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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건 Feb 24. 2020

새로운 여행의 시작

마지막으로 헬싱키에서 영어 시험을 마쳤다. 인생에서 한국을 가장 오래 떠나 있던 14개월을 뒤로하고 한국으로 다시 향한다.  

공항에 도착했다. 비행기 출발 2시간 15분 전이다. 헬싱키 공항은 큰 편은 아니다. 주로 사람도 많지 않았다. 아직 시간은 여유 있다.  

그러나 이게 무슨 일 인가. 사람이 득실득실하다. 서울에 벌써 온 기분이다.  카타르 항공에 짐을 맡기러 간다. 이곳에 줄은 더 길다.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걸까.  다행히 공항으로 오는 길 체크인을 미리 해 놓았다. 온라인 체크인을 한 사람의 줄은 좀 짧다. 그렇게 30분을 기다린다. 짐의 무게를 제는데 39kg이 나온다. 하…. 인생이 쉽지 않다. 무료 수화 가능 제한은 30kg이다. 짐을 다시 싸야 한다.  


옆으로 나와 짐을 다시 싼다. 처량하다. 가방에 있던 책을 전부 뺀다. 33kg. 책을 핀란드까지 들고 와서 고생이다. 가장 두터운 재킷은 입고, 학교 과잠은 너무 낡았으니 버렸다. 그래도 31kg. 가방에 넣어 놓았던 작은 가방을 빼서 손에 든다. 29.8kg 만세.  다시 줄로 향한다. 모든 사람들 중 마지막으로 체크인을 한다. 기내 수화물 보안검사의 줄 역시 길다. 일요일이라 그럴까, 핀란드 전 국민이 공항에 온 기분이다.  하필 44번 게이트, 제일 먼 곳. 항상 유럽 내로만 여행을 다녀 훨씬 간결했던 것이다. 멀리 가는 경우 짐도 맡겨야 하고, 여권도 한번 더 체크한다. 모든 여정을 다 마치고 44번 게이트에 도착을 하자마자 비행기에 탑승을 시작한다. 딱 맞았다고 좋아해야 할지, 너무 정신이 없었다고 슬퍼해야 할지. 어쨌든 비행기를 놓지 지는 않았다. 긍정적인 것에 집중하자.  


그렇게 6시간의 비행을 마치고 도하, 카타르에 도착한다. 기온이 21도다. 영하에 있다가 갑자기 21도라니. 무게를 줄이느라 2개나 가지고 있는 이 따듯한 두 겉옷들이 나의 모공을 자극한다. 모든 땀 구멍에 땀이 송골송골 맺힌다.

 이번 환승에는 비교적 여유가 있다. 3시간 동안 기다려야 하고, 환승을 하는 게이트까지 도착하니 탑승 시간까지 2시간이 더 남았다. 워드를 켜고 글을 작성하려 해 본다. 피곤해서 일까, 글이 잘 써지지 않는다. 신기한 일이 일어난다. 갑자기 한국말이 배경으로 들리는 것이다. 당연한 일이다. 이제 한국을 향하는 비행기 앞 게이트에 있으니 한국인이 많다.  


부모님과 일주일에 한번씩 영상통화를 하고, 핀란드에서도 가끔 한국인을 만나 대화를 나누어서 한국말 자체가 어색하지는 않다. 그러나 모든 상황의 한국말은 “나”에게 하는 말이었다. 내가 아닌 대상에게 향하는 한국어가 들리는 상황은 1년이 넘는 기간 동안 처음이다.  그리고 한국어는 역시 내 모국어라 집중을 전혀 하지 않아도 모든 내용이 귀에 쏙쏙 박힌다. 전혀 알고 싶지 않은데 내용이 다 전달된다. 외국에 있을 때는 주로 배경 잡담 소리를 알아듣지 못했다. 핀란드어인 경우가 많았고, 영어여도 배경에서 잡담하는 소리에 특별히 주의를 의식적으로 기울이지 않는 이상 그 내용이 전달되지는 않았다. 내 일에 집중하기 편리했다. 내 생각에 집중하기 용이했다.  그러나 갑자기 온갖 곳에서 한국어가 들리니 내 주의가 자동으로 그쪽으로 쏠린다. 글은 더더욱 써지지 않는다. 이제 주변 모든 사람들이 하는 말을 다 알아들을 수 있다.  핀란드에 있을 때 자유로웠던 이유는 주위 사람들이 뭐라 하든 어차피 알아들을 수 없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주변 소음을 차단하고 나에 집중하기 좋은 환경이었다. 워낙 조용하기도 했다.  


이제 한국이라는 새로운 여행지를 방문한다. 다른 환경에 적응을 해야겠다. 핀란드에서 사귀었던 친구들 중 집으로 돌아간 친구들이 역으로 문화 충격을 받아 처음에 자기 나라에서 적응하느라 힘들었다고 한다. 갑자기 모든 배경의 잡담의 소리가 내 뇌리에 박히는 것이 문화 충격의 시작인 듯하다. 아직 한국에 도착도 안 했는데 벌써 역 문화 충격이 시작된다. 한동안 한국어보다 영어로 생각하는 게 익숙하고, 술주정도 영어로 했다. 영어 단어를 먼저 떠올린 후 한국 단어로 바꾸느라 고생 좀 하겠다. 유학생이나 해외 생활 오래 한 친구들이 문장에 영어 단어 섞어 쓰는 경우가 있었다. 괜히 해외 물 먹은 거 자랑하는 거 아니냐고 속으로 생각했었는데, 아니었다. 그냥 한국 단어가 생각이 안 나서 그런 것이었다.


드디어 한국 인천공항에 도착을 했다. 사람들이 참 급하다. 비행기 착륙하자마자 이미 짐을 찾고, 문 열리자마자 마치 육상 경기하듯 움직인다. 딱히 급할 일이 없어 짐을 먼저 내려놓지 않았다. 사람들이 빠지고 짐을 내려놓으려 했는데, 아무도 내 자리를 기다려주지 않는다. 잠깐이면 짐을 내리는데. 모두 얼른얼른 지나간다. 한참이 지나고 나서 억지로 공간을 만들어서 짐을 내렸다. 짐을 내려서도 사람들이 빨리 움직인다.  

더 늦게 가면 줄이 길어지는 것이 싫어서 그런 것 같다. 나는 바쁠 게 전혀 없는데 다들 급하게 얼른얼른 움직이니까 나도 급하게 느껴진다. 괜히 종종걸음을 걷는다. 아 드디어 한국에 온 느낌이 나는구나. 이게 바로 한국이지.  

평생을 살아온 한국이지만, 한국이 다르게 느껴질 것 같다. 다르게 느끼고 싶다. 이전의 글에도 밝혔듯이 한국에서도 여행을 한다는 기분으로 생활할 것이다. 새로운 것에 신기해하고, 우리가 가지고 있는 재미있는 문화는 무엇이 있나 눈을 바짝 뜨고 귀를 쫑긋 세우고 관찰할 것이다.  


이제 또 새로운 여행이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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