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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건 Jan 07. 2023

어떻게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는가?

어떻게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는가? 연구자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질문이다. 탁월한 아이디어를 얻어야 좋은 연구를 시작할 수 있다. 아이디어만으로 위대한 연구를 할 수 있는 것은 절대 아니지만, 아이디어가 좋지 않다면 이미 그 연구는 위대한 연구가 될 수 없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리는 아이디어를 떠올릴 때의 그림은 다음과 같다. 한 천재가 골방에 틀어박혀 오랜 시간의 자신과의 고독한 싸움 끝에 결국 끝끝내 한 섬광 같은 깨달음을 찾는다. 그리곤 갑자기 엄청나게 많은 수식이나 뛰어난 작품을 일필휘지에 만들어 낸다. 그러나 작가 스티브 존슨은 저서 <탁월한 아이디어는 어디서 오는가>를 통해 탐구한 탁월한 아이디어가 만들어지는 과정들은 많은 사람이 그리는 그것과는 차이가 컸다. 


아이디어는 좋은 네트워크를 통해 얻어진다. 1990년대 초 맥길 대학교의 케빈 던바라는 심리학자는 어디서 좋은 생각이 나오는지 연구를 진행했다. 전 세계 여러 과학 연구실에 찾아가 사람들이 하는 모든 대화와 사소한 행동을 영상으로 촬영했다. 그리고 그런 영상들을 모아 어디에서 탁월한 아이디어가 나오는지 연구를 진행했다. 연구 결과 거의 대부분의 중요하고 혁신적인 생각은 실제로 혼자 실험실에 있을 때나 현미경 앞에서 생기는 것이 아니었다. 대부분의 경우 매주 실험실 사람들이 모여 최근의 데이터와 발견한 내용을 함께 토의하거나, 종종 그들이 저지른 실수나 오차 혹은 그들이 신호에서 발견한 잡음을 함께 공유할 때 바로 그 회의실의 테이블에서 생겨났다. 그래서일까, 내가 연구하는 건물의 MIT 뇌인지과학과 건물의 3층에는 모두가 자유롭게 모여서 커피를 마시고 이야기를 할 수 있는 atirum이 있다. 나아가 MIT의 뇌인지 과학과에서는 매주 아이스크림과 커피를 먹으면서 자유롭게 구성원들끼리 대화할 수 있는 시간을 만들고, 세미나가 끝날 때마다 많은 파티를 열며 자유롭게 토의하고 이야기할 수 있게 만들어 준다. 

이를 저자는 “유동적 네트워크”라고 부르고 이를 가장 중요한 아이디어의 특징으로 뽑았다. 한 사람의 생각이 아닌 배경이 서로 다르고 이해관계가 서로 다른 다양한 사람들의 생각이 얽혀 학문 간의 경계를 넘어설 수 있는 좋은 네트워크에서 바로 좋은 아이디어가 나오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당연히 좋은 토의가 필요하다. 누구나 자신의 의견을 어려움 없이 제시할 수 있는 환경이 필요할 것이다. 


아이디어는 천천히 숙성되어 만들어지는 것이다. 위에서 언급했듯 대부분의 사람들은 ‘섬광 같은 깨달음’, ‘유레카 모먼트’, ‘뮤즈가 찾아옴’ 등의 형태의 깨달음의 순간을 기대한다. 그리고 자신은 그런 깨달음의 순간을 경험하지 못했기에 천재가 될 수 없고, 탁월하고 위대한 아이디어란 선택받은 사람들의 것이라고 생각한다. 20세기 가장 위대한 발견 중 하나로 손꼽히는 찰스 다윈의 진화론 역시 위와 같은 번뜩이는 순간이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는 자신의 자서전에서 다음과 같이 저술했다. 

“1838년 10월, 체계적인 조사를 시작하고 15개월이 지났을 때 나는 재미 삼아 맬서스의 <인구론>을 읽었다. 동식물의 습성을 오랫동안 관찰해온 덕에 생존 투쟁을 제대로 인식할 수 있었던 나에게 순간, 이러한 환경에서 유리한 변종들은 살아남을 것이고, 불리한 변종들은 죽어 사라질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 그렇게 나는 중요한 이론을 얻었다. 

그러나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1970년대 심리학자 하워드 그루가 다윈의 방대한 일지를 다시 한번 조사하며 그 위대한 깨달음의 과정을 쫓았다. 그 결과 사실 다윈은 이미 진화론의 구체적인 아이디어의 조각들을 1837년 정도부터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다만 그 조각들이 아직 한 퍼즐로 맞춰지지 못했다는 것이다. 다윈이 위대한 발견을 할 수 있었던 것은 그전까지 다른 자료에서 발췌한 글들, 즉흥적으로 떠오른 새로운 아이디어, 의문 등을 구체적으로 기록해왔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적어온 성실함이 오랜 시간 슬며시 성숙해서 아이디어의 형태로 나타난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부족한 것은 반짝이는 섬광을 전해줄 뮤즈가 아니다. 그 뮤즈가 찾아올 때까지 몇 년 길게는 몇십 년을 꾸준히 기록하고 간직하는 능력이다. 


위대한 아이디어는 의외의 곳에서, 심지어 실수에서 나오기도 한다. 발명가이자 경제학자인 윌리엄 스탠리 세븐즈는 이렇게 말했다. 

“위대한 발견을 하는 사람이 단번에 진실을 포착하거나 진실을 알아내는 정확한 방법을 갖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오해다. 위대한 사람은 덜 열정적인 사람들에 비해 실수를 많이 한다.” 

이 말은 많은 시사점을 가지고 있다. 먼저 위대한 사람은 더 다양하고 많은 아이디어를 만들어 낸다. 그리고 많은 아이디어가 성공할 수 있는지, 실패할 수 있는지 알아본다. 실수를 전혀 하지 않는다면 혁신은 어렵다. 20세기 또 다른 가장 위대한 발견 중 하나인 알렉산더 플레밍의 페니실린 역시 실험실의 열린 창가에 놓아두었던 포도상구균의 배양균에 곰팡이가 우연히 침투하면서 생긴 일이다. 물론 그들은 실수를 계속 끊임없이 탐구한다. 실수를 하거나 그 결과가 예상과 전혀 다른 것이 나왔을 때 그것을 그냥 실수라며 무시하지 않는 것, 그 실수가 나온 이유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탐구해보는 자세가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하다. MIT연구실의 랩미팅과 저널클럽의 분위기는 내가 지금까지 경험해본 모든 연구실의 분위기 중 가장 부드럽고 자유로웠다. 그 누구도 실수를 했다고 지적하지 않았고, 오히려 다들 웃으며 즐겁게 이야기했다. 그러니 당연히 실수나 실패가 있더라도 훨씬 부담스럽지 않게 그를 구성원들에게 공유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작금의 한국을 살아가는 연구자들에게는 과연 어떤 자세와 문화가 필요할까? 첫째, 한국에서 더 훌륭한 연구, 탁월한 혁신이 나오기 위해서는 수직적인 구조에서 벗어나 모든 구성원이 수평적인 구조에서 자유로운 토의가 가능한 문화가 형성될 필요가 있다. 상사나 지도교수에서 모든 것을 묻고, 위에서 천편일률적으로 내려오는 방법을 통해서는 뛰어난 아이디어가 나올 수 없다. 모두가 자기의 의견을 마음껏 당당히 이야기할 수 있을 때 진정한 네트워크 형식의 교류가 이뤄지고, 그것은 혁신으로 이어진다. 둘째, 위대한 성과를 원한다면 기다려 줘야 한다. 다윈이 그랬고, 월드와이드 웹(www)의 창시자인 팀 비너스-리가 그랬던 것처럼, 위대한 성과는 수십 년의 걸친 ‘느린 예감’을 통해서 태동한다. 연구에서 조차 “빨리빨리”성과를 내야 하는 분위기의 한국에서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니 충분히 연구의 역량을 인정받은 연구자에 대해서는 시간에 구태여 성과를 지속적으로 만들어내야 하는 압박감을 없애 주어야 한다. 셋째, 실수와 실패에 훨씬 더 관용적인 분위기가 필요하다. 전통적으로 한국은 실패에 냉혹한 사회다. 실수 역시 마찬가지다. 그러니 실패나 실수를 한 연구의 결과는 사람들이 공유하고자 하지 않는다. 실수가 아닌 성공만을, 본인이 기대했던 결과들만 동료와 상사들에게 공유한다. 그러니 게임 체인저 역할을 하는 아이디어와 연구가 나올 수 없는 것이다. 실수와 실패에서 유의미한 통찰이 나올 수 있다. 실험에서 예측하지 못한 전혀 다른 결과가 나오면 대부분의 많은 사람들을 그것은 조직이 오염되었거나, 데이터 전처리를 잘못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결과를 무시한다. 물론 많은 경우 실제로 단순한, 의미가 없는 실수였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일부는 정말로 우리가 알고 있던 것과 다른 위대한 발견이었을 수도 있다. 그리고 그렇게 과학과 문명은 실수와 실패와 함께 발전했다. 위와 같은 변화들을 위해 한국에서도 탁월한 아이디어에서 시작한 위대한 연구와 혁신이 이뤄나가리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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