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방울> 1
빗방울이 은수의 왼쪽 눈에 정확히 떨어진다. ‘비가 참 많이도 오는구나’ 하면서 살짝 고개를 들어 하늘을 아주 잠시 쳐다보았을 뿐인데 정확히 수직 방향으로 빗방울이 은수의 왼쪽 눈에 스며든다. 마치 이 빗방울 하나는 은수의 눈에 떨어지기 위해 대류권 가장 위에서부터 준비하여 마지막 피니시를 비스듬하게 한 것 같다. 빗방울의 차가운 느낌이 눈에서 퍼진다. 고개를 떨구어 앞을 보니 왼쪽 눈의 물이 볼을 타고 주르륵 흘러내린다. 마치 눈물이 나는 것 같다. 켜켜이 쌓여 있는 수십 가지의 우산 속에서 흠뻑 젖은 옷을 입고 은수는 홀로 표표히 그 사이를 지나간다.
은수는 비를 사랑한다. 아니, 물을 사랑한다고 해야겠다. 수영하는 것을 좋아하고, 강과 호수와 바다를 좋아하며 샤워하는 시간이 하루에서 가장 좋아하는 시간이다. 빗소리를 애인의 목소리보다 반기고, 비가 쏟아지는 날 홀로 비를 맞는 것을 어머니의 품속처럼 편안하게 느낀다. 심지어 다른 사람들보다 물도 많이 먹어서 별명이 물먹는 하마였다. 요 며칠 비가 쏟아졌다. 다른 사람들이라면 퍼붓는 비에 불평도 하고, 어느 지방에서는 수해도 났다며 걱정하겠지만, 은수에게는 해당되지 않는 이야기다. 샤워하느라 쓰는 물에도 돈을 받는 이 세상에 하늘에서 은수가 사랑하는 물을 아무런 대가도 없이 하염없이 뿌려준다는데 불평할 것이 대체 무엇이 있겠는가. 돈을 사랑하는 사람이 하늘에서 돈을 뿌려준다면 하늘에 감사하며 얼른 밖에 나가 돈을 줍느라 정신이 없을 것이다. 은수도 그저 하늘에서 떨어지는 은수가 좋아하는 무언가를 만끽하러, 그것을 반기러 밖으로 나갈 뿐이다.
은수는 오늘도 창 밖의 비를 멍하게 쳐다보고 있었다. 장마철 퍼붓는 비를 보고 있노라면 걱정되는 미래와 답답한 현실에 묻힌 세상이 비에 쓸려 내려가는 것 같이 느껴진다. 오늘도 인터넷에 쌓여 있는 수많은 소설들을 읽으며 시간을 보냈다. 은수는 원래 시험을 준비하기 전 아는 소설이라고는 국어시간에 읽은 황순원의 <소나기>, 주요섭의 <사랑 손님과 어머니>가 전부였다. 그러나 공무원 시험 준비를 시작하고 공부하기가 싫을 때마다 소설을 인터넷에서 찾아 읽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이것도 국어 공부이니 도움이 될 것이라며 크게 죄책감 없이 읽기 시작한 소설이지만, 지금은 소설을 읽을 때면 은수는 자기 자신이 너무나도 못나고 하찮게 느껴진다. 소설이 나쁜 것도 아니고, 그 소설을 쓰기 위해서 은수보다 노력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다며 분노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진정하고 들어 보라, 이를테면 이런 식이다. 은수는 아침에 일어나 아침을 먹고 책상에 앉는다. 오늘 오전은 분명히 영어공부를 하기로 계획했다. 그러나 영어공부가 너무도 하기 싫다. 그렇게 습관처럼 웹진 비유에 들어간다. 딱 소설 하나만 읽고 다시 공부를 하려고 했지만, 소설을 읽고 읽다 보니 어느새 1시간이 지났다. 이제는 다시 공부를 해야 함을 인지하지만 공부를 다시 하기는 너무 싫다. 스트레스를 받고, 그러면 다시 소설을 읽고 싶다. <어린 왕자>에 나오는 술주정뱅이는 술을 마시는 것이 괴롭고, 그것을 잊고 싶어서 술을 마신다. 은수는 공부를 하지 않고 소설만 읽고 있는 자신이 괴롭고, 그것을 잊고 싶어서 다시 소설을 읽는다.
밥을 먹을 시간을 제외하면 남은 시간 쉬는 시간도 없이 계속 공부해도 모두 오늘의 공부 할당량 8시간은 10시가 되어야 채울 수 있다. 그러나 최근 들어 하루에 공부를 8시간 한 날은 없다. 그저 매일 괴로워할 뿐이다. 은수는 8시부터 12시까지 조금도 공부 시간을 채우지 못한 자신이 밉다. 배는 고프지 않지만, 비는 고파 오늘도 점심을 거르고 비를 맞기로 결정했다.
은수는 비를 맞으며 생각한다. 4년 전, 은수는 공무원 시험을 봐야겠다고 다짐했었다. 멋진 대학 간판, 스펙, 스토리도 없다. 대신 미리부터 공무원 준비를 시작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다른 것은 없지만 일찍 시작하니 시간이 있었다. 고등학교 때 공부를 곧잘 했으니 이 정도 시험, 어렵지 않게 붙을 것이라 생각했다. 꿈이 있었고, 공부도 나름 재미있었다. 공부가 어렵지 않았다. 은수가 휴학하자마자 시험 일자가 있었다. 경험 삼아 봐야겠다는 시험에서 1차를 붙어버렸다. 아쉽게도 2차에서 떨어졌지만 조금만 공부를 하면 붙을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바로 손 앞에 잡히는 것만 같았다. 공부를 하려면 제대로 해야지 다짐했다. 친구들도 만나지 않고, 소위 잠수를 탔다. 짧으면 다음번, 길어봐야 2년이면 합격할 것 같았다. 그렇게 시험을 합격한 후 멋지게 친구들에게 짠 나타나고 싶었다. 자발적으로 다이빙한 것이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