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원 첫 학기가 끝났다.
내가 생각했던 대학원이란 연구를 하는 곳이었다. 내가 좋아하는 주제로 고민하고 마음껏 탐구하는 곳이라 생각했다. 학문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여, 남들이 만들어 놓은 지식을 습득하는 것에서 만족하지 못하고, 새로운 지식을 만들어 놓는 곳. 새로운 지식이 생산되는 곳이며, 그 과정을 진심으로 즐길 수 있는 곳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생각보다 그런 이상적인 접근을 적용하기 쉽지 않았다. 대학원에 들어간 순간 나는 어떤 조직에 소속이 된다. 조직의 분위기에 맞춰야 하고, 그 조직이 하는 연구의 방향에 맞게 내가 하는 연구의 방향도 정해진다. 조직에는 돈이 필요하기에 당연히 제안서도 써야 한다. 제안서는 쓰기만 하면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제안서에 맞는 연구 결과를 만들어 내야 한다. 내가 원하는 연구를 혼자 한다는 것이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 또한 대학원이라는 곳에 온 사람들은 목적이 다양했다. 유학을 가지 못해 온 사람도 있었고, 학위를 얻기 위해서 온 사람도 있었으며, 그냥 정신을 차려보니 대학원에 도착해 있는 사람도 있었다. 이런 모든 사람들이 모여 하나의 조직을 이루고, 집단으로 행동하니 당연히 이런저런 어려움이 있는 것 같다.
또한, 내가 좋아한다는 그 연구라는 것의 깊이가 얇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가 궁금해하는 질문은 전혀 구체적이지 않았다. 그냥 막연하게 흥미로워하는 분야가 있을 뿐, 구체적으로 어떤 연구를 어떤 방법론으로 하고 싶은지 정해진 바가 없었다. 또한 연구라는 것을 대체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인지 막막했다. 지금까지 운이 좋게 몇몇의 연구를 해서 논문을 작성도 했다. 그러나 그 경우 많은 부분을 교수님이 도와주셨고, 사실 교수님이 하라는 연구 방향대로 따라가다 보니 연구 결과가 나와 논문까지 이어질 수 있었다. 그런데 대학원에 오고 나니 내가 가지고 있는 질문은 대체 어떻게 구체화해야지 이것을 하나의 연구로 만들 수 있는지 감이 오지 않았다. 그러니 내가 가진 질문을 연구실이라는 집단 안에 적당히 녹여 연구실과 내가 모두 원하는 연구 결과를 만들어 내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 와중에 수업을 듣고, 과제를 하고, 시험을 봐야 했으며, 랩 미팅에는 매주 참석해야 했다. 연구를 진행하고 싶어도, 정해지지도 않은 막연한 주제를 가지고 이것을 시도하고 저것을 시도하기엔 집중할 수 있는 시간도 많지 않았다.
방학이 오고, 한 숨을 돌릴 틈이 왔다. 다시 한번 내가 할 수 있는 연구가 무엇일지 생각해 보아야겠다. 시간을 조금 더 가지고 여유를 가지면 유의미한 연구를, 내가 가진 지식을 통해 새로운 지식을 조금이라도 생산할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