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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건 Feb 01. 2021

1년 반 만에 개발자가 돼버린 이야기

나는 어렸을 때부터 인간에 참 관심이 많았다. 참 신기한 존재가 아닌가? 그래 봤자 결국 화학 신호와 전기 신호로 이루어진 총체인데, 우주의 신비를 풀어보겠다고 덤비고, 죽음 이후의 세계를 상상한다. 


그래서 교육학도 공부해보고, 나름대로 철학서도 읽어보았다. 결국은 과학적인 접근 방식으로 인간을 탐구하고 싶어서 뇌과학을 나의 부전공으로 삼았다. 


뇌과학을 탐구하는 방식은 여러 가지가 있다. 크게 3가지 정도로 나눌 수 있을 것 같다. 병원에서 환자의 뇌를 치료하기 위한 탐구 방식, 실험실에서 동물을 이용하여 하는 실험 방식, 그리고 마지막으로 컴퓨터를 이용한 연구. 


의사는 아니었고, 실험을 위해서 동물을 죽이는 것이 싫었다. 하다 보면 동물 실험에 익숙해진다는 선배의 말은 더욱 싫었다. 뇌를 탐구하고 싶은데 남은 방식이라곤 마지막 남은 컴퓨터를 이용한 방법이었다. 


그래서 프로그래밍을 조금씩 도전하기 시작했다. 그게 겨우 1년 반 전이다. 핀란드에서 교환학생을 하고 있었고, 비교적 학점의 결과에 신경 쓰지 않고 새로운 학문에 도전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그때부터 코딩을 시작했다. 


AI 연구에 가장 많이 쓰이는 것은 파이썬이었다. 파이썬 언어를 다루기 시작했다. 대부분의 학부 수업은 핀란드어로 이루어졌다. 영어로 이뤄지는 과목은 거의 다 대학원 과목이었다. 그래서 무작정 대학원 과목을 듣기 시작했다. 


남들은 과제를 이미 내고 남았을 때 나는 개발 환경 세팅 자체를 못했다. 프로그램을 시작하는 것 자체도 못한 셈이다. 노트를 사서 에세이를 작성해 에세이로 평가를 받아야 하는데, 나는 노트조차 못 사고 있었다. 노트를 어떻게 사야 하는지 알려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다른 친구들은 척척 과제를 잘 제출하는데, 나는 과제가 무엇인지도 잘 이해하지 못했다. 거의 모든 과제를 전적으로 친구들과 조교들의 도움으로 받아 딜레이 끝에 제출했다. 스트레스를 참 많이 받았다.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 잠도 잘 못 잤다. 남들은 이미 그 분야를 최소한 5~6년 공부한 상태인데, 나는 그 사람들과 경쟁해서도 잘하지 못하는 것이 너무 싫었다. 


다시 한국에 돌아와서 컴퓨터 공학 연구실, 뇌과학을 연구실에서 인턴을 합쳐서 1년 정도 했다. 이때도 참 꾸역꾸역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용하기도 한데, 정말 말도 안 되게 부족한 역량으로 주어진 과제를 어떻게든 시간에 맞춰서 해결해 나가긴 했다. 다행히도 컴퓨터 공학은 모든 것들이 오픈 소스로 열려있었다. 모든 것을 구글에 질문했고, 남들이 만들어 놓은 코드를 열심히 따라 하고 배워서 내 과제에 적용했다. 그렇게 억지로 꾸역꾸역 따라가다 보니 약간의 성과가 생겼다. 빠르게 적용해서 새로운 문제를 풀어보니 그것을 성과로 조금씩 인정을 받았다. 운이 좋게 논문도 쓸 수 있었다. 

지금은 서울대학교 병원에서 x-ray 무릎 이미지를 생성해내는 연구를 한다. 졸업을 하고 무엇을 해야 하나 고민하던 중 우연히 단톡 방에 올라온 모집글에 지원을 해서 합격이 되어 버렸다. 여전히 코드를 짜는 것은 참 어렵다. 제대로 된 교육과정을 거치지 않고 거의 모든 것을 인터넷에서 홀로 학습했다 보니 기초가 없다. 지금까지 과제가 주어지면 그 과제를 어떤 방법으로든 수행하는 것에만 관심을 기울였다. 그 과제가 어떤 알고리즘으로 돌아가는지, 어떤 것들은 조절하면서 더 훌륭하게 과제를 풀 수 있을지에 대해 고려할 여유는 없었다. 


그러다 보니 항상 불안하다. 내가 지금의 성과들을 대체 어떻게 이루어 온 것인지 잘 모르겠다. 이런 느낌을 영어로는 impostor syndrome이라고 한다고 한다. 한국어로는 가면 증후군이다. 내 이력서에 거짓말은 없고, 논문도 내 손으로 작성한 것이 맞다. 그러나 항상 내 성과들이 부풀려진 것 같고, 스스로 자신감이 결여된다.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분야라 더욱 그런 것 같다. 


오늘도 미팅에서도 이런 감정을 많이 느꼈다. 일하는 환경도 좋고, 팀원들도 건설적 코멘트를 줄 뿐 내 작업의 속도와 결과에 대해서 흠잡지 않는다. 그러나 나는 계속 다른 사람들보다 나의 속도가 너무 느리다고 느끼고, 내가 받는 급여와 대우에 비해 나의 공헌이 부족하게 느껴진다. 왜 나는 다른 사람만큼 빠르고 정확하게 일을 해내지 못하는 것일까? 속상하다. 


나보다 이 분야에서 훨씬 더 많은 교육을 받고, 실질적인 연구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여전히 내가 그 사람들보다 뒤처지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은 참 어려운 것 같다. 시간이 이 문제를 가장 해결해줄 것이라고 주변에서 말해주지만, 그 시간을 버텨내는 것이 참으로 힘들다. 


그래서 그 시간을 버텨내기 위해서 이렇게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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