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방울>2
은수는 온몸이 물에 젖어 물이 뚝뚝 떨어지는 상태로 집에 돌아온다. 젖은 옷은 바로 세탁기에 넣고 샤워를 한다. 샤워기에서 맹렬하게 떨어지는 물방울들이 은수를 따듯하게 감싸준다. 비를 흠뻑 맞고 집에 들어와 샤워를 하는 것, 은수가 가장 좋아하는 기분전환 방법이다. 샤워를 끝내고 와보니 어머니가 전화를 주셨었다. 어머니는 혹시라도 공부에 방해가 될까 항상 식사시간에만 전화를 하신다.
"은수야 잘 지내지? 이번 모의고사는 어때? 밥은 잘 챙겨 먹고?" 오전에도 내내 소설이나 읽느라 공부를 못해 참 부끄럽다. 소설을 하도 읽어서 웹진 비유에 있는 소설, 최근 나온 신춘문예 작품은 다 읽었다. 한달 전에는 없는 돈까지 들여 창작과 비평 구독을 시작했다. 이럴 때 걸려오는 안부 전화는 참 부담스럽다. 모의고사 시험을 볼 때마다 점수는 오히려 점점 떨어진다. 처음 시험을 본 이후 참 꾸준하게도 매번 점수는 떨어지고 있다. 이런 것만 꾸준하다.
"잘 지내죠. 네." 은수는 딱히 할 말은 없어 짧게 대답한다.
"공부는 잘 되고? 결과에 신경 쓰지 말고 열심히 해~ " 분명 은수를 위한 말, 걱정해서 하는 말이시겠지만 은수는 부담을 느낀다.
"네. 잘 하고 있어요."
"눈은 좀 어때?" 어머니가 묻는다. 은수는 얼마 전부터 눈이 이상했음을 느꼈다. 화창한 날 밖에 나갈 때 마다 이상한 얼룩이 보인다. 안경에 지문이 묻은 느낌이었다. 안경을 아무리 닦아봐도 그대로였다. 사실 어제는 얼룩 정도가 아니라 검은색 점들이 눈에서 계속 보였다. 은수는 통화하면서 왼쪽 눈을 감고 오른쪽 눈으로 창 밖을 보고, 오른쪽 눈을 감고 왼쪽 눈으로 창 밖을 보는 것을 반복한다. 샤워를 할 때까지 왼쪽 눈에 물이 들어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충분히 물을 다 닦아냈음에도 불구하고 왼쪽 눈 오른쪽 상단에 물방울이 계속 보인다. 왼쪽 눈을 감았을 때는 물방울이 보이지 않고, 오른쪽 눈을 감고 왼쪽 눈을 좌측으로 굴릴 때 명백한 물방울이 눈에 보인다. 눈에 물방울이 들어와 있다.
"괜찮아요, 가끔 좀 그렇고 집에서 공부할 때는 괜찮아요." 그러나 은수는 괜히 쓸데없는 말을 해서 어머니를 걱정 시켜드리고 싶지 않았다.
"가끔 그래도 병원 꼭 가봐야 해, 눈이 얼마나 예민하고 귀한데 그래. 엄마가 걱정 돼서 그러니까 병원 좀 꼭 가봐"
"내일 모레가 시험이야 엄마. 이 시기에 병원 갈 시간이 어디 있어!" 은수는 짜증이 나서 심술을 부린다.
"엄마가 걱정이 돼서 그래, 엄마 눈 닮아서 눈에 문제가 많을 것 같아서. 엄마가 나쁜 눈 물려줘서 미안해"
"엄마가 뭐가 미안해. 됐어요. 나 가봐야 돼. 끊어"
은수의 어머니는 고도근시를 가지고 있다. 어렸을 때부터 눈이 나빴고, 어른이 된 지금까지도 정말 두꺼운 안경을 끼고 다닌다. 안경을 벗으면 앞이 잘 보이지 않는다고 하신다. 은수 역시 어머니를 닮아 그런지 비슷하다. 어렸을 때부터 두꺼운 안경을 쓰고 다녔다. 그 뿐 아니라 눈이 언제나 예민했다. 술을 먹으면 얼굴보다 눈이 먼저 충혈된다. 하루만 잠을 잘 못 자고 일어나면 눈이 충혈되고 간지러워서 고생이다. 은수는 이번에도 그냥 그런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유난히 어머니가 걱정을 해 그것이 더 걱정이다. 병원은 2분 상담하고는 눈 비비지 마세요, 인공 눈물 자주 넣으세요, 등의 뻔한 말만 하고 돈은 만원도 넘게 받아가는 도둑놈들 이다. 그런 말이야 누가 못하나.
은수는 괜히 마음이 무거워 담배에 손이 간다. "담배 끊어야지"라는 말만 백 번은 더 했다. 이제는 부끄러워서 그런 말도 안 한다. 샤워를 하고 나오는 사이에 금세 날이 갰다. 조금 전만 해도 비가 쏟아졌는데 지금은 화창한
날씨다. 어제 보이던 검은색 북두칠성은 없어졌지만 여전히 눈은 너무 부시고 왼쪽의 물방울은 더 크게 보인다. 어제보다 상태가 더 안 좋은 것 같다. 아마 잠을 못 자서 그런 것이 아닐까 싶다. 담배를 피우러 앞에 나와 있는데 조그마한 공원에 외국인이 보인다. 그 외국인은 아이와 함께 있는데 장난을 계속 친다. 아이는 뭐가 그렇게 즐거운지 꺄르르 꺄르르 웃는다. 어머니도 세상을 다 가진 행복한 미소를 짓는다. 은수는 어머니를 떠올린다. 최근에 어머니가 저렇게 밝게 웃는 모습을 언제 봤는지 기억도 안 난다. 집에 자주 가지도 못하지만, 갈 때마다 언제나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은수를 쳐다보곤 하셨다. 은수 역시 마지막으로 웃은 것이 언제였는지 기억을 해내지 못한다. 은수와 어머니도 저런 시절이 있었을 텐데 말이다. 시험에 붙고 나면 어머니가 밝게 웃을 수 있지 않을까? 막연하게 생각한다.
담배를 피우며 계속 오른쪽 눈, 왼쪽 눈을 번갈아 가면서 뜬다. 거짓말처럼 은수의 시야에 안과가 들어온다. 정말 눈앞에 보이는 바로 앞 건물에 안과가 있다. 이렇게 커다랗게 간판이 있는데도 바로 옆에 안과가 있는지 몰랐다. 벌써 몇 년 째 이곳에 살고 있는데 정말 몰랐다. 은수는 매번 땅만 보고 걸어가서 위를 쳐다볼 생각도 못했다. 1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다. 은수는 어쩐 일인지 병원이나 한번 가봐야겠다 생각한다. 보나마나 뻔한 말이나 하겠지만, 어머니께 아무 일 없다고 전화 한 통 드리고 마지막 일주일을 집중하기 위해 은수는 병원으로 향한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