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 저글링

운명의 수레바퀴. 1

by 안건

대학교 1학년. 가평으로 향하는 첫 엠티. 새내기 대학. 버스에 탄 모두가 들뜬 것처럼 보인다. 학교에서 나누어준 후드티를 모두 자랑스럽게 입고 있다. 흔들리는 버스 앞에서 한 명은 비틀비틀 위태롭게 사과 3개를 저글링하고 있다. 모든 사람이 꿈꾸는 스무 살의 풍경이다.


그렇게 덜컹덜컹 흔들리는 버스에서 나는 홀로 이어폰을 끼고 백색 소음을 듣고 있다. 나는 아무것도 준비하지 않았고, 아무런 재미도 없고 임팩트 없이 내 차례는 흘러갔다.


비가 10시간 동안 오는 백색소음. 내가 기억하는 살면서 가장 많이 들은 소리다. 어렸을 때부터 빗소리를 좋아해 시간만 되면 귀에 이어폰을 꽂고 들었다. 하루에 10시간씩 공부를 하던 시절에도 들었으니 내가 들은 빗소리만 만 시간이 넘을 것이다.


이 빗소리를 듣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 나는 서울대학교 영문학과에 합격했다. 학교에서 결과를 확인하던 당시 소리를 지르던 친구가 생각난다. 내게 말을 걸지도 않던 친구들이 모두가 나를 부러워했다. 그러나 나는 행복하지 않았다. 안도의 한숨 정도를 내쉬었다.


서울대학교 의대를 나온 어머니와 서울대학교 간호학과를 나온 아버지. 지금도 30년이 흐른 지금도 남성 간호사는 흔치 않게 보는 것이 현실이다. 당시 아버지는 유일한 명의 간호학과 입학생이었다. 당시 역시 흔하지 않은 여성 의사 어머니와 드라마 같은 연애를 하시고, 나를 낳았다. 어머니 아버지 21살에 나를 낳았다. 아마 계획한 것은 아니었던 것 같다. 똑똑하신 분들이 왜 그런 실수를 하셨을까?라는 질문. 어렸을 때부터 해왔던 질문이다. 물론 한 번도 부모님께 그런 질문을 한 적은 없다.


어렸을 때는 고모가 나를 키워주셨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나를 썩 좋아하지는 않으셨다. 그렇다고 특별히 고통을 주시진 않았다. 어렸을 때부터 나는 열심히 혼자 있던 아이였다. 특별히 좋아하는 것은 없었다. 특별히 친구들과 어울리지도 않았다.


부모님은 바빴다. 21살에 애를 낳아 놓았으니 오죽했겠나. 초등학교 고학년 시절까지는 부모님과 특별히 보낸 시간이 없고, 그 이후부터는 부모님과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할지 잘 몰랐다. 특별히 많은 대화를 나눠본 적이 없다. 사실 중학교 이전 시절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렇게 중학교 때쯤부터였을까. 고모와 할머니, 다른 친척들은 내게 언제나 너도 서울대를 가야지~라곤 말씀하셨다. 부모님께서는 그때도 특별한 말씀은 없었다. 그러나 부모님은 언제나 허허~ 하면서 웃곤 하셨고, 그 웃음이 긍정의 의미임을 나는 알고 있었다. 내가 누군지 알기 전부터 나는 예비 서울대생이었다.


고등학교 입학시험을 잘 치렀던 다음부터 친척들은 나를 예비 서울대생으로 불렀다. 부모님도 딱히 싫어하진 않으셨던 모양이고, 나는 언제나처럼 입을 닫고 있었다. 우리 친척들은 자주 모였다. 할머니 생일, 외할머니 생일, 삼촌 생일. 어딜 가든 큰 차이는 없었다. 우리 부모님은 언제나 앉아 허허 웃고 계셨고, 모두 부모님과 나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아마 우리 부모님 부부와 나는 전체 가족의 아름다운 꽃병이 아녔을까. 혹은 예쁜 병풍이 더 나은 표현일까? 꽃은 생명력으로 이야기한다. 물을 줘야 아름답고, 금세 피고 진다. 그러나 우리 부모님과 나는 언제나 웃고 있었으니 말이다.


그때부터 내 인생에 가장 큰 공포는 서울대에 합격하지 못하는 것이었다. 나는 무서웠다. 내가 "나"이기도 전에 나는 서울대생이었다. 내가 서울대를 들어가지 못한 다는 것은 내가 없어지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공부를 했다. 매일 10시간. 내 휴대폰에는 10시간짜리 빗소리 비디오가 수십 개 저장되어 있다. 아침에 학교 가는 길부터 공부를 시작했고, 쉬는 시간, 점심시간, 저녁 시간 야자시간까지 공부했다. 공부를 하는 동안 무조건 빗소리를 들었고, 그렇게 10시간 비디오가 끝나야 잠자리에 들었다. 내 인생에 비가 그치는 날은 없었다.


특별히 불행하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렇게 살아왔으니. 그러나 지금 나는 너무도 불안하다. 서울대 합격이 지나고 난 한 달의 시간,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이겠다. 하루는 비가 10시간 오면 지나가는 것이었다.


그러나 한 달 동안 비는 10시간이면 그쳤다. 비가 그쳤는데도 하루가 끝나지 않았다. 대체 그다음 무엇을 해야 할지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다. 당연히 이 엠티도 오지 않으려 했다. 굳이. 귀찮았다. 처음으로 부모님이 내게 권유했다. 꼭 이 엠티에 가라고. 본인들이 처음으로 엠티에서 만났다나. 거절도 귀찮았다.


앞에서 3개로 저글링을 하던 친구는 이번엔 4개로 사과를 저글링 한다. 심지어 저글링을 하며 사과를 한입씩 배 어물 더니 이제 사과가 반밖에 남지 않았다. 저 친구는 사과를 다 먹을 때까지 저글링을 할 생각인가?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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