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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건 Aug 20. 2022

MIT에 가게 되다-기회는 실패하는 사람의 것

기회의 신 카이로스는 다음과 같은 모습이라고 한다. 

앞머리가 무성한 이유는 내가 누구인지 금방 알아차리지 못하게 함이고, 또 발견했을 때 쉽게 잡아 첼 수 있게 하기 위함이다. 뒷머리가 민머리인 이유는 한번 놓치고 지나가면 다시 잡기 어렵게 하기 위함이며, 어개와 발에 날개가 달린 이유는 최대한 빨리 사라지기 위함이다.


흔히들 이렇게 말한다. 인생에 기회는 3번 오게 되며, 그 기회를 잡기 위해 잘 준비하고, 기회를 알아보는 사람이 인생을 성공한다고. 나는 이 말에 동의할 수 없다. 무언가 생략되었다. 기회는 오히려 내가 먼저 능동적으로 두드려야 만날 수 있는 것에 가깝다. 기회는 절대 내가 가만히 앉아서 기다리다 보면 오게 되는 그런 성질의 무언가라고 할 수 없다. 


기회는 오히려 능동적으로 움직이고 도전하는 사람에게 오는 것이다. 스스로 그 기회를 탐색하고 도전하고, 실패가 누적된 사람들에게 기회가 가기 마련이다. 기회는 내가 스스로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이다. 


이번에 "바이오엔지니어링 글로벌 인재양성사업"이라는 펠로우쉽에 최종 선발되었다. 그 펠로우쉽의 지원을 받아 10년 전부터 꿈꿔왔던 MIT에서 1년간 방문 연구원으로 지낼 수 있게 되었다. 

딱 10년 전에 방문했던 MIT

정말 좋은 기회를 만났다. 당연히 운이 좋았고, 이런 좋은 기회를 만들어 주신 분들께도 진심으로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앞으로 이런 기회를 계속 만나, 내가 원하는 것을 이뤄나갈 수 있기 위해서는 내가 어떻게 이런 좋은 기회를 만날 수 있었는지 반추해 보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다.  



이번 MIT에 방문 연구원으로 최종 합격하기 전까지 많은 실패가 있었다. 그리고 바이오엔지니어링 글로벌 인재양성사업의 중간과정으로 방문하여 연구하게 될 연구실을 찾느라 보낸 이메일만 40통 가까이 된다. 불합격하는 것은 당연히 고통스럽다. 처음에는 나의 연구자로서의 방향성과 그들이 바라는 사람의 방향성이 단지 달라서라고 스스로를 자위할 수 있다. 그러나 시간이 가면 갈수록 나의 연구자로서의 방향성이 아니라 나라는 사람 자체가 거부당하는 기분, 나아가 나라는 사람 자체가 가치가 없는 것처럼 느껴지곤 한다. 


그래서 시간이 갈수록 도전과 합격에 대한 기대가 점점 어려워지는 것 같았다. 처음에 도전할 때는 힘도 넘치고, 합격에 대한 기대치도 높다. 그러나 불합격이 쌓이면 쌓일수록 실패가 얼마나 아픈지 알기 때문에, 기대를 했지만 그 기대가 충족되지 않았을 때 내가 얼마나 실망하고, 바닥에 떨어지는지 경험했기에, 불합격이 얼마나 뼈에 사무치도록 시린지 느껴봤기 때문에, 도전이 무서워진다. 나와 다른 사람의 기대가 부담스러워진다. 실패가 쌓인다는 것이 얼마나 부담스럽게 느껴지고, 나의 가치를 누르는 무거운 짐이 되는지 뼈저리게 느꼈다.


“당신을 당신 회사와 동일시하지 마십시오. 또 제품과도 동일시하지 마십시오. 그렇게 착각하기 매우 쉬우며 그런 착각에 갇히기도 쉽습니다. 당신의 회사가 실패하고 당신의 제품이 실패할 수는 있어도 당신 자신은 결코 실패자가 아닙니다. ” -제프 호킨스


그럴 때 도움이 되었던 것은 제프 호킨스의 말이었다. 나의 도전과 나의 지원(apply)이 몇 번 실패한 것이지 나라는 사람 자체가 실패자는 아니라는 것을 계속 상기했다. 나와 나의 지원을 분리했다. 그렇게 계속 계속 다지 도전하고 실패를 쌓아갔다. 


또한 스탠퍼드 대학 디 스쿨에서 "기업가 정신"의 최고 권위자인 티나 실리그는 <스무 살에 알았다면 좋았을 것들>에서 실패의 중요성을 역설한다. 특히 그는 인생에서 실패자 이력서를 만드는 것을 권장한다. 이 기회를 잡기 전 해외에서 인턴이나 연구 생활을 하기 위해서 내가 도전한 것, 그리고 실패한 것들을 통해 만든 나의 실패자 이력서는 다음과 같다. 


2019.08 - 영국 캠브리지 인턴 (비자발급 실패)

2020.06 - 스위스 취리히 공과대학 인턴 (서류 불합격)

2020.12 - 스위스 취리히 공과대학 Neural Systems and Computation 석사과정 (서류 불합격) 

2021.06 - 스위스 취리히 공과대학 Neural Systems and Computation 석사과정 (서류 불합격) 

2021.06 - 홍콩과학기술대학교 컴퓨터공학과 석사과정 (서류 불합격) 

2021.06 - 핀란드 알토대학교 컴퓨터공학과 석사과정 (서류 불합격) 

2022.04 - 미국 조지아공대 인턴 (인터뷰 이후 해당 과정에 필요한 수업 폐강) 

2022.06- 미국 스탠퍼드대학교 데이터 분석가 (인터뷰 이후 기대하는 근무 연수 차이로 불합격) 

2022.07 - 스위스 취리히 공과대학, 미국 하버드대학교, 스탠퍼드대학교, 미국 caltech, 미국 조지아텍, 영국 캠브리지... etc 방문 연구원(불합격)




2022.08 - 미국 MIT 방문 연구원 (합격)   

나는 1,014번 실패한 게 아니오. 작동하지 않는 방법을 발견하는 데 1,014번이나 성공한 거지- 토마스 에디슨


말하자면 나는 9번 실패한 것이 아니라, 9번 합격하지 않는 원서와 인터뷰를 경험했다. 9번의 불합격 동안 나는 어떻게 자기소개서를 써야 하는지, 그리고 어떻게 이메일을 써서 컨택을 해야 하며, 이력서에서는 무엇을 강조해야 하는지 조금씩 배워나갈 수 있었다. 

강력한 깨달음은 성공뿐 아니라 실패에서 온다. 성공의 열쇠는 날아오는 탄알들을 피하는 것이 아니라 빨리 극복하고 다시 일어서는 데에 있다. 똑똑한 실패가 무의미한 성공보다 낫다. - <스무 살에 알았다면 좋았을 것들>, 티나 실리그 

그리고 가장 중요했던 것은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던 것에 있었다. 탄알들을 피하는 것이 아닌, 탄알들을 맞고 쓰러졌을 때, 스스로를 다잡고 다시 일어났던 것. 그리고 다시 도전했던 것이다. 


이번에 MIT를 합격하면서 가장 기뻤던 것은 다시 도전할 수 있는 에너지와 믿음을 얻었다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정말 존경하는 한 선배에게 MIT에 가게 된 소식을 알렸더니 아래와 같이 말씀을 해주셨다. 

합격은 눈에 보이지만 눈에 안 보이는 것이 사실 이번에 건 씨가 얻은 진짜 보물이라는 것을 잊지 않았으면 합니다. 불가능해 보이는 길을 뚫어내고 개척해나가는 정신이 바로 what makes MIT unique입니다.

내가 얻은 진짜 눈에 안 보이는 보물은 바로 도전정신과 실패를 받아들이는 관점의 변화라고 할 수 있다. 지난 불합격의 시간 동안 나는 사실 몸이 움츠려 들었다. 도전으로 인한 탄알이 아파 그냥 누워 있고 싶은 생각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그리고 분명 앞으로도 나는 실패할 것이다. 계속 도전할 것이기에 계속 실패할 것이다. 그때마다 이번에 얻은 보물을 잊지 않고 다시 찾으러 올 것이다. 내가 얻은 기회는 결국 실패가 쌓였기 때문이다. 


앞으로도 도전할 것이다. 계속 책을 쓸 것이고, 어렵지만 내가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문제를 풀 것이다, 창업도 할 것이다. 그리고 기꺼이 실패하고 그 실패로 최대한 많은 경험을 쌓을 것이다. 현재에 만족하며 현실에 안주하는 애매한 성공보다는 과감하게 도전하고 확실하게 실패할 것이다. 


그게 내가 믿는 멋진 삶, 좋은 삶, 후회 없는 삶을 살게 만들어 줄 것이라고 이제는 믿기 때문이다. 



안전지대 밖으로 나오면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도전하면 불가능하다는 고정관념을 버리면 터무니없어 보이는 기회를 붙잡으면 당신 눈앞에 무한한 가능성이 나타날 것이다. - 티나 실리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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