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 수술하셔야 합니다.
꼬마 김밥집에 왔다. 내가 가장 사랑하는 음식, 꼬마 김밥. 많이 비싸지도 않다. 고소한 시금치와 사이사이 알싸한 마늘의 향, 특제 소스로 볶은 어묵은 감칠맛을 더해주고, 넉넉하게 뿌려주는 깨와 잘 펴 발린 참기름의 풍미까지. 쫄깃쫄깃하게 씹히는 특유의 식감까지 즐기고 나면 있던 걱정이 모두 사라졌다. 인간이란 생각보다 단순한 존재다. 기분이 저기압일 때는 고기 앞으로 가라 하지 않던가? 고기는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 언제나 기분이 전환되었다.
그러나 지금, 쌓여 있는 꼬마 김밥 앞에서 나라를 잃은 사람 마냥 한숨을 쉬고 있다. 휴대폰만 손에 꼭 쥔 채 꼬마김밥과 눈싸움을 하고 있다. 여전히 고소한 참기름의 냄새와 맛있게 보이는 꼬마김밥이 코와 입눈을 자극하며 매력을 발산하지만, 손은 움직이지 않는다. 꼬마김밥에 눈이 가지도 않는다. 이 쌓여 있는 꼬마 김밥도 이번엔 내 기분을 바꿔주지 못할 것 같다.
항상 뻔한 말을 하던 안과였다. 언제나 같은 말만 반복하는 고장 난 라디오처럼 말이다. "눈 비비지 마세요. 인공 눈물을 자주 넣어보세요." 이번에도 당연히 그런 뻔한 말을 해야 했다. 그래야만 했다.
그러나 이번엔 달랐다. 내 증상을 듣던 의사가 바로 검사를 해야 할 것 같다고 이야기했다. 표정은 담담했다. 나 역시 담담했다. 눈에 이상한 액체를 넣었다. 동공을 확장시켰다. 그렇게 30분을 기다리고, 검사를 했다.
검사를 다 받고 나니 거의 한 시간이 걸렸다. 쓸데없이 시간을 너무 낭비하고 있는 것 같아 답답했다. 소심한 성격의 나는 아무 말도 없이 묵묵히 보내주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검사를 마치고 결과와 함께 의사를 다시 만났다. 당연히 또 같은 말을 듣고 집에 갈 줄 알았다.
내가 들은 말은 조금 다른 말이었다.
망막박리가 진행된 상태입니다. 당장 수술해야 합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시력이 심각하게 저하되거나 시력을 잃을 수도 있.~~~~ ㅂ. 24ㅅ2....
망막박리가 어떤 병이며 이후에 어떻게 될 것인지 기타 등등을 설명했다. 그러나 시력을 잃을 수도 있다는 말 이후에는 알아듣지 못했다. 잘 기억나지 않는다. 인지 부조화가 일어났다. 말로는 분명히 시력을 잃을 수도 있다는 말을 하고 있다. 그런데 어쩜 저렇게 담담하게 이야기하는 것인지. 평소에 하는 눈 비비지 말라는 말을 할 때의 표정과 같았다. 아무 감정도 없는 표정. 그렇게 영혼을 잃은 표정으로 나는 내 시력을 잃을 수도 있다는 말을 들었다.
저 혹시 제가 다음 주 토요일이 공무원 시험이거든요. 그때까지 기다린 후에 시험을 봐도 되나요? 아니면 수술한 후에 회복이 될까요?
답변은 단호했다. 칼 같았다. 절대 안 된다. 늦어질수록 시력을 잃을 가능성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단다.
이 병원은 작은 병원이라 수술이 어려워 대학 병원에 연락을 취해 놓겠다고 한다. 조금 있으면 바로 전화가 올 것이고 빠르면 오늘, 아무리 늦어도 내일 바로 수술을 들어갈 것이라고 했다. 전화가 금방 올 테니 전화를 꼭 받으라고 했다. 수술 후 회복은 경우에 따라 다르지만, 다음 주 토요일이면 제대로 글을 읽기 어려울 수도 있다고 한다.
지금 휴대폰을 꼭 쥔 채 꼬마김밥 집에서 꼬마김밥을 바라보고 있다. 이미 차갑게 식은 꼬마김밥 하나를 입에 넣는다. 꼬마김밥이 이렇게 맛없는 음식인지 몰랐다. 아무 맛도 느껴지지 않는다. 고무를 씹는 것 같다.
삐비 빅. 전화다. 병원인 것 같다.
김은준 씨? 네. 여기 서울 oo 병원입니다. 내일 오전 수술 일정 때문에 전화드렸어요. 내일 9시 30분까지 오시면 되고요. 수납하시고 2층 안과로 올라오시면 됩니다. 올 때 보호자 분이라 같이 오셔야 해요. 수술 이후에 회복하는 동안은 시력이 잘 안 나오실 거예요.
딱히 할 말도 없었지만 정말 자기 말만 하고 끊어버린다. 내일은 평일이라 부모님도 오실 수 없는데. 이 일을 부모님께 알려야 하나. 고민이 파도처럼 몰려온다. 병원에 누구랑 같이 가야 하지. 시험은 포기해야 하나. 이번 시험을 포기하면 다음 시험은 봐야 하나. 진짜 앞으로 눈 한쪽을 못 보면 어떻게 하지.
일단 꼬마김밥을 다 먹고 생각하자고 고민을 미룬다. 여전히 꼬마김밥에 젓가락은 가지 않는다. 그냥 시간만 계속 흐른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