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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건 Mar 14. 2020

토할 것 같다.

지금은 새벽 3시 20분쯤 되었다.



최근 일찍 일어나지 못했다. 잠에 쉬 들지 못했고, 늦게나마 잠에 들면 11시가 넘어서 쯤 일어났다. 어제는 시험이 늦게 있었다. 시험이 12시까지 치러졌다. 인터뷰 형식이었는데 시험이 끝나고 나니 땀이 났고, 머리는 뜨거웠다. 전형적으로 잠에 들 수 없는 상태다. 실제로 그 이유였을까 그 생각 때문에 잠에 들지 못했을 까 알 수 없다. 여하튼 잠을 잘 못 잤다. 오늘은 수시로 잠에서 깨다가 12시가 넘어서 일어났다. 


월요일 9시 시험이 하나 있다. 그렇게 중요한 시험은 아니다. 공부를 안 해놔서 이해가 잘 되지 않을 뿐이다. 아주 경미한 스트레스다. 월요일에 8시에는 일어나야 할 것이다. 계속 이렇게 될 것 같아 내일은 아침 8시에 꼭 일어나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러나 오늘 늦게 일어난 이유로 잠이 두려웠다. 그래서 2시까지 잠을 미뤘다. 잠이 오지 않는데 침대에 누워 잠을 청하는 상황, 내가 세상에서 가장 두려워하는 상황이다. 


2시까지 잠을 미뤘더니 제법 졸리다. 혜민스님의 잠이 잘 오는 명상까지 틀어 놓고 잠을 청하지만 잠은 오지 않는다. 1시간 동안 일어나서 책도 읽고 다시 눕고, 이것 저것 시도해 보지만 실패다. 


다시 일어났다. 토할 것 같다. 잠을 잘 못 자면 항상 토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실제로 토 한적은 없다. 그냥 그런 느낌이 든다. 이 감정을 남기고 싶다. 글이라도 써봐야겠다. 


나는 제법 멋진 사람이다. 적어도 겉에서 보기엔 그렇게 보이거나 그렇게 생각하려고 부단히 노력해 왔다. 어렸을 때부터 공부는 잘했다. 공부해서 얻은 노하우 덕분에 다른 것들을 꾸준히 하는 방법을 알았다. 그래서 영어공부, 글쓰기, 대학공부 등 공부는 꾸준히 잘했다. 공부를 잘하니 주변에선 항상 나를 잘 대우해 줬다. 훌륭하다고 말이다. 그래서 나는 항상 훌륭했고, 훌륭해야만 했다. 어느샌가 그것이 내 정체성이 된 것 같다. 


2018년. 본격적으로 잠을 못 잔 시기다. 그 전에도 예민한 성격에 가끔 잠을 못 이룰 때도 있긴 했다. 그러나 그건 특별히 잠자리가 변했을 때나, 큰일이 있을 때였다. 


그러나 2018년 복학을 하고 처음으로 학점을 잘 받겠다는 큰 다짐을 안고 도전했을 때 첫 시험에서는 거의 최하점을 받았던 기억이 난다. 별일 아니라고 생각했던 것 같은데, 당시 잠도 못 잤던 것을 생각하면 별일이었던 것 같다. 하지만 용케 대학 공부하는 요령을 캐치하고 성적을 잘 받고, 약도 받아먹으면서 잘 견뎌냈다.


핀란드에서 작년 하반기에는 컴퓨터 공학을 공부했다.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석사 과목 수업부터 시작했다. 당연히 이해가 안된다. 혼자 바보가 된 기분이다. 그러나 익숙하지 않았던 모양이다. 매번 가장 우수한 학생이었던 것에 익숙했다. 또 잠을 못 자기 시작했다. 


그렇게 잠을 못 자는 일이 반복되니 이제 더 큰 문제가 생겼다. 잠을 못 자는 것이 스트레스다. 잠을 못 자는 것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고, 그 스트레스 때문에 잠을 못 잔다. 최악의 회로다. 


지금 당장은 그저 새 학기 잘해보겠다는 다짐 정도 하면 된다. 딱히 큰 스트레스받는 일도 없다. 그래도 잠을 못 잔다. 죽을 맛이다. 


인생에 많은 경험이 있진 않다. 특별히 인생에서 어려운 일도 없었다. 그렇기에 내가 느끼는 감정과 고통이 다른 누군가에 비해 별 것이 아니라 하면 딱히 할 말은 없다. 그래도 너무 힘들다. 내가 살면서 경험한 모든 것 중에 가장 힘들고, 고통스럽다. 잠을 못 잔다는 것. 


웃긴 것은 낮에 생활하는 나는 제법 여전히 괜찮다는 것이다. 어제 세어보니 24권의 서평을 썼다. 2주에 하나 꼴로 1년 동안 했다. 2월부터는 하루도 빠짐없이 글도 썼다. 지난 한 달 동안 영어공부도 열심히 해서 목표한 점수도 받았다. 유학 가겠다고 공부도 열심히 잘하고 있다. 


그런데 잠을 자야 하는 시간만 다가오면 너무 무섭다. 잠에 드는 것이. 처음 이런 이야기 했더니 멀쩡한 놈이 뭐 그런 고민을 하냐고, 운동이나 열심히 하고 잠자라고 했다. 너무 잘하려고 해서 문제라고도 했다. 그런 이야기를 하도 들으니 이제는 이야기도 안 한다. 그냥 낮에는 적당히 괜찮은 척한다. 실제로 낮에는 비교적 괜찮다. 잠을 못 자는 날이 하도 많아서 하루쯤 잠을 못 잔 날에는 큰 차이를 못 느끼는 수준이다. 


잠 잘 자고 싶다. 숙면이란 것을 취해본 적이 언제인지 잘 기억도 안 난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고쳐야 할까. 뭘 바꿔야 하는 걸까. 그냥 공부고 글쓰기고 유학이고 다 때려치우면 잘 수 있는 것일까. 나라는 인간이 그게 가능하기는 할까. 


주변에 우울감으로 힘들어하던 친구가 몇몇 있다. 항상 긍정적이었던 나는 이해가 잘 안됐다. 왜 우울한 생각만 하는 건지,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안 되는 건지, 운동 한번 하고 나면 괜찮은 것 아닌지 말이다. 그게 아니었다. 어려운 문제였다. 


괜히 멋도 모르는 조언 내던지지 말고, 닥치고 이야기를 들을 걸 그랬다. 후회가 된다. 얼마나 내 태도로 인해 더 힘들어졌을까. 적어도 지금부터는 그렇게 해야겠다. 감히 네가 얼마나 아픈지 상상도 못 하겠지만, 내게 이야기해주니 고맙다고 말이다. 내가 이야기를 들어줌으로써 조금이나마 도움이 된다면 실컷 이야기하라고 말이다. 그리고 나는 잘 모르니 전문가의 상담을 받아보라고 말이다. 지금 내가 듣고 싶은 말이 그것인 것 같다. 


글을 쓰는 것도 이야기하기가 어려워서 그렇다. 평생을 지 잘란 맛에 살아오고, 멋진 말 도움되는 말만 해오는 것이 습관이 되었다. 나 힘들다고 말하는 게 참 어렵다. 내가 누가 힘들다고 말을 꺼내 오면 듣지는 않고 조언만 하려고 해댔다. 힘들다고 이야기하면 생산적이지 못하다고 싫어했던 것 같다. 그러니 내가 친구들에게 답도 없는 생산적이지도 못한 힘듦을 토로해서 쓰겠는가. 최소한의 양심은 있어야 할 것 아닌가. 


또 한 가지, 요즘 브런치에서 글을 많이 읽는다. 내가 센티한 글을 좋아해서 그런지 브런치가 자꾸 그런 글들을 추천해준다. 우울함에 힘들어하는 사람이 제법 많아 보인다. 나는 그런 글들을 보며 힘을 얻는다. 이상하게도, 잘 살고 행복하게 사는 사람들 보다도, 힘들어 하지만 그럼에도 살아가는 사람을 보면 힘이 난다. 그렇기에 내가 힘들다고 징징대는 글이 어떤 사람에게는 조금의 힘이 되지 않을까 바라본다. 


그리고 이 글을 읽고 정신적으로 힘든 상황 속에서 조금이나마 힘이 난 분들이 있다면, 좋은 친구가 있다면 그 친구를 잡고 넋두리를, 없다면 온라인에 글이라도 써보기를 추천한다. 뭐 생산적이지는 않다. 당장 문제가 해결되진 않으니 말이다. 그래도 기분은 한결 가벼워진다. 


그리고 나아가 상담사나 의사를 꼭 찾아보자고 이야기해보고 싶다. 나도 그럴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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