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스물네 번째 날 ― 2. 17.
오늘은 오로라 투어를 할 수 있는 마지막 날. 이곳을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툰드라 지형을 한 번 더 보기 위해 평소보다 조금 서둘러서 숙소를 나왔다. 날씨가 그리 썩 좋지는 않았지만, 드문드문 보이는 푸른 하늘 덕에 내 마음은 조금이나마 안심이 되었다. 그리고 오로라 지수도 4레벨. 오늘 밤 환한 미소로 오로라를 마주할 수 있을까? 라는 설렘을 품은 채 툰드라로 향했다.
아무것도 없는 세상. 공허함과 광활함만이 존재하는 툰드라 지형은 다시 봐도 나의 가슴속 깊숙한 곳에서 울컥하는 감동을 뿜어져 나오게 했다. 하늘에서 차복차복 떨어지는 자그마한 눈방울들은 포근함으로 나를 감싸 왔고, 나는 몸을 날려 그들과 하나가 됐다.
한바탕 눈밭을 달리며 뒹굴고 나니, 지금껏 심란했던 마음도 한결 차분해지는 것 같았다. 지금까지 오로라는 많이 봤는데 오늘 못 보면 뭐 어때. 툰드라도 한 번 더 보고 이 정도면 무르만스크에서 충분히 만족할 만한 시간이었기는 개뿔.
하늘을 가득 메우며 일렁이는 우주의 거대한 신비함 아래서 한없이 초라해지는 나란 인간의 모습을 느껴 보기 위해 이곳에 머무르며 쓴 돈이 얼만데. 시간이 얼만데. 4레벨의 오로라를 보지 못하고 이곳을 떠난다는 것은 말도 안 된다. 무조건 오로라를 볼 때까지 돌아다니고 말리라는 굳은 결의를 마음속에 품고 숙소로 돌아왔다.
어김없이 평소보다 일찍 숙소에서 나와 오로라 포인트로 이동을 했다. 오로라를 찾을 때까지 쉼 없이 돌아다니겠다는 나의 의지를 표출하려는 듯, 에너지 드링크도 2개나 샀다. 하지만 하늘은 굳게 닫혀 있었고, 별 쪼가리 하나 보이지 않았다.
한참을 멍하니 하늘만 바라봤다. 이리저리 자리도 옮겨 보며 하염없이 구름이 사라지길 바라고 바랐다. 하지만 구름은 사라지지 않았고, 에너지 드링크만 벌컥거리며 한숨을 태우고 있는 나. 10시가 지나고 12시가 지나고……. 오로라지수는 4레벨. 하지만 나는 아무것도 볼 수 없었다.
어느덧 시간은 새벽 2시. 반대편 포인트로 이동하기 위해 운전을 했다. 눈앞으로 뿌옇게 차오르는 습기에 심장이 아려 온다. 오로라 지수는 점점 낮아지고 도착한 그곳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넓은 공터 위에 덩그러니 놓여 있는 한 대의 자동차만이 이곳의 적막함을 달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