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월 1일 핀란드로 향하는 비행기에서 나는 작가가 되리라 다짐했다. 그리고 그때의 다짐은 내 삶을 바꿔놓았다. 핀란드에서 브런치 작가가 되었다. 10만 명이 읽은 글을 써보았고, 어떤 글을 사람들이 읽고 싶어 하는지 경험했다. 글을 쓰는 재미와 많은 사람들에게 소비되는 글에 대해 고민하는 재미를 느꼈다. 그렇게 글을 하나씩 쓰게 되었고, 책이 나왔다. 그렇게 쓰게 된 책이 3권이고, 내년에 나올 책을 또 기다리는 중이다. 그 책 중 하나는 분야별 베스트셀러 2위에 올랐고, 그 인세 1200만 원은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발전기금에 쓰였다. 그 경험 덕분에 기부자의 밤에 초청되어 서울대 공대에 수십억 기부를 하는 사람들의 정신도 느끼고 그들과 대화도 해봤다. 그리고 기부된 1200만을 이용하여 직접 고등학생에게 장학금을 주는 경험도 해보고 있다. 어떤 학생은 내 글을 거의 다 읽었다며, 나와 대화를 꼭 나눠주고 싶다며 메일을 보내 나의 생각이 궁금하다며 내가 사는 곳을 찾아왔다. 글쓰기를 열심히 했더니 삶이 훨씬 더 재미있고 풍요로워졌다.
작가가 되겠다는 다짐이 글을 쓰는 행동을 가져왔다. 글을 쓰는 행동은 평소에 하는 사유를 바꿔 놓았고. 그냥 사는 대로 생각하는 삶이 아닌, 생각하는 대로 삶을 꾸려나가는 것이 가능해졌다. 하지만 한국에 돌아오고 첫 책을 내고 난 다음부터는 계속 조금씩 조금씩 글을 쓰는 빈도가 줄어들었다. 새로운 글감이 떠오르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했고, 글을 쓸 시간이 없다는 핑계인 경우도 있었으며, 글을 써도 읽어주는 사람이 없는 것도 이유 중 하나였다. 새로운 경험이 나에게 먼저 다가 오기를 기대했다. 혹은 새로운 관점이 생긴다면 글을 쓰리라 스스로 자위했다. 어떤 이유든 글을 쓰는 하루보다 쓰지 않는 하루가 쌓여갔다. 그렇게 쌓인 하루는 점점 무거워져 새로운 글을 쓰려는 나의 어깨 위를 짓눌렀다. 이제 곧 이사를 할 예정이니 새로운 책을 사지 않았고, 책을 사지 않으니 글을 읽지 않았다. 글을 읽지도 않고, 쓰지도 않는 그러한 관성이 쌓이니 글 하나하나를 쓰기가 점점 더 어려워졌다.
그러나 깨달았다. 새로운 경험과 새로운 감각이 없어서 글을 쓰지 못했던 것이 아니다. 글을 쓰지 않는 습관이 감각을 무디게 만들었고, 사유를 뭉게뜨렸다. 이번 미국유학을 준비하면서 내가 소유하고 있던 물건의 절반을 버렸다. 이번 기회를 살려 앞으로 한국보다는 다른 나라에서 본격적으로 삶을 꾸려나갈 가능성도 높다. 한국에서 만났던 많은 인연들을 언제 다시 만날 수 있을지 잘 모른다. 그럼에도 나는 쓰고 싶다는 의지가 생기지 않았다. 어떠한 감정은 느낄 수 있었지만, 그 감정에 귀 기울이지 않았다. 어떠한 생각이 떠올랐지만 그 생각을 펼쳐 하나의 실뜨기로 만들어 내려고 노력하지 않았다. 그냥 그런 감정과 생각이 떠오를 때면 다시금 휴식한다는 핑계로 넷플릭스와 디즈니 플러스로 향했다. 마지막으로 아내와 나의 모든 짐을 캐리어 4개에 넣고 인천공항으로 향하는 택시 안에서 조차 나는 디즈니 플러스의 그레이스 아나토미를 보고 있었다. 당연히 아무런 감정도 느껴지지 않았고, 아무런 글을 쓸만한 이야기가 없었다.
그래서 다시 글을 쓰는 사람으로 돌아가려 한다. 앞으로 하게 될 경험들이 내 인생에 너무도 소중한 경험이 될 것이라는 느낌을 이제는 느낀다. 더 다양하고 풍요롭군 감정을 느끼고 싶다. 더 폭넓고 새로운 경험을 하고 싶다. 그리고 그 경험과 감정을 생생하게 기록하고 싶다. 단순히 기록을 해서 나중에 다시 돌아보는 것의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다. 그때 그 순간의 삶을 가장 충실하게 살 수 있는 방법이 바로 글을 쓰는 것을 통해서 가능하다. 그래서 다시금, 쓴다. 흘러가는 대로 사는 삶이 아닌, 내가 원하는 대로, 내가 생각하는 대로 능동적으로 꾸려가는 삶을 살고 싶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