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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건 Feb 15. 2020

핀란드에서 한국영화를 관람하는 기분

기생충이 아카데미에서 무려 4관왕을 했다. 덕분에 전 세계 영화관에서 기생충을 볼 수 있게 되었다. 핀란드에서도 한국영화를 볼 수 있다. 영화를 좋아하는 필자로서, 다른 나라에서 모국어로 영화를 볼 수 있는 이벤트는 아주 큰 기쁨이다.


한국에서는 한국인이라는 정체성을 느낄 일이 적다. 그러나 외국에서는 한국인이라는 정체성을 느낄 일이 참 많다. 이번 오스카 4관왕은 특히 그렇다. 당일에는 왓츠앱(유럽에서 쓰는 카카오톡)을 통해 많은 친구들이 축하를 해 주었다. 주변에서 내 친구들이 내게 축하를 전해주는 일이 종종 있다. 이번 주 내내 친구들을 만날 때마다 주제는 기생충, 봉준호, 한국영화였다.

누가 보면 내가 상 받은 줄 알겠다.

지금이야 친구들도 많고, 다양한 주제로 수다를 떨 수 있다. 그러나 처음에는 영어도 유창하지 않았지만, 정말 할 말이 없었다. 유명하다던 K pop은 내 나이 또래의 친구들에게는 “어 그거 어린애들이 좋아하던데” 정도의 마이너 한 취향에 해당했고, 한국에 대해서 정말 모르는 친구들이 많았다. 그런 데다가 처음 듣는 유럽 국가의 친구들과 만나면 서로 아는 게 없어할 말이 없는 것이 참 힘들었다.


그럴 때 한국 문화를 좋아하거나, 한국에 대해서 아는 것이 있으면 첫 대화의 물꼬를 열기 참 좋다. 지난여름 터키에 갔을 때는 한국 음악이나 문화를 좋아하는 친구들이 많아 대화를 시작할 때 참 좋았다.


이런 와중에 아카데미 4관왕은 정말 큰 소식이다. 영화는 인종과 국가를 가리지 않고 가장 대중적으로 즐기는 예술이다. 92년의 아카데미 역사에서 첫 영어가 아닌 언어로 작품상을 받아 미디어에서 아주 대대적으로 비추고 있다. 더군다나 봉준호의 영화를 매우 좋아하고, 이번에 핀란드 극장에서 4번째로 보는 내게 이 영화의 수상 소식은 정말 반갑다.


2002년 월드컵 때는 너무 어려서 그 열기를 직접 느끼기 어려웠고, 그 이후에는 월드컵이나 올림픽에서 한국 선수들이 메달을 따고 좋은 결과를 내는 것에 일희일비하는 것을 이해하기 사실 어려웠다. 재미있는 경기를 하면 좋고, 다른 나라 사람보다는 한국 사람이 이기면 좋기야 하지만, 딱 그 정도였다. 직접적으로 내게 느껴지는 이득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기생충의 성취는 다르다. 백인의 사회에서 어쩔 수 없이 나는 비주류가 될 수밖에 없다. 피해의식이라면 할 수 없지만,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동양인에 대한 눈길은 더욱 차가워진 것이 사실이다.


그 상황 속 모두가 내게 다른 봉준호의 작품을 추천해 달라 부탁하거나, 영화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며 묻는 상황을 싫어할 이유는 전혀 없다.


어제는 핀란드의 영화관에서 기생충을 보고 왔다. 꽉 찬 영화관의 좌석에서 핀란드어 자막과 함께 모국어의 영화를 보는 경험은 저절로 국뽕이 차오르는 경험이다. 침팬지 타이밍 빼고는 크게 웃는 경우는 없었지만, 사소하게 피식피식 하는 관객들은 제법 많았다.


봉준호의 수상소감처럼 시나리오를 쓸 때 국가를 대표해서 쓰지는 않는다. 그러나 그 결과는 한국 국민 모두에게 큰 행복감을 가져다준다. 특히 외국에서 생활을 하는 한국인이라면 크게 그 수혜를 누리고 있을 것이다.


그 생각을 조금만 다르게 보면 나 역시도 한국을 대표하고 있다. 이번 학기는 한국인 교환학생이 오울루에 제법 많지만, 지난 학기만 해도 나 혼자 뿐이었다. 생각보다 많은 친구들이 처음으로 만난 한국인이 나였고, 나를 통해 한국인과 한국을 일반화하고 있었다.


이런 국가를 대표하는 마음 등의 거창한 이야기는 참 의미 없다고 생각했지만, 외국에 있을수록 그 이야기가 와 닿는다. 점점 더 한국인이라는 정체성을 깊게 생각하게 된다.

https://www.ted.com/talks/michael_kimmel_why_gender_equality_is_good_for_everyone_men_inc luded

TED 강연 중 인상 깊게 본 손에 꼽는 강연이다. 이 강연에서 나오는 파트에서 특히 해당 강연자가 다양한 여성들과 함께 이야기를 할 때 나오는 이야기가 인상 깊다.

BW (Black Woman) : "When you wake up in the morning and you look in the mirror, what do you see?"
WW(White Woman) : "I see a woman."  
BW :"You see, that's the problem for me. Because when I wake up in the morning and I look in the mirror I see a black woman. To me, race is visible. But to you, race is invisible. You don't see it. That's how privilege works. Privilege is invisible to those who have it.
흑인 여성: "네가 아침에 일어나서 거울을 볼 때 뭐가 보이니?"
백인 여성: "여자가 보이지."
흑인 여성: "그렇지, 나한텐 그게 문제야. 왜냐하면 내가 아침에 일어나서 거울을 보면 나는 흑인 여자가 보이거든. 나한테 인종은 가시적인 거야. 하지만 너에게 인종은 눈에 보이지 않지. 넌 그걸 보지 않아. 그게 특권이 작동하는 방식이지. 특권은 그것을 가지고 있는 자에게는 보이지 않아.


처음에 이 이야기를 들을 때 사실 크게 공감이 되지 않았다. 한국에서 언제나 주류의 삶을 살아온 나는, 거울을 보면 인간 그 자체가 보이지 그 어떤 다른 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이 핀란드에서 거울을 보면 나는 동양인이 보인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나를 보면 동양인이라는 인종을 먼저 본다. 그것이 사실이다. 그나마 조금 더 잘 봐주면 한국이라는 국가를 본다.


그렇기에 이 기생충의 수상이 반가운 것이다. 한국의 문화를 더 많이 보게 되고, 우리의 문화를 더 많은 사람들이 이해하게 될 테니까. 생각보다 대부분의 사회는 비슷하고, 비슷한 고민을 하고, 비슷한 문제를 마주하며 살아간다는 것을 말이다.


이렇게 문화적으로 콘텐츠를 많이 생산할 수 있는 나라의 국민인 것이 참 행운이고, 자랑스럽다. 우리의 것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으니 말이다. 점점 더 "한국은 쿨한 나라"가 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럼에도 내가 바라는 것은 "한국인이 쿨하다."라는 이미지를 가지고 싶은 것이 아니다. 오히려 앞으로는 내가 거울을 볼 때 동양인이 아니라 인간이 보이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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