멘탈이 두부인 학생들을 위한 공부 이야기
두부는 너무 으깨지기 쉬워 다른 경쟁자들에 비해 요리사의 관심과 보살핌을 더 많이 필요로 한다. 그렇다고 많은 관심과 정성을 부었을 때 그 결과물이 항상 최상의 결과로 나오는 것도 아니다. 부침가루 묻은 두부를 계란 지단에 옮겨 닮는 과정에 젓가락 끝에 조금이라도 힘이 모이는 순간 두부는 반으로 쪼개진다. 또 계단 지단을 묻힌 두부를 프라이팬으로 옮기는 과정에서도 조금만 손에 힘이 들어가면? 깔끔한 형태의 두부전을 우린 만날 수 없다. 그대로 깨진다. 그리고 내 멘탈이 두부와도 같다. 타고난 성격이 예민하고 생각이 많은 탓에 시험 직전까지 암기에 집중하느라 필통과 컴퓨터용 사인펜을 챙기지 않은 체 시험장에 들어간 적도 많았고, 들어간 시험장에선 옆 친구에게 빌린 그리 중요하지도 않은 낯선 컴퓨터용 사인펜의 그립감이 내 집중력을 야금야금 빼앗아 갔다. 그리고, 저 멀리 10 미터 앞 친구가 다리 떠는소리는 또 그렇게 선명하게 들린다. 이렇게 중학생 나이의 나는 예민함과 고민으로 멘탈이 쉽게 흔들리는 사람이었다.
모든 분야가 그렇겠지만 공부는 장기 레이스이다. 장기 레이스에서 멘탈이 약한 사람은 다른 사람들에 비해 좌절을 더 자주 만나고 결국 실패 혹은 포기를 경험하기도 한다.
이 글은 소위 두부 멘탈, 유리 멘탈로 일컬어지는 연약한 마음을 가진 학생들이 어떻게 이 어려움을 극복하고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을지를 생각하며 쓴 글이다. 쉽게 흔들리는 학생들일수록 자신의 설정한 특정 목표를 구체적으로, 그리고 즐길 수 있는 선에서 설정해야 함을 깨달았다. 그래서 이 글은 공부에 대한 ‘목적’을 어떻게 세울 것인 지에 대한 내 고민이 함께 들어가 있다. 따라서 자신의 예민한 성격으로 인해 고민이 있는 학생뿐 아니라 내가 왜 공부하는지에 대한 고민이 있는 학생이라면 이 글이 도움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글을 통해 멘탈이 약했던 한 학생이 만난 어려움과 고민들, 그리고 그 학생이 갖고 있던 공부하는 이유, 그리고 공부라는 장기 레이스에서 멘탈을 지키기 위해 개발한 나만의 공부 철학을 전달해보려 한다.
사람들마다 공부하는 이유가 다르다. 사람은 다 다르니까. 그럼에도 때론 사람들 간 비슷한 구석이 있어 모든 사람이 다 가슴에 자신만의 독특한 신념을 갖고 공부하진 않는 것 같다. 학교 내신에서 최상위권에 위치한 채 내려올 생각이 없는 공신들 중에도 보편적인 목적을 가지고 공부를 하는 친구들이 있다. 이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공부를 잘하는 것과 공부하는 이유는 그렇게 큰 상관이 없음을 말하기 위해서이다.
우선, 이 글을 읽는 독자 분들이라면 혼자 글로 그 이유를 적어보거나 말로 표현하는 것을 시도해 보길 바란다. 막상 누군가 앞에서 자신 있게 발표하거나, 글을 적어 내려가기 어려운 주제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내면 끝까지 파고들어 공부하는 그 어떤 심오한 이유를 찾아야만 하는 것이라고 묻는다면, 그것 역시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 ‘부자로 살고 싶다’. ‘좋은 대학에 입학해 부모님께 효도하고 싶다’. ‘공부하는 것이 너무 즐겁다’. ‘공부가 가장 쉽다’ 등. 사람마다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관이나 욕망이 다르기 때문에 분명 공부하는 이유는 다르다.
자 그렇게 각자만의 공부하는 이유를 생각해보았다면 그렇다면 그게 정말 ‘공부’하는 이유가 될 것인지 한번 생각해보자. 일종의 연속되는 사고 실험을 진행하는 중이라고 생각하면 편할 것이다. 여러분들 각자의 이야기가 궁금하지만 아쉽게도 이 책에선 나의 이야기만을 할 기회가 주어졌으니 두 질문 (공부하는 이유, 그것이 정말 공부하는 이유가 될 수 있는지)에 대한 내 생각을 적어보려 한다.
초, 중 시절 내가 공부라는 것을 처음 시작한 이유는 가풍이었다. 성과급 용돈 제도 시행 아래서 나는 선행을 하거나 부모님의 심부름을 하면 보너스를 받을 수 있었다. 나는 당시 좋은 기말고사 성적 결과로 받게 될 보상(용돈, 닌텐도 DS 구매, 혹은 부모님의 칭찬)으로 인해 공부를 열심히 했던 것 같다. 보상은 나와 부모님의 상호 간 협상 혹은 합의로 이루어졌고 <합의, 공부, 보상> 이 세 과정을 겪으며 지금의 나를 만든 사고방식과 습관을 형성하게 되었다 (돌이켜보면 중학생의 시선에서 존중해준 부모님의 몫이 굉장히 컸다). 이렇듯 내가 공부를 처음 시작한 이유에는 노벨상을 받겠어! 지적 목마름을 채우지 않고 나는 살아갈 수 없어! 는 없었다. 보상이 주는 즐거움으로 공부를 시작하였고 공부 자체가 주는 그 손맛은 한참 뒤에 알게 되었다. 어떤 이유에서든 나는 스스로 납득할 수 있는 공부의 이유가 있었고, 덕분에 어린 나이의 나는 공부를 ‘싫어하지 않을 수 있었다’.
시간이 지나 고등학교 내신, 대학교 입시 등을 마주하게 되면 ‘공부해야 할 이유’에 대한 협상 테이블의 규모는 커져있다. 협상의 상대방 역시 시간이 흘러 ‘부모님’에서 점차 ‘내가 중요시하는 가치관’으로 변화해간다. 공부의 가치가 중요해질수록 그 상대방과 합의에 이르기 위해 협상하는 시간은 늘어나기도 한다. 하지만,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면 내가 공부하기를 납득할 수 있는 이유는 내가 갖고 있는 것이다. 성인이 된 지금, 공부를 한다고 해서 부모님이 나에게 기타나 DSLR을 사주시지 않지만 공부를 통해 내가 살고 싶어 하는 삶의 모습에 조금씩 다가가게 된다.
이 글을 읽고 있는 학생들에게도 한 번쯤 이 과정을 시도하길 추천한다. 협상해보자. 누군가 (부모님, 멘토, 선생님) 와의 대화를 통해 시도해보는 것도 좋고, 스스로 일기장에 글을 적어 내려가면서 찬찬히 정리해보는 방법도 추천한다. 내가 공부하는 원초적인 이유, 그 이유가 정말로 공부하는 이유로 이어지는지 (이 질문이 굉장히 중요하다)를 생각해보자
사유를 통해 자신만의 공부하는 이유를 찾아갈 수 있을 것이다. 높은 수준의 사고를 요하는 어려운 방법이 아니지만 앞으로 누군가의 삶이 아닌 내 삶을 살아가고 싶은 사람들에게 이 과정은 대단히 핵심적이라고 생각한다.
공부에 대한 고민을 이리저리 하다 보면 시간은 금방 흐르고 여러 가지 의문들이 곁가지를 치고 들어오기도 한다. 나는 공부를 그렇게 잘하거나 좋아하지 않는 데? 아 나는 생각보다 그냥 내 인생을 즐기며 사는 것을 좋아하니까 공부던 무엇이건 그건 내 삶을 살기 위한 수단으로써만 역할하면 충분한 데? 나는 아무것도 잘하는 게 없으니까 공부를 해야 하는 건가,,? 이러한 의문 외에도 수많은 잡념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갈 것이다. 이 잡념들이 나를 꽤 많이 괴롭히고 정체하게 만드는데 그렇다면, 이런 잡념이 내 머리를 똬리를 틀 때 어떻게 행동하면 좋을까?
여러 잡념에 흔들리지 않는 나만의 소신을 찾고 싶다면 고민과 행동 단계에서의 많은 시행착오, 경험이 필요하고, 합리적으로 (혹은 메타적으로) 잡념의 주제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공대에 가고 싶어졌습니다.>는 좋은 출판사를 만나 책을 계약했습니다. 훨씬 더 다듬어지고, 편집되고 중간 중간 중요한 팁들도 많이 들어가 훨씬 보기 좋습니다. 아래 링크에서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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