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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건 Aug 09. 2021

zoom으로 하는 결혼

국제연애를 거쳐 결혼을 하면 참 평범하지 않은 일들이 많이 생긴다. 거기에 코로나까지 겹치면 화룡점정이다. 


사실 우리는 결혼식에 큰 의의를 두지 않았었다. 결혼식을 해야 하는 이유에 크게 공감하기 어려웠고, 무엇보다 서울에서 하는 결혼식의 비용은 정말 말이 되지 않았다. 수천만 원이 우스웠다. 당연히 우리에게는 그런 돈이 없었다. 


그러나 부모님께서는 당연히 결혼식을 원하셨다. 자식을 잘 키워서 장가를 보내고, 그것을 주위의 사람들에게 알리는 것은 큰 기쁨이라고 말하셨다. 부모님께서 나를 정말 감사하게 잘 키워주셨다. 그리고 결혼식을 함으로써 부모님에게 그 정도의 큰 기쁨을 줄 수 있다면 충분히 고려해볼 만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까지 모두 다 초대해서 굳이 쓸데없는 비용을 지불하는 결혼은 정말로 하고 싶지 않았기에, 나와 아내 그리고 부모님 모두가 만족할 만한 결혼식의 형태를 찾아야 했다. 


그리고 zoom을 이용한 결혼식이 바로 그것이었다. zoom으로 하는 것에는 생각보다 많은 장점이 있었다. 


1. 무료다. 


실제 세상에서 수백 명을 초대하기 위해서는 엄청나게 많은 비용이 발생한다. 더군다나 결혼식장이라는 고급스러운 장소라면 그 가격은 훨씬 더 크다. 그러나 zoom에서는 수백 명을 온라인에서 만나더라도 그 가격이 공짜다. 그래서 아무런 부담 없이 내가 보고 싶었던 오랜 친구들은 마음껏 불러 볼 수 있었다. 


2. 공간적 제약이 없다.


코로나의 여파로 한국에 아내의 부모님이 들어오실 수 없는 상황이었다. 생업을 가지고 계신 분들이었기에 한국에 와서 자가격리를 2주나 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너무 힘들었다. 우리가 핀란드에서 만난, 우리에게 정말 소중한 다양한 국적의 친구들 역시 한국에 들어오는 것은 경제적으로도 힘든 일이었다. 그러나 zoom을 통해서 그것이 가능했다. 핀란드, 독일, 호주, 스리랑카, 미국 각지에서 친구들이 zoom으로 접속을 했다. 사실 오프라인으로만 진행을 했다면 아마 우리의 결혼식에 오기 힘들었을 친구들이다. 친구들도 초대해줘서 너무 고맙다며 참 기뻐했다. 


3. 재밌다.


내게 웬만한 새로운 것은 재미있다. 그리고 사실 많은 사람들은 새로운 것을 싫어한다고 말하지만, 막상 새로운 것을 구경하게 되면 흥미로워한다. 결혼식에 참여해주신 많은 분들이 생각보다 즐겨주셨다. 우리는 춘천에서 정말 가까운 분들은 초대하여 호텔의 세미나룸에서 오프라인으로, 그리고 그 과정 자체를 온라인으로 중계를 했다. 온라인, 오프라인으로 참여하신 모든 분들이 흥미로워하셨다. 


4. 능동적으로 할 수 있었다. 


이렇게 이전에 결혼을 하신 분들이 많지 않다 보니, 특별히 따라 할 만한 것도 없었고, 돈을 내고 모든 결혼을 계획해주는 플래너가 있지도 않았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모든 결혼식을 우리의 손으로 하나하나 계획하고 준비했다. 결혼식 영상은 친구에게 부탁해서 만들었고, 결혼식 웹사이트는 내가 만들었다. 정말 우리 손으로 하나하나 만들어가는 느낌이 참 좋았다. 앞으로도 평생 이 결혼은 좋은 기억으로 남을 것 같다. 


그리고 결혼을 하면서 배운 점이 몇 가지 있다. 


1. 모든 것을 다 혼자 하려고 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나는 결혼식에서 너무 많은 것을 다 혼자 하려고 했었다. zoom 연결을 확인하고, 컴퓨터를 온라인과 오프라인으로 동시에 보여줄 수 있도록 세팅하고, 심지어 사회까지 나와 아내가 보려고 했다. 결혼식에서 결혼을 하는 당사자는 결혼을 한다는 사실 만으로도 사실 이미 많은 일을 담당하고 있는 것이다. 오시는 손님을 맞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자신의 일을 하는 것이다. 보통 누군가 사회를 봐주는 것은 다 이유가 있는 것이었다. 


결혼 하루 전날에도 잘 되었던 마이크가 갑자기 당일 리허설 때 작동하지 않았고, 그 마이크를 해결하기 위해서 거의 정신이 나가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나를 열심히 도와줄 모든 마음의 준비가 된 사람들이 많았다. 축가를 불러줄 친구도, 사실 진행을 해줄 친구도 있었고, 멀리도 아니고 아내에게만 부탁했어도 훨씬 좋았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뭔가 내가 책임을 지고 해야 한다는 강박이 있었고, 그 강박 때문에 혼자 모든 것을 해결하기 위해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았다. 다른 사람을 믿고 일임하고, 나는 조금 더 결혼을 즐겼다면 결혼의 과정이 조금 더 기억에 남았을 텐데 말이다. 생각보다 나를 도와줄 사람은 많고, 그리고 그 사람들은 다들 책임감이 있다. 


2. 나와 같이 걸어가는 사람의 속도를 살피자. 


웃긴 일이지만, 신랑 신부 입장을 해야 할 때 나는 이미 정신이 나가 있었다. 정신이 없을 땐 걸음이 더욱 빨라지지 않던가, 그렇게 열심히 질주하고 나니 사람들이 웃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유가 뭘까하고 주위를 둘러보았더니 나는 아내보다 족히 15m는 앞서 있었다. 하이힐을 신고 있었기에 천천히 걸어야만 했다. 그래서 나는 뒤로 돌아 다시 아내에게 돌아가서 다시 천천히 걸어갔다. 


앞으로도 혼자 질주하지 않도록 노력해야겠다. 나와 함께 걸어가는 사람이 지금 어디에 있는지 항상 살펴야 하겠다고 다짐했다. 


3. 기쁨을 나누는 것은 기쁜 일이다.


결혼을 하면서 생각보다 너무 많은 사람들의 축하를 받아서 놀랐다. 사실 이미 시간이 많이 지나, 이제 우리 사이가 많이 멀어졌다고 생각했던 인연들에게도 너무 많은 축하를 받았다. 대학교 새내기 시절 함께 동아리를 열심히 했던 친구들은 물론, 중고등학교 친구들과 선생님 모두들 진심으로 축하해줬다. 너무 오랜 기간 동안 연락을 하지 않았던 인연이라 먼저 연락하는 것 마저 망설여졌지만, 다들 너무 진심으로 기뻐해 줬다. 


누군가와 멀어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시간이 지나고, 물리적으로 멀어지면 어쩔 수 없이 멀어진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그 사람이 나와 함께 즐겁게 보냈던 그 시간과 우리의 인연 자체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내게 좋은 일이 있으면 그들에게 알려주는 것은 분명히 좋은 일이다. 그리고 그들 역시 그 덕분에 우리가 함께 했던 재밌고 좋았던 그 시간으로 한번쯤 다시 돌아가 미소 지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남의 기쁜 일에 기뻐할 수 있는 것은 우리가 참으로 쉽게 행복해질 수 있는 방법 중 하나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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