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인종차별자가 될 수 있다.
작년 여름 터키 이스탄불에서 아내와 함께 교육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아시아 대륙과 유럽 대륙에 걸쳐 있는 유일한 도시가 바로 이스탄불이다.
아시아이기도 하면서 유럽이기도 한 이도시. 참 역사적으로도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는 흥미로운 도시이다.
이야기를 하다가 과연 이스탄불이 서양(western)인지, 동양(estern)인지의 주제가 나왔다.
사실 그 분류 자체가 참 우습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아시아와 아프리카는 동양으로, 유럽과 북아메리카 그리고 오세아니아는 서양 정도로 묶는 것 같다. 라틴아메리카는 어느 분류로 묶어야 되는지 잘 모르겠다.
이렇게 분류를 놓고 보면 어느 쪽이 서쪽이고 어느 쪽이 동쪽 인지도 사실 불분명하다. 서구 쪽에서 동쪽으로 가다 보니 동양이 있어서 그냥 아시아 쪽을 동양으로 부르고 이후에 자기 마음대로 분류를 나눈 느낌이라 사실 이 분류 자체가 제법 불편하다.
이야기를 하다 보니 아내(핀란드인)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사실 뭐 전 세계가 서양(western) 아니겠어?
왜인지는 모르겠으나, 특히 인종차별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필자이다. 이 발언에도 굉장히 예민하게 반응했다.
오 방금 그 발언 굉장히 인종차별적인데~
아주 정색을 하고 반응한 것은 아니지만, 다분히 공격적인 성격을 품고 발언했다. 지나치게 서구 중심적인 발언 아니냐는 것이었다. 그 발언에 역시 강하게 반응하며 그 뜻은 지구는 둥그니 서쪽으로 쭉 가다 보면 전 세계를 만날 수 있다는 뜻이라고 이야기했다. 실제로 western은 서쪽 방향을 뜻한다. 단어를 이용해서 농담을 한 것이었다.
설명을 듣고 나서 충분히 넘어갈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왜인지 주제가 인종차별에서 넘어가지 않고 계속되었다. 인간은 역시 이성적이기보다는 감성적이다. 이 맥락에서 말한 사람이 악의가 없다는 것을 이미 잘 알고 있지만, 나는 인종차별적인 경험을 여러 번 했기 때문에 이러한 상황에서 내가 느꼈던 불쾌감이 다시 연상이 되는 것이다.
아내 입장은 너무 많은 사람들이 공격적이지 않은 다분히 그냥 넘어갈 수 있는 모든 포인트에 "그 발언은 인종차별적이다."라는 무기를 꺼내 들어 공격적으로 반응한다는 입장이다.
그 말에 나 역시도 별로 기분이 좋지 않았던 것 같다. 그래서 나는
너는 백인이니까 그렇게 말할 수 있는 거지!
이라고 답했다. 또 여기서 예상치 못하게 아내가 굉장히 기분 나빠했다. 그 발언 역시 인종차별적인 발언이 아니냐는 이야기였다. 인종에 의해서 그 사람은 판단했다는 논리다. 왜 "흑인은 이렇다, 아시안은 이렇다."라고 말하는 것은 인종차별적이라고 말하면서 "백인은 이렇다~"라고 말하는 것은 괜찮냐는 것이다.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한 발상이었다. 아시안의 입장에서만 인종차별에 대해서 생각해왔지, 백인의 입장에서 인종차별 이슈가 어떻게 받아들여질지 고려해 본 적은 없는 것이다.
누군가를 판단할 때 인종이라는 것에 근거해 판단하는 것, 그 자체가 분명히 인종차별적인 생각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거기서 나아가 자신과 다른 특정 인종을 배척하거나 거부감을 가지는 배타주의가 된다면 그것은 더더욱 사회에 안 좋은 영향을 끼친다.
많은 한국인들이 지금 코로나 때문에 아시안들이 당하고 있는 인종차별에 분노한다. 분노할 일에 분노하는 것은 좋은 일이다. 다만 그렇게 느꼈던 분노를 가라 앉힌 다음, 과연 우리는 얼마나 잘하고 있는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는 것 같다. 적어도 우리가 그런 차별적 감정을 느끼고 분노했다면, 우리가 주류가 되었을 때는 그 반대의 사람들이 차별적 감정을 느끼지 않도록 노력해야 하는 것 아닐까? 그것이 세상이 더 좋아지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현재 남성과 여성 사이에서도 비슷한 맥락의 담론이 오고 가고 있는 것 같다. 아주 작은 사소한 발언이나 행위로 인해 그보다 훨씬 더 막중한 책임을 떠안는 경우가 있다며 불만을 제기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아주 사소한 농담조차도, 그 맥락에서 많은 차별을 당했던 사람들은 어쩔 수 없이 예민할 수밖에 없다. 그러니 적어도 내가 한 말이 다른 사람에게 공격적으로 들렸다면, 일단 먼저 사과를 해보는 것은 어떨까. 나는 그런 의도가 아니었다고 말하는 것은 사실 그렇게 멋진 대처가 아닌 것 같다. 일단 사과를 해서 상대방의 감정을 좀 누그러트린 후 그다음 조심스레 상황을 설명해보려고 노력해보자. 그러나 그것은 사과를 한 그다음이다.
"도크라테스" 작가님과 함께 국제연애를 통해서 우리가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어떻게 달라지고 있는지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이 매거진에는 매주 일요일에 글이 올라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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