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안건 Jul 25. 2021

어떻게 이 사람이라고 확신할 수 있을까?

26살에 결혼을 했다.


요즘 한국 사회의 기준으로는 아주 빨리 결혼을 한 편에 속하다 보니, 친구들을 만나면 많은 질문 폭탄 세례를 받는다. 커리어에 욕심도 많고, 흔히 말하는 "결혼을 절대 빨리 안 할 놈" 축에 속해서 대부분 너무도 놀랍다는 반응이다. 나아가 한국에서는 아직도 흔하지 않은 국제결혼을 했다고 하면 안 그래도 많은 질문이 배가 된다.


그중에서도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은 바로 이것이다.


어떻게 그 사람이라는 확신이 들었어?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결혼의 결정성에 대한 부담감을 느끼는 것 같다. 법적으로 효력을 가지는 결혼은 연애와 그 무게가 다르다. 그리고 이 한 사람을 택하면 평생 이 사람과 함께해야 한다는 생각을 부담으로 여기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또한 만약 이 사람보다 나중에 훨씬 더 좋은 사람이 나타나면 어떻냐는 질문도 들었던 것 같다.


관련되어 재미있는 설화가 하나 있다. 인디언의 추장을 뽑는 방법에 괜한 이야기다. 인디언의 추장은 인디언들의 생사에 직결되는 의사결정을 하는 만큼 그 집단에서 가장 현명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현명한 사람을 뽑는 방법이 참으로 재미있다.


추장이 되기 위한 시험은 굉장히 간단하다. 바로 가장 큰 옥수수를 찾아오는 것이다. 단, 옥수수를 찾는 룰이 조금 특이하다. 추장 후보들은 하루 종일 옥수수 밭을 걷는다. 그런데 거기에 딱 두 가지 조건이 있다. 이미 지나간 길은 다시 돌아갈 수 없다. 그리고 한번 옥수수를 결정하면 바꿀 수 없다.

옥수수를 미리 결정해버리면 나중에 볼 수 있을 혹시 모를 큰 옥수수를 볼 기회가 없다. 그러나 반대로 계속 옥수수를 관찰하기만 한다면 이미 지나가 버린 가장 큰 옥수수를 놓지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계속 미래의 옥수수만 기다리다가 시간이 다 지나서 옥수수를 선택조차 못한 사람은 당연히 추장이 되지 못한다.


이 이야기에서 옥수수를 고르는 것이 결혼할 배우자를 고르는 것과 유사한 점이 굉장히 많다. 시간을 절대 돌릴 수 없다. 망설이다가 지나가 버린 인연은 다시 돌릴 수없다. 물론 이제는 사회가 많이 바뀌어서 결혼을 할 수 있는 시기가 딱 정해진 것은 아니지만, 분명히 시간이 가면 갈수록 결혼을 위해 고려해야 하는 사항도 더 많아지고 복잡해지는 것은 사실이다. 즉, 어느 순간은 결정을 해야 한다.


세상에는 연구 거리를 찾아다니는 연구자들이 많다. 그리고 수학, 통계 및 의사결정에 대한 연구를 하는 연구자들은 해당 모델을 시뮬레이션을 통해서 연구했다. 결론은 다음과 같다.


전체 내가 고려할 수 있는 옵션을 100이라고 한다면 100/e (2.71) , 그러니까 약 36% 정도까지는 결정을 하지 않고 계속 기다리며 내가 가질 수 있는 옵션에 대해서 파악한다. 그리고 그 지점을 넘어서는 순간부터 지금까지 내가 본 최댓값보다 큰 숫자가 나오면 바로 그것을 선택하는 것이다. 수학적으로 해당 의사결정 방법이 가장 성공적이라고 밝혀졌다.


모든 의사결정을 할 때 일일이 숫자를 따져서 하진 않지만, 워낙 이런 연구들은 내게 미치는 영향이 크다. 그렇기에 이런 연구들은 무의식 수준에 들어가 있어서 나의 의사결정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 나는 직감적으로 어느 순간 36%의 지점을 넘었다고 확신했다. 스스로 느끼기에 충분히 연애를 해 보았고, 어느 순간부터는 이 사람이다 싶으면 괜히 쓸데없이 이런저런 조건 제지 않고 잡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런 나의 생각을 뒷받침해주는 연구까지 있으니 금상첨화다.


지금의 아내를 만나면서 이 사람이다 싶었던 두 가지 이유가 있었다.


1. 내가 원하는 일을 정말로 눈치 보지 않고 마음껏 할 수 있을 것이다.  


연애를 한지 일 년이 조금 지났을 때였을까? 그녀가 내게 결혼에 대해 넌지시 이야기했다. 그때 나는 화들짝 놀라며 방어적인 태도를 보였다.

"나는 내가 미국에서 공부를 할지, 스위스에 연구를 할지, 한국에서 사업을 할지, 싱가포르에 살지 전혀 알 수 없다. 그중에 내게 가장 좋은 조건을 제시하는 곳에 갈 것이다. 그리고 그곳에 갈 때 우리 관계에 두는 비중보다는 내가 가장 일을 잘할 수 있는 곳에 갈 것이다. 그런 상황 속에서 우리가 지금 결혼을 이야기하는 것은 지나치게 이르다."

조금 덜 이기적으로 들리게 이야기했을 수 있었을 텐데 아쉬움이 조금 남기는 한다. 그러나 그것이 그때 당시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솔직한 답변이었다. 돌아온 아내의 답변이 정말 멋있었다.

나는 그것이 아주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너는 절대 나를 먼저 고려하지 말아라, 너는 너의 커리어, 네가 하고 싶은 일을 먼저 추구해라. 그게 더 건강한 것이다. 왜냐하면 나는 나를 먼저 고려할 것이고, 그리고 그다음 우리에게 좋은 것을 우리가 함께 맞춰가면 된다. 우리는 항상 자기 스스로를 먼저 생각하는 것이 필요하다. 나는 어디에 사는지가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 네가 미국에 가면 내가 미국을 따라가면 되고, 한국에 가면 한국에 가면 된다.


너무 고맙고 멋진 답변이다. 그러나 그 말을 듣고도 솔직히 큰 감흥이 없었다. 누구나 말은 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을 아내는 정말로 보여줬다. 내가 한국으로 돌아온 작년 초부터 아내는 한국에 들어올 수 있는 수많은 방법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교환학생부터 여행비자로의 방문 등등 여러 가지 옵션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모두가 알다시피 코로나가 창궐하며 너무도 쉬웠던 한국 방문은 미션 임파서블 뺨치게 어려워졌다. 교환학생 기회 자체가 거의 다 닫혔으며, 여행비자는 막혔다. 그런 와중에서 용캐 내가 다니는 학교에서 한국어를 공부하는 커리큘럼을 찾고, 그 비싼 등록금까지 감수하고 한국에 왔다.


그리고 그걸 보면서 이 사람은 정말로 내가 어디를 가든 나를 위해서라면 따라올 마음이 있다는 것, 그리고 그 마음을 실천할 수 있는 실천력까지 함께 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큰 감동이었다.


2. 안전바


둘째로는 내게 아내는 안전바 깥은 역할을 해준다. 굉장히 도전적인 삶을 살고 있는 요즘이다. 평범하게 공학을 공부하며 회사를 다니는 일은 영 내게 성미가 맞지 않는 모양이다. 재료공학과 뇌과학을 복수 전공하고는 교육학을 배우겠다고 핀란드로 떠나질 않나, 공돌이가 책을 출판하질 않나. 거기에 지금 또 3권의 책을 공저로 집필 중이다. 많은 사람들이 걷지 않는 길을 걷다 보니 언제나 불안하고, 실패하면 어쩌나 하는 초조함이 나를 따라다닌다.


그럴 때 이 사람이 내 곁에 있다는 것은 정말 큰 도움이 되었다. 내가 만약 실패해도 이 사람은 분명 괜찮다고 해줄 것이다. 나 스스로도 나에게 괜찮다고 하지 못할 텐데, 이 사람은 뭘 겨우 그까짓 거 가지고 그러냐면서 맛있는 것이나 먹으러 가자고 할 것이다.


내게는 사소한 실패들 하나하나가 참 너무 무겁게 느껴진다. 사소하게 시험 점수가 안 나왔을 때부터 시작해, 논문이 리젝 되었을 때, 유학을 지원해서 떨어졌을 때 마찬가지다. 멀리서 보면 별 일 아니지만, 나는 그것이 참 힘들다. 그럴 때마다 내 옆의 아내가 너무 큰 도움이 되었다. 일과 나의 삶이 분리가 어려웠던 내게 일과 삶은 다른 것이라는 것을 알려주었다. 일의 안된다고 내가 가치가 없어지지 않는 것이라는 것을 배웠다. 언제나 한결 같이 옆에서 웃어주고 걸어주면서 내 삶에서 가장 중요하지만 잊고 살았던 일과 삶의 분리를 조금씩 도와주었다.


실패를 해도 괜찮다는 것을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조금씩 조금씩 알게 된 것이다. 그러니 오히려 더 마음껏 내가 하는 것을 힘차게 쫓아가며 도전할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요즘은 더더욱 내가 밟고 싶은 길에 확신이 생겨 한걸음 한걸음 힘차게 달리고 있다. 아내 덕분이다.




물론 이 사람보다 더 나와 잘 맞는 사람이 나타날 수 도 있다. 그건 분명 모르는 일이다. 하지만 이 사람이 가장 나와 잘 맞는 사람일 가능성 역시 분명히 있다. 그러나 몇 번의 연애를 통해서 경험한 하나의 교훈이 있다.

 

어차피 이 세상에 나와 완벽하게 맞는 사람은 없다.


그렇다. 어차피 나와 완벽하게 맞는 사람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은 명백한 허구다. 잘 안 맞는 것이 있다며 지금의 연인에 대해 불평하는 사람이 많다. 당연한 일이다. 그건 다른 사람을 만나도 같을 것이다. 내가 생각하는 중요한 몇 가지가 잘 맞는다면, 다른 부분에 대해서는 서로 열심히 맞춰가겠다는 다짐이 필요한 것이다. 결혼은 나와 딱 맞는 사람을 찾는 것이 아니다. 이 사람과 앞으로 잘 맞춰가겠다고 약속을 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완벽하게 확신이 들어서 하는 결혼이란 없다고 생각한다. 충분히 고민을 한 후 결심을 하는 것이다. 그리고 결심을 한 후에 나의 선택이 옳은 선택이었다고 믿으면서 서로 열심히 맞춰가며 결심을 확신으로 만들어 가는 것이 바로 결혼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그래서 결혼을 했고, 결혼한 지 3일 후부터 핀란드와 한국이라는 무려 시차가 최대 7시간 나는 나라에서 떨어져 살고 있다. 하지만 나는 너무 행복하고, 내 결심을 확신으로 만들고 있다.


"도크라테스" 작가님과 함께 국제연애를 통해서 우리가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어떻게 달라지고 있는지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이 매거진에는 매주 일요일에 글이 올라옵니다.

https://brunch.co.kr/@enerdoheezer/313


이전 09화 너는 백인이라 그렇지.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