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화

<물방울>3

by 안건

“안 좋아요. 바로 수술하셔야 해요.”


항상 뻔한 말을 하던 안과였다. 언제나 같은 말만 반복하는 고장 난 라디오처럼 말이다. "눈 비비지 마세요. 인공 눈물을 자주 넣어보세요." 이번에도 당연히 그런 뻔한 말을 해야 했다. 그래야만 했다. 그러나 이번엔 달랐다. 은수의 증상을 듣던 의사가 바로 검사를 해야 할 것 같다고 이야기했다. 표정은 담담했다. 은수 역시 담담했다. 눈에 이상한 액체를 넣었다. 동공을 확장시켰다. 그렇게 30분을 기다리고, 검사를 했다. 검사를 다 받고 나니 거의 한 시간이 걸렸다. 은수는 쓸데없이 시간을 너무 낭비하고 있는 것 같아 답답했지만 소심한 성격의 은수는 아무 말도 없이 묵묵히 보내주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검사를 마치고 결과와 함께 의사를 다시 만났다. 당연히 또 같은 말을 듣고 집에 갈 줄 알았다. 그러나 은수는 조금 다른 말을 들었다.


“망막박리라는 것이 진행된 상태에요. 당장 수술해야 해요. 아주 심각한 병이에요 경우에 따라서는 시력이 심각하게 저하되거나 시력을 잃을 수도 있어요.” 말로는 분명히 시력을 잃을 수도 있다는 말을 하고 있다. 그런데 어쩜 저렇게 사람 좋은 목소리로 아무렇지 않게 이야기하는 것인지 은수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평소에 하는 눈 비비지 말라는 말을 할 때의 표정과 같았다. 아무 감정도 없는 표정. 그렇게 영혼을 잃은 표정으로 은수는 시력을 잃을 수도 있다는 말을 들었다.


“저 혹시 제가 다음 주 토요일이 공무원 시험이거든요. 그때까지 기다린 후에 시험을 보고 수술을 해도 되나요? 아니면 수술한 후에 회복이 될까요?” 은수가 물었다.


“이건 아주 심각한 병이에요. 지금 바로 병원 응급실로 가셔야 해요. 늦어질수록 회복 가능성이 낮아져요.” 답변은 단호했다. 칼 같았다. 절대 안 된다.


“제가 진단서 써드릴 테니까, 이거 들고 근처에 대학병원에 보호자와 함께 가세요. 지금 바로 가셔야 해요. 빠르면 오늘, 늦으면 내일 바로 수술 들어갈 거예요. 시험은……

일단 수술 경과 보고 결정하세요.”


은수는 밖으로 나와 어머니에게 전화를 해 이 소식을 알린다. 통화는 짧게 끝난다. 은수는 택시를 타고 병원으로 향했다. 다시 비가 쏟아진다.


은수는 바로 응급실로 들어갔다. 앞에서는 한 노인이 누운 침대와 함께 119대원과 함께 급하게 들어간다. 대조적으로 은수는 응급실에 걸어서 투벅투벅, 보호자도 없이 자신의 진단서를 직접 들고 들어간다.


“어떻게 오셨어요?” 응급실을 들어가니 의사로 보이는 한 사람이 묻는다. 은수는 생각한다. ‘어떻게 왔을까?’ 이상한 질문이다. 방법을 묻는 것이라면 택시를 타고 왔다만, 그 답을 듣고 싶은 것은 아닐 것이다. 이유를 묻는 것일 텐데, 은수 역시 이곳에 왔는지는 잘 모른다.


“그…… 안과를 갔었는데, 의사 선생님이 대학병원 응급실로 바로 가라고…… 이거……” 횡성수설 말을 하며 은수는 손에 든 진단서를 넘긴다. 진단서를 읽더니 의사는 증상을 물어본다. 은수는 안과에서 설명했던 내용을 다시 반복했다.


“네 이쪽 응급실 프론트에서 접수하시고 별관 2층 안과로 올라가세요.” 의사가 안내를 해준다.


‘별관2층, 별관 2층, 별관 2층’ 은수는 속으로 외우며 응급실에서 접수를 마친다. 은수는 별관 2층 안과에서 홀로 앉아 다시 하염없이 기다린다. 시험이 일주일 앞으로 다가왔다. 올해도 이 칠흑 같은 어둠 속을 벗어나긴 그른 것 같다. 아주 오랫동안 땅속에서 생활한 두더지는 자연스럽게 눈이 퇴화했다고 한다. ‘하도 오랫동안 잠수를 탔더니 벌써 눈이 퇴화가 되어 버리는 것인가’ 은수는 화가 난다. 원망스러운데, 누구를 원망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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