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결혼을 하고 가장 놀랐던 적은 언제일까. 내 아내는 핀란드인이다. 아내와 결혼을 한지 이제 곧 2년이 된다. 연애를 2년 정도하고 결혼을 했으니 이제 곧 아내와 함께한 지 4년이 되어간다. 얼마 전 보스턴에서 사귀게 된 친구인 스티븐과 알렉스 그리고 귀여운 데이비드와 저녁식사를 함께 했다. 알렉스는 한국계 미국인, 그리고 스티븐은 멕시코계 미국인이다. 그런 둘이 만나서 생긴 아들 데이비드는 과연 어떻게 스스로의 정체성을 정의할지 흥미롭다. 우리 두 커플 모두 서로 다른 인종이 만나 결혼을 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저녁식사를 하면서 국제결혼을 하고 가장 놀란 점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우리는 일종의 보드게임 형태인 던전&드래건이라는 게임을 하면서 서로 친해졌고, 스티븐과 알렉스가 우리가 새로운 집에 이사를 할 때 도와주었다. 이사를 도와준 것이 너무 고마워 친구들을 초대했다.
이사한 첫날의 우리 집
국제결혼을 하면 당연히 서로 다른 사회적 기준에 놀랄 때가 많다. 각자에게 당연한 것이 서로에게 당연하지 않은 것이다. 서로를 알아가는 단계였던 때로 기억한다. 한국음식을 해주겠다고 마리안네의 집에 가서 아래의 마늘볶음밥을 해줬다. 지금이야 전 세계에 한국인만큼 마늘을 많이 음식에 넣는 나라가 없다는 것을 알지만, 그때는 핀란드에 간지 얼마 안 되었을 때라 한국인의 유난스러운 마늘 사랑을 잘 몰랐다. 그래도 나름대로 열심히 준비해서 백종원 아저씨가 알려주신 레시피대로 요리를 했다.
사실 내 입맛에는 굉장히 맛있는 음식이 준비되었다. 기분 좋은 상태로 마리안네에게 음식을 준비해 주고, 맛있게 음식을 먹고 있었다. 마리안네는 정말 한입 먹고 나서는 수저를 내려놓더니.
나한텐 이 음식이 맛있는 음식은 아닌 것 같네, 너 좋아하는 것 같으니까 많이 먹어~
라고 말하는 것이다. 당시에는 큰 내색을 하지 않았지만, 엄청난 충격을 받고 속상하기도 했다. 한국에서는 친구가 음식을 준비해 주면 웬만하면 다 먹곤 했었던 기억이다. 사실 다들 입맛이 웬만하면 비슷하기에 한 사람에 맛있는 음식이 다른 사람에게 맛이 없는 경우도 많지 않고, 설령 그렇더라도 웬만하면 "음~~" 하면서 적어도 주어진 음식을 다 먹곤 했다. 그런데 정말 한 입 먹고 나서 음식이 맛이 없다고 안 먹는다니, 이건 내가 싫다는 의미 인가까지 생각했었다.
핀란드문화에서 사람들은 대게 매우 직설적이다. 음식이 맛이 없으면 맛이 없다고 말하고, "언제 한번 보자~"고 하면 바로 날짜를 묻는다. 그냥 하는 빈말이 없다. 처음에는 그래서 놀랐던 적도 많다. 그러나 지내다 보니 그 문화의 장점이 많이 보였다. 반면 한국에서 연애를 할 때는 말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 안 되는 경우가 많다. "화 안 났어"라고 해서 정말 화가 나지 않은 것이 아니고, "괜찮아"가 괜찮아가 아닌 경우도 많다. "뭘 기념일을 챙겨~"라는 말을 듣고 기념일을 정말로 챙기지 않았다가는 낭패를 보기도 한다. 그래서 상대방의 기분을 살피고, 행간을 잘 읽어서 행동해야지 연애를 잘할 수 있다. 그러나 핀란드 사람과 연애를 하니 정말 말 그대로 이해를 하면 되었다. 음식이 맛이 없다는 것은 정말로 그 음식이 맛이 없었다는 것이다. 그 외에 고려해야 할 다른 맥락은 아무것도 없다. 그리고 마리안네가 정말 사랑하는 사탕 살라미야끼를 먹어보니, 도저히 맛있다는 말이 안 나왔다.
살라미야끼: 핀란드의 국민 사탕, 염화암모늄 성분이 있어 짜고 떫다.
처음 예의 바른 척한다고 괜히 맛있다고 했다가 계속 사탕을 권하면 낭패다. 진짜 누가 준 음식을 맛없다고 안 먹어 본 적은 처음인데, 진짜 위의 살라미야끼는 내가 먹어본 음식 중에 제일 맛없었다. 그러나 마리안네는 이 사탕을 너무 좋아하고, 요즘도 심지어 미국에서 계속 어디선가 찾아서 종종 먹곤 한다. 그래서 나도 이제는 그냥 직설적으로 말한다. 아내가 해주는 음식이 내 입맛에는 별로인 경우 있는 그대로 말한다. 아내 역시 마찬가지다. 이제 4년이 지나 서로가 어떤 음식을 좋아하는지 잘 알기에 서로가 좋아하는 음식을 권한다. 말의 행간을 읽을 필요가 없는 것은 굉장히 많은 스트레스를 줄여준다.
아내가 놀랐던 지점 역시 한국과 핀란드의 문화차이 일 것이다. 처음 놀랐던 것은 세배를 할 때였다. 설날에 어른들에게 세배를 하는 것은 한국에서 굉장히 당연한 문화이고 그것에 큰 부담을 느끼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리고 우리 부모님들을 인생 처음으로 며느리가 생겨, 며느리에게 세배를 받아볼 생각에 신이 나셨다. 그런데 마리안네는 세배를 하는 모습이 마치 포로가 투항하는 모습 같다고 말하며 부모님에게 세배를 하는 것에 굉장히 큰 거부감을 느꼈다.
어떻게 보면 절하는 것이랑 비슷하기도 하다
할아버지한테도 하이파이브하고, 아내의 할아버지를 그 할아버지의 이름으로 부르는 수평적인 문화에서 단지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그 사람에게 세배를 하는 것은 굉장히 어색할 수 있다. 아내의 할머니 할아버지를 방문했을 때 할머니 할아버지를 이름으로 불러야 할지 아니면 뭐라고 불러야 하냐는 질문에
아니 그럼 뭐라고 불러? what else should you to call them?
라고 답변했던 것이 아직도 인상 깊다. 그래서 실제로 아내의 할아버지를 뵙고 Hi Jorma~ (안녕 요르마~)라고 했던 것이 참으로 인상 깊었다. 한국에선 참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한 번도 그렇게 생각을 해본 적은 없는데, 생각해 보니 세베가 어찌 보면 굉장히 굴욕적인 모습처럼 비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의외로 아내를 설득할 수 있었던 지점은 세뱃돈이었다. 핀란드에서는 자녀가 성인이 된 순간부터 부모가 자녀에게 돈을 주는 일은 거의 절대 없다. 부모님이 잠시 여행을 다녀오느라 동생들을 돌봐달라는 부탁을 할 때에도 마리안네는 시간당 시급을 계산해서 돈을 받는다. 장모님이 우리 집에 오셔서 묵으셨을 때도 숙박비를 주고 가셨다. 서로 공짜가 없다. 세베 한번 하면 5만 원을 받는다는 사실이 설득을 할 수 있는 방법이었다. 또한 한국의 부모님과 자녀관계에 대해서 나름대로 열심히 설명을 했다. 농담 삼아 세베 한번 하는데 1분이면 충분한데 5만 원이라니 아주 쏠쏠하다며 이제는 최고의 시급이라며 세배를 큰 부담 없이 잘한다. 중요한 것은 다름을 인정하고, 당연함을 설명하려는 노력이다. 세상에 당연한 것은 없다.
알렉스와 스티븐이 결혼 생활을 하면서 놀란 점에 대해서는 다음 글에서 이어서 적어 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