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마김밥 하나

<물방울> 4

by 안건

은수는 그렇게 멍청히 시간을 죽이며 기다리고 있었다. 은수의 어머니가 달려오신 것처럼 숨을 거세게 쉬며 손에는 무엇인가를 들고 주변을 돌아본다. 은수는 손을 들어 어머니를 부른다.

“어 은수야.” 어머니가 은수 곁에 와서 앉는다. 겨우 앉아서 숨을 건네자마자 “밥은? 뭐라도 먹었어?”라고 물으며 꼬마김밥을 건넨다.


“엄마, 무슨 꼬마김밥을 ㅅ”


은수의 말이 다 끝나기도 전에 어머니가 말을 가로 챈다. “엄마 잠깐 화장실 좀 다녀올게”


은수는 어이가 없어 웃는다. 그제야 은수는 어제 저녁을 먹고 지금까지 아무것도 먹지 않았음을 깨닫는다. 배가 고프다는 생각은 전혀 하지도 못했다. 꼬마김밥은 은수가 가장 사랑하는 음식이다. 많이 비싸지도 않다. 고소한 시금치와 사이사이 알싸한 마늘의 향, 특제 소스로 볶은 어묵은 감칠맛을 더해주고, 넉넉하게 뿌려주는 깨와 잘 펴 발린 참기름의 풍미까지. 쫄깃쫄깃하게 씹히는 특유의 식감까지 즐기고 나면 있던 걱정은 모두 사라진다. 인간이란 생각보다 단순한 존재다. 기분이 저기압일 때는 고기 앞으로 가라 하지 않던가? 고기는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 언제나 기분이 전환되었다.


그러나 지금, 은수는 쌓여 있는 꼬마 김밥 앞에서 나라를 잃은 사람 마냥 한숨을 쉬고 있다. 꼬마김밥과 눈싸움을 하고 있다. 여전히 고소한 참기름 냄새와 맛있게 보이는 꼬마김밥이 코와 입, 눈을 자극하며 매력을 발산하지만, 손은 움직이지 않는다. 꼬마김밥에 눈이 가지도 않는다. 이 쌓여 있는 꼬마 김밥도 이번엔 은수의 기분을 바꿔주지 못할 것 같다.


“김은수님?” 간호사가 은수를 부른다.


“네?”


“이쪽으로 오실게요.”


“잠시만요 어머니가 짐을 놓고 가셔서” 마침 멀리 화장실에서 나오는 어머니에게 은수는 눈짓을 하고 검사실 안쪽으로 들어간다. 검사는 정확히 좀 전까지 안과에서 한 것과 동일했다. 안압과 시력을 측정하고, 동공검사를 하고, 마지막으로 동공을 확대하는 안약을 넣으려 한다.


“이거 아까 안과에서 넣었었는데, 또 넣어야 하나요?”


“네 이미 시간이 많이 지나서 이거 다시 넣으시고 30분 정도 대기 후에 교수님 뵐게요”

그렇게 은수가 검사를 마치고 돌아오니 어머니가 안절부절 기다리고 있다. 다시 30분을 기다려야 한다.


“뭐래?”


“이거 안약을 좀 전에 눈에 넣었는데, 검사하려면 30분 정도 다시 기다려야 한다네. 배고프다. 그거 김밥 좀 줘”


은수는 이미 차갑게 식은 꼬마김밥 하나를 입에 넣는다. 꼬마김밥이 이렇게 맛없는 음식인지 몰랐다. 아무 맛도 느껴지지 않는다. 고무를 씹는 것 같다. 은수는 겨우 하나를 먹고 다시 내려놓는다.


평소에 어머니와 은수는 항상 쓸데없는 연예인 이야기를 하곤 했다. 이 연예인은 최근에 무슨 이슈가 있었고, 저 놈 저거 저를 줄 알았으며, 요즘 누가 너무 재미있다며 끊임없이 대화를 했다. 그러나 지금은 둘 모두 말없이 그저 앉아 있다.


은수의 왼쪽 눈의 동공은 점점 커졌다. 이제는 더 이상 왼쪽 눈으로 아무것도 볼 수 없을 정도로 눈이 커졌을 때 간호사가 은수를 불러 의사를 만났다. 의사는 이상한 틀에 은수를 앉히고 빛을 비추어가며 은수의 눈을 살폈다. 은수의 눈에 지나치게 밝은 빛이 들어와 은수를 괴롭게 한다. 은수는 의사의 지도에 따라 왼쪽, 왼쪽 아래, 아래, 오른쪽 아래, 오른쪽, 오른쪽 위... 정면까지 총 9가지로 눈동자를 굴리며 성실하게 검사에 응했다. 의사가 눈 모형을 보여주며 은수에게 설명했다.


“여기 보시면 눈에 이 엷게 보이는 막 있죠? 이게 망막이라는 겁니다. 환자분은 여기 망막에 처음에 구멍이 생겼어요. 그걸 망막열공이라고 불러요. 그러다 시간이 조금 지나면 이 구멍이 점점 커져서 그 구멍 안으로 물이 들어오고, 그 물 때문에 벽지가 일어나는 것처럼 망막이 떨어지는 현상을 망막박리라고 합니다. 환자분 눈이 지금 망막박리가 생겼어요.”


“저 혹시, 제가 다음주 토요일에 공무원 시험이 있는데요. 시험을 볼 수 있을까요? 은수는 아직도 이 일이 자신에 눈에 일어난 일이라는 것이 잘 믿겨지지 않았다. 시험을 볼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생길 뿐이었다.


“어찌 되었든 수술은 무조건 해야 하는 상황이에요. 하필 박리가 3시 방향에 생겨서 참 수술이 어려워요. 젊은 분이라 기왕이면 가스 주입술을 안하고 싶은데, 이 3시 방향이 근육이 접해 있는 부분이라 참 이게, 이게 참 난감한 상황이네. 이게 3시만 아니면 간단하게 수술하고 시험 볼 수 있는데 하필 3시냐...” 의사는 마치 3시 방향에 박리가 생긴 것이 은수의 탓인 듯, 나무라듯이 말한다.


“가스를 넣게 되면 아마 전신 마취를 해야 할 것 같은데, 마지막으로 뭐 드신거 언제에요?”

“저 조금 전에 앞에서 꼬마김밥 하나 집어먹고 왔어요.”

“조금 전에 드셨다고요? 방금? 아니 수술해야 하는데 뭘 드시면 어떡해요?!”

“죄송합니다...” 계속 은수는 이상하게도 죄인이 되었다. 은수가 잘 못한 것은 없는데도 말이다.

“간호사가 뭐 이야기 안 해줬어요? 이거 큰일이네 이거. 수술하려면 적어도 8시간 공복유지 하셔야 하는데”

“그 꼬마김밥 딱 하나 먹은 건데...”

“에이 그게 무슨 소용이야. 일단 입원 소속 하시고, 8시간 공복하면 몇 시야? 거의 12시네? 그렇게 늦게는 수술 못하는데.” 의사는 계속 혼잣말인지, 옆에 레지던트에게 하는 말인지, 아니면 은수에게 하는 말인지 불분명한 말들을 쏟아 냈다. “일단 그러면 내일 제일 빠른 시간으로 수술 잡아 보죠.”

“그러면 혹시 시험은...?”

“아이 참 지금 시험은 아무것도 아니에요 지금. 시험은 일단 수술 경과 봐야 돼요.”


은수에게 모든 것이었던 것은 시험은 그렇게 은수 자신도 아닌 다른 사람에 의해서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어버렸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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