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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건 Apr 10. 2021

26살이 하는 결혼 이야기

결혼을 한다, 26살에. 다들 너무 놀란다. 그리고 대체 어떻게 그렇게 빨리 결혼 결심했는지 묻는다. 처음엔 별 생각이 없었다. 그러나 계속 질문을 받고 조금씩 대답을 하다 보니 내 생각이 조금씩 정리되었다. 


그녀와 있으면 현재와 발을 붙일 수 있게 된다. 나는 현재보다는 미래에 살던 사람이다. 항상 과정보다는 결과가 중요했다. 공부 그 자체를 즐기기보다는 좋은 성적을 바라면서 버텼다. 운동을 할 때도 운동할 때의 쾌감보다는 운동을 통해 몸이 좋아지는 것을 바랐다. 과정이란 내가 이뤄낼 성취를 바라보며 견뎌내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내게 있어 행복은 현재에서 머무르는 것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내 목표와 가까워지는 과정에서 오는 것이었다. 그렇기에 내가 목표로 한 것에 가까워지지 못하는 나날들은  낭비였고, 그 낭비하는 날들이 쌓일수록 나는 힘들었다. 


 그녀와 함께할 때는 달랐다. 목표에 다다르자 못하는 날들도 소중했다. 공부와 일을 하지 않아도, 글을 쓰지 않아도 행복할 수 있었다. 같이 아침에 일어나 음식을 만들고, 함께 맛있게 먹고, 넷플릭스로 모던 패밀리를 보는 것이 그렇게 행복할 수 있다는 것을 배웠다. 그녀와 함께 하는 운동은 결과 뿐 아니라 과정도 재미있다. 운동을 해서 좋아질 내 몸이 아니라, 운동하는 그 시간 자체가 기다려진다. 심지어 헬스장을 가는 그 시간도 깔깔대며 웃을 수 있다. 멀리 가야 하는 지하철 역시도 그녀와 함께 해리포터를 들으면서 가면 그 순간순간 하나를 즐길 수 있었다. 현재에 땅을 붙이며 살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녀와 함께 하면 평범한 날들이 특별해진다. 나는 언제나 평범한 것을 싫어했다. 남들이 다 파란색을 좋아하면 굳이 핑크색을 좋아하고, 남들이 교환학생을 다 독일과 미국으로 갈 때 나는 핀란드로 갔다. 평범한 일상의 날들을 즐기지 않았다. 행복을 느끼는 나날들은 특별하게 여행을 가거나 외국에 가는 날들, 누군가 앞에서 발표를 하는 날들이었다. 평범한 날들은 그냥 존재하는 것이고, 행복한 날들은 평범하지 않은 날들이었다. 내게 있어 행복은 선보다는 점으로 존재했다. 


그러나 그녀와 함께 하면 모든 평범한 것들이 특별해진다. 평범한 상견례를 Zoom을 통해 핀란드어, 영어, 한국어가 공존하는 상견례로 만들었다. 공기같이 당연하던 한국어조차 그녀와 함께 한국어로 소통하면 그렇게 특별하게 느껴질 수가 없다. 수백 번도 더 넘게 지나간 낙성대에서 서울대 도서관까지 올라가는 그 길이 그렇게 예쁜지, 그렇게 새로울 수 있는지 몰랐다. 그 길에는 그녀가 태어나서 처음 보는 벚꽃 수백 그루가 있었고, 아름다운 단풍이 있었으며, 그녀의 나라에는 없는 산이 배경으로 보였고 상 받아야 마땅한 도서관이 웅장하게 뒤를 지켜주고 있었다. 그 길은 이제 내게 참 특별한 길이 되었다. 


한국에서는 당연한 것이 한국을 벗어나면 전혀 당연하지 않은 경우가 참 많다. 한국에서는 요즘 30을 넘어서 결혼을 하는 것이 당연한 것 같다. 당연히 한국에서는 26살에 결혼을 하면 주변 모든 친구들 중에 가장 빠른 편이다. 그러나 시선을 조금 넓혀 전 세계로 놓으면 26살에 하는 결혼이 무조건 빠른 것은 아니다. 그녀의 어머니는 20살에 결혼을 하셨다. 그것과 비교를 하면 전혀 빠르지 않다. 어차피 세상에 절대적인 기준이란 없다. 내가 준비가 되고, 내가 마음이 동하면 하는 것이다. 


결혼을 거창하게 생각하면 거창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단순하게 생각하면 굉장히 단순하다.  이 사람과 지내는 지금이, 이 일상이 좋다면, 그리고 나아가 이 사람과 지내게 될 미래를 그리는 것이 신이 나고 기다려진다면, 그냥, 서로 함께하자는 약속을 하자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결혼을, 이 사람과 함께하겠다는 약속을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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