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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건 Jan 27. 2021

서울대 수석의 고등학교 수학 공부법

2) 영문학을 좋아하는 기타 소년

 

남들이 축구공을 찰 때 나는 기타를 치며 자랐다. 음악을 업으로 하시는 친할아버지 밑에서 자라며, 자연스레 여러 악기를 접하게 되었고, 그 중 일렉기타는 나의 가장 친한 친구가 되어줬다. 중학교 때까지 정말 기타만 친 것 같다. 학교에 있는 시간을 제외하면 하루종일 기타만 치고, 주말이 되면 하루에 8시간 넘게 기타를 치는 건 아무렇지도 않았다. 나는 그 때 내가 기타리스트가 될 줄 알았다. 고등학교부터는 기타를 치는 시간이 줄었지만, 기타는 여전히 나의 가장 친한 친구이다. 


나의 또 다른 취미는 소설 읽기였다. 특히 영어권 소설을 많이 읽었다. 상업적으로 성공한 유명한 소설들은 다 읽은 것 같다. 해리 포터, 퍼시 잭슨, 트와일라잇 등등 그냥 누가 읽어도 재밌게 읽을 소설들을 읽었다. 다만 차이점이 있다면 이를 영어 원글로 읽었다. 영어를 처음부터 잘했던 것은 아니다. 처음에는 오기와 도전이었고, 나중에는 번역본에서 느낄 수 없는 사소한 어휘나 분위기의 차이에 맛들렸다. 


이 두 취미는 하나로 엮였다. 일렉기타를 워낙 좋아하다보니 외국의 로큰롤 밴드들에 많은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그들의 노래들을 듣고 커버하는 일이 일상이 되어 있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가사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계속 듣다보니 이게 도대체 무슨 말을 하려는 걸까 궁금해서 "the meaning of XXX"와 같이 구글 검색을 하기 시작했다. 나와 같은 사람들이 꽤 많았다. 어느새 나는 영어권의 여러 커뮤니티 사이트에서 유명한 밴드 곡들의 가사 속 의미를 분석하고 다른 외국인들과 의견 교류를 종종 하게 되었다. 초등학교 6학년부터 중학교 2학년까지 그랬던 것 같다. 자연스레 나는 나만의 가사를 쓰고 싶어졌고, 작사작곡을 하기 시작했다. 어린 나이이기에 단편적인 곡들밖에 못썼지만, 정말 재밌게 시간을 보냈다. 학교 밴드부에서 내 노래를 부르기도 했다. 동경하는 음악인들이 전부 영어권 사람들이다 보니 가사는 전부 영어로 썼고, 나중에는 취미로 영어로 시를 쓰기도 했다. 

그렇게 인생을 보내다 나는 중학교 3학년이 되었다.  


3) 너는 수학이 안돼서 문과를 가야 해  


일렉기타를 치는 것이 인생에서 참 여러 영향을 끼쳤다. 중학교 2학년이 되어서는 이 떄문에 컴퓨터공학과에 진학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일렉기타를 치다 보니 여러 전자 장비를 만지게 되었다. 전기전자회로에 대한 이해를 요구하는 메뉴얼들을 이해하기 힘들어도 꾸역꾸역 읽었다. 일렉기타 치는 영상을 찍으면서 영상 편집이랑 오디오 처리도 많이 했고, 작곡을 하다 보니 프로듀싱 기술도 익혔다. 이 과정에서 컴퓨터와 정말 가까워졌고, 그러다 보니 코딩에도 관심을 가지게 되어 혼자 웹 개발을 끙끙대며 해 보기도 했다. 결과적으로 나는 대학교에 간다면 컴퓨터공학 전공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래서 중학교 3학년이 된 후에 나는 수학 선생님께 컴퓨터 공학과를 가고 싶다고 말씀 드렸다. 그래서 고등학교에 간 다음에 이과를 선택하는건 어떻겠냐고 여쭤봤다. 선생님께서는 나를 걱정하셨다. 너는 고등학교 수학 예습을 어디까지 했냐고. 지금 이과를 가려는 애들은 최소한 기하와 벡터까지는 손을 대 보았다고, 괜히 갔다가 크게 다칠 수도 있다고 말씀 해 주셨다. 나는 이 얘기를 듣고 지레 겁을 먹었다. 그리고 이과에 대한 경외심이 생겼다. 담임 선생님께서는 너는 영어를 잘 하니 국제고 (공립 특수목적 고등학교이며 외국인들이 가는 국제 학교와는 다르다) 진학을 해 보는 건 어떻겠냐고 말씀하셨다. 수학에 대한 겁을 많이 먹은 상태였고, 담임 선생님 말대로 나는 영어 실력이 꽤 좋았다. 담임 선생님이 말을 워낙 설득력있게 잘 하시는 것도 한몫 했다. 서울국제고등학교에 지원했고, 다행히도 합격을 해서 나는 문과 계열 특목고에 진학하게 되었다.  


4) 40점  


처음 온 특목고의 분위기는 정말 새로웠다. 누구보다 열심히 사는 아이들, 열정 넘치는 선생님들, 좋은 교실과 공부 환경까지, 괜시리 여기에 붙은 내가 대견하고 뿌듯했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시험기간이 다가왔다. 모두가 긴장하며 열심히 공부하는 분위기였다.


나의 가장 큰 걱정은 역시나 수학에 있었다. 입학을 하기 전까지 여러 괴담(?)을 들었다. 특목고 아이들은 수학을 어디까지 공부하고 들어온다더라, 특목고 전교 일등은 수학 문제를 바람 날리듯이 빠르게 풀 수 있다더라 등 여러 카더라에 휘둘렸다. 실제로 입학 후에 만난 친구들도 전부 나는 수학의 정석을 2번씩 풀고 왔다, 수능 문제도 풀 수 있다 등 여러 얘기를 했고, 나의 겁은 커졌다. 물론 저 친구들의 얘기는 지금 생각해보면 모두 허세다. 

정말 열심히 공부했다. 눈에 보이는 수학 문제집은 전부 사서 다 풀어보았다. 문제 풀다가 죽는 건 아닌가 싶을 정도로 많이 풀어봤다. 그러다 보니 스스로가 대견해지고, 시험도 잘 칠 수 있겠다는 묘한 자신감이 생겼던 것 같다.


그리고 시원하게 망했다. 수학 시험지를 받자 마자 나는 패닉에 빠졌다. 이미 풀어본 문제, 아는 것에서 응용하면 풀 수 있는 문제, 아예 못 푸는 문제, 다 상관 없었다. 정신이 나가니 풀 수가 없었다. 정말 간단한 계산 문제 위주로 어떻게든 풀었으나, 나는 시험지를 내자 마자 직감할 수 있었다. 나는 망했다. 괜히 특목고 왔나? 대학교는 갈 수 있을까?


결과적으로 고등학교 첫 학기 나의 수학 점수는 약 40점이었다. 이것도 운이 좋아서 잘 받은거다. 정확한 등수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뒤에서 세는 게 훨씬 빠른 그런 등수를 받았다. 그때는 오만가지 생각이 다 들었다. 친구들한테도 징징대 보았다. 17살 어린 아이들이 서로 의미있는 위로를 하기는 힘들다. 그냥 '힘 내', '잘 되겠지'의 위로가 오고갔던 것 같다. 


그렇게 한 학기가 끝나고 여름방학이 왔다. 시간이 조금 지나니 패닉에서 회복할 수 있었다. 나는 이것을 극복해야겠다고 마음 먹었다.  


5) 학자가 연구하듯이 공부하자 


중학교때는 참 특이하게 공부했다. 솔직히 내가 왜 공부를 해야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왜 수학 문제를 풀어야 하고, 왜 곧 까먹을 내용들을 암기해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래서 15살의 나는 어차피 해야 된다면 그 이유라도 스스로 명확히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과목별로 이걸 왜 공부해야되는지 생각해내서 내면화해 보았다. 수학을 해야 하는 이유는 논리적이고 이성적인 사고방식을 가진 어른이 되기 위해서, 국어를 공부해야 하는 이유는 내 감수성을 키우고 냉소해지지 않기 위해서 등 참 여러 이유를 갖다 붙였다. 공부를 하면서도 세세한 내용마다 이걸 왜 공부해야하는지 생각해 내는 것이 우선이었다. 꾸역꾸역 이유를 만들어내고 그걸 스스로가 납득이 되면, 외우든 풀든 했다. 의미 없는 암기와 이해는 진짜 죽도록 싫었던 것 같다.


고등학교 1학년 1학기가 끝난 17살의 나는, 한 학기동안 정말 나답지 않았다는 생각을 했다. 1학년 1학기의 나는 왜 공부를 해야 하는 지, 내가 무엇을 배우고 있는 지에 대한 생각이 결여됐었다. 오로지 시험을 잘 보겠다는 목표로 정신 무장을 한 채 달려들었던 것 같다. 특히 수학 공부에서 그랬다. 의미 없는 문제 풀이와 의미 없는 풀이 암기, 와닿지 않는 수학 공부의 연속이었다. 


반성의 시간을 가져야겠다고 생각했다. 다시 초심으로 돌아가서, 의미 있는 공부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나답게 공부할 때 가장 좋은 결과가 나올 것이라고 스스로를 다독였다. 여름방학이 시작하고 나는 고등학교 수학을 다시 처음부터 공부했다. 정말 수학이라는 학문을 깊이 있게 들여보고 싶다는 생각으로 공부를 시작했다. 공부 시간을 채우는 것, 푸는 문제 수를 채우는 것 등의 목표를 절대 세우지 않았다. 의미 없는 공부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여름방학이 시작하고 1주일동안 나는 하루에 18시간씩 7일동안 수학 공부를 했다. 그러나 전혀 지루하거나 힘들지 않았고, 너무 재밌었다. 이제 내가 어떻게 공부를 했는지 소개하고자 한다.


개념 하나하나에 정말 깊이 있게 파고 들었다. 사소한 수학적 개념 하나라도 몇 시간동안 들여다보여 그 원리를 이해하고자 했다. 고작 몇 줄에 불과한 수학 공식, 수학적 정의, 아니면 개념의 소개 같은 걸 몇 시간동안 뚫어져라 쳐다보며 고민했다. 이 개념이 왜 소개되는걸까? 지금까지 내가 배운 수학의 체계 속에서 이게 왜 중요한걸까? 이건 대수적으로, 또는 기하학적으로 무슨 의미를 가질까? 고등학생이 할 수 있는 고민은 전부 해 보았다. 내가 공부하는 내용이 어떠한 증명이 존재하는 수학적 정리에 대한 내용이라면 절대 그 증명을 내 눈으로 보지 않았다. 모든 것을 멈추고, 내 스스로 생각하기에 자명한 증명이 2~3개 떠오르기 전까지는 다른 무엇도 하지 않았다. 나 스스로 모든게 당연스레 납득되기 전까지는 한 줄도 넘어가지 않았다. 마치 복잡한 직소 퍼즐을 풀어 나가는 기분이었다. 최소한의 단서만으로, 나머지 그림은 내가 채웠다. 


그렇게 몇 시간, 며칠을 개념과 씨름한 후에는 그 내용에 해당되는 문제들을 풀었다. 그러나 여러 이유로 문제는 거의 안 풀었다. 개념을 그렇게 들여다보고 생각하고 고민하니 중급 수준의 문제까지는 너무 가볍게 풀렸다. 그래서 그냥 안 풀고 넘어갔다. 고급 단계의 문제는 전부 안 풀고 서로 유사하지 않은 것들 몇 개만 골라서 풀었다. 아무리 혼자서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공부했다 하더라도 나는 아직 수학적 베이스가 없는 고등학교 1학년이었다. 어려운 문제들은 여전히 어려웠다. 다만, 문제를 못 풀어도 절대 풀이를 보지 않았다. 문제를 몇 시간 넘게 잡고 있어도 안 풀리면 표시해 뒀다가 다음 날 다시 보고, 그래도 안 풀리면 다음 날, 그래도 안 풀리면 다음 날 다시 도전했다. 그렇게 하면 일주일 안에 95%의 문제는 다 풀었다. 개념에 대한 이해가 탄탄하게 있으니 계속 고민하면 풀리는 것이다. 그러면 나머지 5%는 풀이를 봤을까? 아니다. 수학 선생님을 찾아 뵈어서 질문했다. 선생님께 질문하면 더 생생하고, 내가 추가적으로 생기는 궁금증에 대해서도 계속 여쭤볼 수 있었다. 그러니까 나는 풀이를 절대 보지 않았다. 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 내가 푼 수학 문제가 100이라면, 그 중 95 이상은 풀이를 보지 않았다. 풀이를 보는 건 치열하게 생각하고 고민하는 걸 포기하는 것이고, 더 깊은 생각을 하지 못한 채 저자의 생각에 묶인다. 그리고 재미 없다. 


지금이나 그 때나 드는 공통적인 생각은, 풀이를 보는 건 공부에 있어서 독 (당연히 수학에만 해당되는 얘기다. 다른 과목은 봐야 한다) 이다. 다시 말하지만 풀이를 보는 것은 나의 생각을 멈추는 행위다. 풀이를 쓴 사람의 생각에서 더 나아가지 못하게 된다. 풀이를 보지 않아야 내 풀이에 확신이 생길 때까지 계속 고민하고 생각하게 된다. 그 과정에서 새로운 풀이가 더 생각날수도 있고, 수학적 인사이트를 얻어 갈 수도 있다. 생각의 폭이 계속 넓어지는 것이다. 


수학은 기본적인 공리로부터 시작해 논리적으로 정리를 차곡차곡 쌓아 나가는 학문이다. 수학을 잘 하는 가장 직관적이며 좋은 방법은 수학자처럼 공부하는 것이다. 학자가 학문을 하듯이 공부하는 것이 가장 좋은 공부법이다. 그러려면 그 학문의 깊은 세계에 파고들어가 그 세계를 음미하고 즐길 수 있어야 한다. 이런 생각이 바탕에 깔리면 수학 공부를 하는 데 있어서 우선순위를 어떻게 줘야 하는지는 명확해진다. 개념을 들여다 보고 그걸 이해하며 스스로 생각을 펼치는데 가장 오랜 시간을 투자해야 한다. 그 다음이 문제 풀이다. 문제 풀이는 내가 쌓은 나만의 수학적 체계를 사용하는 것일 뿐이다.


공부가 진정 되고 있는 순간은 머리가 지끈거릴 때다. 무언가 이해가 되지 않아서 그걸 이해하고자 끙끙대고 머리를 쥐어 싸매고 있을 때 바로 내가 공부를 하고 있는 것이다. 수학 문제 풀이, 특히 중급 수준의 문제까지는 개념만 잘 안다면 술술 풀린다 (그렇지 않다면 개념 공부부터 다시 해야한다). 술술 풀리니 재밌고 공부를 한다는 느낌이 들 수 있다. 명쾌하게 딱딱 떨어지는 쾌감이 있다. 그러나 이는 내가 이미 잘 알고 있는 것을 확인하는 것일 뿐, 내적 성장은 동반되지 않는다. 이해가 되지 않는 개념을 한참 들여다 볼 때, 정말 어려운 수준의 문제를 풀고자 며칠을 그 문제 생각만 하고 있을 때 우리는 성장한다.


공부를 잘 하고 싶다면, 그것도 전국에서 제일 잘 할 정도로 잘 하고 싶다면 (나는 모두가 이렇게 할 수 있다고 믿어야 된다고 생각한다) 고민하고 생각하는걸 누구보다 즐길 수 있어야 한다. 소위 노력하는 자는 즐길 줄 아는 자를 못 이긴다고 한다. 이게 바로 그것이다. 혹자는 공부를 잘하는 사람들이 무식하게 암기 하는 것을 즐겨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거 좋아 할 사람은 서울대 어디에도 없다. 공부를 좋아한다는 건, 모르는 것을 탐구하고 이해하기 위한 내적 생각의 흐름을 즐기는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탐구하고 연구하는듯이 공부하는 방법을 터득하기만 하면, 정말로 재밌다. 공부가 재밌다는, 어릴때는 미친 줄 알았던 소리를 하게 된다.


그렇게 나는 수학 공부가 무엇인지 탐구해 가며 고등학교 1학년 여름방학을 보냈다. 수학 교과서 한 페이지를 넘기는 데도 몇 시간이 걸리는, 말도 안되는 공부 방식이었지만, 수학 공부가 그렇게 재밌을 수가 없었다. 따분하게 공식을 외워 문제만 달달 풀던 공부에서, 스스로 고민하고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공부를 하니 시간 가는 줄 몰랐다. 공부를 하는게 아니라 탐구를 하는 기분이었다. 탐구의 재미는 무궁무진했다. 하루가 지나가고 다음날 공부를 시작하려고 하면 어제 내가 머릿속에서 어떤 탐구를 했는지 다시 쭉 상상을 했다. 상상이 되지 않으면 다시 처음부터 나만의 방식으로 상상을 펼쳐 나갔다. 절대 외우려고 하지 않았다. 이렇게 난, 마치 학자가 학문하듯이 공부하며 여름방학을 보냈다.


다음 글: 

https://brunch.co.kr/@geonahn/256


서울대학교 자유전공학부- 설형욱 (인스타그램 @stuarts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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