가의 글에 소개된 외국 사례다. 한 연구에서 신생아를 분만한 부부에게 ‘아기는 엄마 아빠 중 누구와 더 닮았습니까?’라는 질문을 했다. 아빠는 ‘엄마를 닮았다’고 말한 수가 절반을 약간 넘었지만, 엄마의 경우 약 80%가 ‘아빠와 똑같이 생겼다’고 대답했다고 한다. 엄마의 대답은 객관적 실체보다는 주관적 믿음이 반영되었을 가능성이 커 보인다. 한편, 아기와 아빠와의 닮은꼴에 대한 객관성을 보여주는 연구사례도 있다. 한 연구에서는 각각 실제 엄마와 아빠 사진에 다른 두 여성과 다른 두 남성 사진을 함께 제시하고 아기 사진을 보여주면서 아기의 엄마와 아빠를 찾아보라는 실험에서 엄마와의 매칭은 확률값인 약 30%인데 비해 아빠를 맞춘 비율은 50%에 달했다고 한다.
위 연구에서처럼, 정말 딸은 아빠를 더 많이 닮는가? 단순한 속설을 넘어서는 무엇이 있는가? 몇 해 전 한국의 한 방송에도 소개된 내용이다. 한 영국의 연구팀에서 부모 매력도가 어떻게 유전되는지에 조사한 적이 있다. 남녀 학생 200명의 사진과 그들 부모 사진을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매력 정도를 평가하도록 했다. 분석 결과 엄마 아빠의 우월한 외모를 물려받을 확률은 아들보다 딸이 더 높게 나왔으며, 딸의 매력적 외모는 엄마보다는 아빠로부터 더 많이 물려받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 연구팀은 그 이유를 진화론적 관점에서 설명한다. 상태 남성 선택에서 다양한 면을 고려하는 여성과는 달리, 남성은 상대 여성의 외모를 1순위로 삼으며, 매력적인 자식을 낳으려는 아빠 처지에서는 아들보다는 딸에게 미모를 물려준다고 한다.
이 진화론적 설명은 그 자체로 흥미롭고, 고개를 끄덕이는 남성들도 적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럴듯해 보이는 진화론적 논리 역시 확률적으로 속설을 넘어서지는 않아 보인다. 외모가 매력적인 여성이 아빠의 매력만큼이나 엄마의 매력을 닮은 경우도 우리 주변에서 흔하기 때문이다. ‘딸은 아빠를 닮는다’는 이야기는 객관적으로 보자면 결국 확률의 문제이지 않을까 싶다. 더불어, 우리 사회가 아들 선호 문화가 시들해지면서 아들보다는 딸을 선호하는 경향이 생겨났고, 이에 맞물려 ‘딸바보’ 아빠들이 많아지면서 사실 여부와는 별도로 아빠들 듣기 좋으라고 건네는 인사말일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손주는 할아버지도 닮는가?
‘아버님이 계시네!’ 로아가 신생아 때, 현아 친구들은 로아에게서 외할아버지 외모를 보았다고 한다. 현아로부터 그 이야기를 전해 듣고 보니 정말 외할아버지의 모습이 보였다. 현아는 엄마보다는 아빠를 더 닮았고, 로아는 엄마를 닮았으니, 로아에게서 외할아버지의 모습이 보이는 것은 이상하지 않다.
로아가 이 친할아버지를 닮았다는 이야기는?
애석하게도, 누구에게서도, 들어본 바 없다. 아내에게도 한두 번 물어본 것이 아니지만, 대답은 한결같이 냉정한 ‘노우’였다. 유전적으로도 근거가 있다. 친할아버지와 손녀는 염색체를 나누지 않는다. 나도 이제는 더는 묻지 않는다.
대신, ‘부부는 닮아간다’라는 의미를 대입해 본다. 이 역시 속설이긴 마찬가지지만, 우리 주변에서 이런 케이스에 해당하는 부부를 만날 수 있다. 같은 환경에서 함께 식단을 나누고 감정과 생각, 습관을 공유하다 보면 부부 사이에 분위기나 인상에서 충분히 닮아질 수 있다는 생각이 들고, 내 주변에도 그런 느낌을 주는 부부들이 있다. 실은, 아내와 나도 서로 닮았다는 이야기를 심심치 않게 들어왔던 터라 공감이 간다. 덧붙여, 부부 사이에 무의식적으로 상대의 표정을 따라 하다 보면 얼굴 부위의 근육이 발달해 외양이 닮아간다는 연구도 있다. 이와는 별개로, 인간은 유전적으로 자신과 비슷한 사람에게 끌리게 되어 있고 처음부터 비슷한 사람과 만나 결혼하기 때문에 부부는 원래부터 닮아있다는 최근 연구결과도 나와 있다.
사람 사이의 관계란 과학적 검증만으로 규명될 수는 없으며, 속설이라고 해서 미신으로만 치부할 수 없는 믿음을 담아내고 있다. 애초에 비슷한 사람끼리 만나도 결혼 생활에서 틀어지고 갈라지는 부부가 있는가 하면, 애초에 전혀 다른 모습과 경향의 두 사람이 결혼 생활을 통해 서로 가까워지고 공유하고 닮아가는 부부도 있다. 결국, 중요한 점은 애초에 닮은꼴로 만났느냐 아니면 다른 꼴로 만났느냐가 아니라, 서로가 얼마만큼 애정과 존중 속에서 감정과 생각, 분위기를 나누느냐에 의해 ‘부부는 닮는다’라는 속설이 정설로 바뀔 수 있다는 점이다.
로아는 커가면서 엄마와 아빠의 외모 중 누굴 더 닮을까의 관심은 계속 호기심과 기대를 하게 하겠지만, 내게 이에 못지않은 관심사는 이 할아버지와의 외모의 닮지 않은 꼴에도 불구하고 성향과 생각, 감정의 공유를 통해 ‘닮아 감’이 가능할까 여부다.
로아로 인해, 오늘도, 이 할아버지는, 스스로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고 있는지, 지혜롭고 올바른 생각을 하고 있는지, 온유한 마음을 가졌는지, 스스로 되돌아보게 된다.
손녀와의 닮음 추구는 여간 매서운 것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