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안건 Feb 02. 2021

인류 문명의 바벨탑에 벽돌을 쌓기 위한 공부

[공부가 하고 싶은 이유]


[공부가 하고 싶은 이유]


인류 문명의 바벨탑에 벽돌 하나라도 쌓고 싶다...

   

    2018년, 나의 2학년 2학기가 끝나갈 때쯤 대나무 숲 글을 공유하며 작성한 sns 글이다. 밤새 공부를 하다 새벽 감성에 취해 썼기에 많이 오글거리긴 하지만 내 삶의 원동력을 가장 잘 표현하고 있는 것 같다. 스스로 그렇게 생각해본 적은 없지만 ‘열심히 산다’라는 평가를 종종 주변에서 받곤 한다. 나보다 훨씬 더 열심히 노력하고 빛나는 성취를 이루는 사람들을 많이 알기에 이런 평을 받을 때면 부끄럽긴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그래도 이만하면 열심히 사는 축에 드는구나, 하고 안심이 된다. 그러고는 또 드는 생각, ‘안심이 된다니, 이것도 집착이라면 집착이구나'. 요즘은 좀 나아졌지만, 시간을 낭비하지 않고 가치 있게 써야 한다는 생각이 머릿속에 너무 깊숙하게 자리한 나머지 열심히 살지 않는 것이 두려웠다. 심지어 자기 전에 하루를 낭비했다는 생각이 들면 후회감에 잠을 설치고는 했고 취미 활동을 할 때도  이게 내 인생에 어떤 도움이 되는지 생각하곤 했으니 얼마나 심했는지 멀리서도 대략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가치 있는 삶에 대한 욕구는 쉬고 싶고 또 놀고 싶은 욕구와 늘 충돌해왔고 서로 엎치락뒤치락하며 나의 삶을 이끌어왔다. 편안히 놀고 쉬는 것을 마음속에 한 구석에서 끊임없이 방해하는 셈이니 힘들긴 했지만 덕분에 예상보다는 많은 것을 성취할 수 있었던 것 같다. 특히나 고등학교 시절 나의 성취는 대부분이 이런 강박의 도움을 받은 것이다. 그 시절 나에게 ‘시간을 가치 있게 쓰는 것’이란 곧 ‘공부하기’와 같은 말이었다. 쉬는 것조차 굉장히 죄책감이 느껴지는 일이었는데 대학생이 되고 체력이 나의 열정을 따라가기 힘들 정도가 되고 나서야 휴식이 지속 가능한 성취에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덕분에 이제 ‘시간을 가치 있게 쓰기’라는 나의 소신을 유지하면서도 더 이상 스스로를 혹사시키지는 않고 있는 중이다.


    그럼에도 과거나 지금이나, 공부가 정말 가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공부하지 않는 나의 인생은 상상할 수도 없다. 상대주의의 열렬한 지지자로서 공부에 대한 내 생각이 절대적으로 옳다고는 하고 싶지 않다. 어차피 물리적 관점에서 보면 보면 인간이 어떤 행동과 생각을 하더라도 그게 특별한 의미를 가지지는 않는다. 옳고 그름, 좋고 나쁨이 없는 자연현상의 일부일 뿐이다. 그러나 적어도 나에겐, 나의 세계에서는, 공부라는 것이 상당한 의미를 지닌다고 확실히 말할 수 있다. 나의 꿈은 사진에 나와있는 것처럼 ‘인류 문명의 바벨탑에 벽돌을 쌓는 것’이니까. 단순히 성공하여 안락하게 사는 것이 목표라면 인생이 너무 허무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종종 든다. 별다른 꿈이나 목표 없이 그냥저냥 좋은 대학을 나와 안정적이고 좋은 직업을 가지고 계속 일해서 돈을 모으고… 그렇게 사회적 기대에 따라 체제의 톱니바퀴로서의 역할을 성실히 수행하는 반복적이고 예측 가능한 삶. 그런 삶은 상상하기만 해도 숨이 막히는 것 같다. 불확실성에서 오는 설렘으로 가득한, 동시에 더 나은 미래에 대한 기대와 믿음이 있는, 그런 낭만적인 삶을 살고 싶다. 그리고 그 미래를 내 힘으로 만들어 갈 것이라는 각오는 늘 나의 가슴을 뛰게 만든다.



    사람들은 자신이 속한 특정 집단에 소속감과 자부심을 느끼는 경향이 있다. 누군가는 국가와 민족에 대한 자부심, 또 누군가는 출신학교에 대한, 또 다른 누군가는 출신 지역이나 혈통에 대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나 또한 소속감과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데 그 대상이 좀 특이하다. 난 인류라는 종에 대해 소속감과 자부심을 가진다. 우주 한 구석의 창백한 푸른 점에서 우연히 출현한 생명이 복잡한 진화의 과정을 통해 인류라는 종이 되었다는 사실만으로도 신비롭지만, 거기서 다시 선사시대와 역사시대의 수많은 일들을 거치며 선조들의 지식을 계승하고 점점 발전해가고 있다는 사실을 생각해보면 우리 종의 성취는 경이로울 정도이다. 이제는 그간 신의 영역이라 여겨졌던 부분까지 그 비밀을 밝혀내고 있는 것을 보면 인류의 발전 과정이 바벨탑 신화 같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신화 속의 바벨탑은 실패로 돌아갔지만 현재 진행형인 인류 문명의 바벨탑은 꼭 성공하기를, 앞으로 점점 더 지식의 경계를 확장하고 지속 가능한 공동체를 구성하여 카르다 쇼프 척도의 1,2,3 유형의 문명으로 점차 나아가기를 바라고 있다. 그래서 나도 뉴튼과 아인슈타인처럼 문명을 획기적으로 발전시켜 인류의 멋진 역사에 중요한 발자취를 남기고 싶다. 물론 그 정도의 업적은 (높은 확률로) 못 쌓을 수도 있으나 나의 노력은 여전히 역사에 유의미한 결과를 남길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나의 성과 위에 다른 이의 성과가 얹히고 또 그 위에서 새로운 성과가 피어나고... 그렇게 세상을 바꾸고자 하는 노력들이 쌓여 인류는 발전하는 것이기에. 물방울이 바위를 뚫는 것처럼, 불가능해 보이는 일들에 대한 수많은 사람들의 지속적인 도전이 수억 명의 생명을 구하고, 사회의 변혁을 일으키고, 지식의 경계를 확장시켜왔다. 그러니 나도 꾸준히 노력해서, 그렇게 언젠가는 인류 문명의 최전선에 올라 지식의 벽돌을 쌓아나갈 것이라고 각오했고 이것이 내 꿈이자 인생의 소명이라고 느낀다. 그렇기에 난 공부를 하고 싶고, 또 해야 한다.



[꿈과 공부의 눈덩이]


    구체적으로 기억은 안 나지만 이렇게 다소 큰 꿈을 키워나가게 된 건 중학교 무렵부터인 것 같다. 부끄러운 점은 이 시기에 꿈을 이루기 위한 나의 노력이 꿈의 크기에 비례하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분명히 내가 원하는 꿈을 위해서는 공부를 해야 한다는 걸 알았다. 열심히 공부해서 기초를 튼튼하게 하고 최대한 좋은 대학에 진학해 좋은 환경에서 공부를 시작해야 한다는, 그러기 위해서는 지금부터 열심히 해야 한다는 자명한 사실을 깨닫고 있었지만 공부가 너무 하기 싫었고 그래서 하지 않았다. 대신 책, 영화, 게임 등의 취미생활이 내 중학교 생활의 대부분을 차지했다. 아마 많은 독자분들이 공감할 수 있지 않을까? 세상에 재밌는 것이 이렇게나 많은데 가만히 앉아서 공부를 한다는 건 생각만 해도 오장육부가 틀어지는 느낌이었다. 그렇다고 꿈을 포기한 것은 또 아니었는데 이런 모순은 아마 ‘나는 고등학교 가서 공부하기만 하면 엄청 잘할 수 있어’라는 막연한 자신감 때문이었을 것이다. 다만 한 가지 다행인 점은 그렇게 놀면서도 스스로 정했던 ‘수업내용 따라가기’라는 마지노선을 필사적으로 지켰다는 점이다. 학문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사람으로서의 양심, 또는 알량한 자존심 때문이었는지 시험에서 90점은 가급적 넘기고 80점 이상의 점수는 반드시 사수하려고 했다. 그리고 특히나 흥미를 가지고 있던 과목들은 상당히 열심히 공부(아마 벼락치기였을 것이다)해서 100점에 가까운 점수를 몇 번(딱 몇 번에 그치긴 했지만) 받아낸 경험도 있다. 덕분에 늘 스스로를 현재의 성적보다는 훨씬 잘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고, 이는 앞서 언급한 막연한 자신감의 근거가 되었다.


    이렇게 중학교에서의 작은 성취로부터 비롯된 나의 자신감은 꿈을 포기하지 않고 키워나가는 것에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 꿈은 꾸기 쉬운만큼 깨기도 쉽다. 아무리 거창한 포부도 자그마한 좌절감에 집어삼켜지는 경우가 상당히 많다. 목표의식을 보호하고 성장시키는 가장 중요한 방어막은 강력한 자기 신뢰이고 이러한 자기 신뢰는 성취의 경험에서 온다. 이 단순한 인과관계는 공부에 있어서도 스노볼 효과를 만들어내는데,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자면 공부는 잘해본 사람이 계속해서 잘한다. 공부를 잘하기 위해선 동기부여가 필요하다. 아마 독자분들도 참 많이 들어왔던 말일 것이다. 나의 경우 학문적 기여라는 꿈이 동기가 되어 열심히 공부하는 것처럼 공부를 하고자 하는 이유가 있어야 지속적으로, 열정을 가지고 공부할 수 있다. 그런데 동기부여 또한 공부를 필요로 한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은 것 같다. 정확히 표현하면 공부를 잘해본 경험이, 사소하게는 특정 과목의 공부에서 작은 성과라도 내본 경험이 자기 신뢰로, 그리고 다시 동기부여로 이어진다. 가장 중요한 것은 아무리 사소하더라도 본인이 정한 목표를 달성해내는 것, 그렇게 하여 작은 성취라도 경험을 해보는 것이다. 목표가 반드시 거창할 필요는 없다. 오히려 작은 목표가 더 좋다. 시작부터 달성하기 힘든 거창한 목표를 세운다면 아무리 강한 동기부여로 공부를 시작한다고 해도, 빠르게 달성되지 않는 목표에 조급해지고, 좌절감을 느끼기 쉬울 것이다. 반대로 단 한 과목에서라도 시험에서 스스로의 목표치를 넘겨본 경험이 생긴다면, 이것이 다시 공부를 더 잘해보고 싶다는 욕심으로, 그리고 더 큰 포부로 이어질 수도 있다. 이렇듯 공부와 동기부여는 순환적인 구조다. 마치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하는 따위의 문제처럼 무엇을 먼저 해야 한다고 딱 잘라 말할 수는 없지만 자연스레 이 둘은 함께하며 선순환, 또는 악순환의 구조를 만들어낸다. 마치 눈덩이가 커지는 것처럼 작은 동기부여, 그리고 조금씩 시작한 공부, 또 조금씩 오른 성적이 계속 되풀이되며 점점 큰 꿈을 가져가고 공부를 잘하게 되는 것이다. 내 과거를 돌이켜보면 중학교 시절부터 작은 눈덩이를 굴리기 시작하다가 고등학교에 들어서 이 스노볼 효과를 굉장히 뚜렷하게 경험했다고 할 수 있는데 이 시기에 지금의 꿈과 공부 습관을 완성할 수 있었다.




<공대에 가고 싶어졌습니다.>는 좋은 출판사를 만나 책을 계약했습니다. 훨씬 더 다듬어지고, 편집되고 중간 중간 중요한 팁들도 많이 들어가 훨씬 보기 좋습니다. 아래 링크에서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예스24

https://url.kr/nilvgq

교보문고

https://url.kr/qmodlr

알라딘

https://url.kr/53roj7

인터파크

https://url.kr/cawthm




이전 03화 서울대 수석의 공부법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