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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컬쳐커넥터 김도희 Jan 08. 2023

한국식 결혼 FM을 거부합니다

우리는 타인의 해답을 따르는 데 길들여진 게 아닐까

나는 한국 결혼 산업을 굉장히 싫어한다. 결혼 당사자인 신부와 신랑의 자율성이 반영되 않는 데다, 신랑 신부를 위하는 듯 보이는 사탕발림 대잔치인 것만 같다.  스드메 업체들을 패키지로 묶어 엄청난 할인을 준다지만 그 가격도 투명하지 않, 수많은 필수 옵션(옵션은 선택권이 있다는 뜻인데, 필수라니)과 보증 인원 때문에 내가 원하지 않거나 불필요한 것들을 억지로 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웨딩홀이 마음에 들면 웨딩홀과 연결된 꽃 집이나 스튜디오, 케이터링을 꼭 선택해야 하는 것처럼 말이다. 아무리 다양한 형태로 할인을 해준다 해도, 각기 다른 조건이 걸린 수 십 수 백 가지의 패키지를 보고 있자면, 머리가 핑 돈다. 너무나 다양한 선택지에 압도당하는 느낌이다. 결혼식 주인공의 선택권은 어디로 갔을까?

 

우리는 왜 결혼식을 올리며 행복한 결혼식이란 뭔지, 결혼 준비를 하면서 그 본질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본다. 사랑하는 사람과 평생을 약속하는 자리에 소중한 사람들을 초대해 둘이 하나가 됨을 선언하는 날. 지인들의 축하와 인정을 받는 일은 생각만 해도 설레지만, 한국의 결혼식은 그 축하마저 속전속결로 30분 이내에 끝내야 한다. 제대로 된 축하를 받을 수 있을 리가 없다. 생에 단 한 번뿐인 결혼식에 와 남자 친구 우리의 마음과 정성을 더 쏟기로 했다. 귀찮고 시간과 품이 더 들어도 나와 남자친구에게 더 필요한 것만 우리에게 더 의미 있는 방향으로 준비하기로 마음먹었다. 업체와 플래너가 똘똘 뭉친 폐쇄적인 결혼 산업에 농락당하고 싶지 않은 마음과, 강제적인 기성 문화에 대한 반항이랄까.


작년 말, 우연히 인스타그램에서 광고를 보고 웨딩 박람회에 간 적이 있다. 당시 드레스, 웨딩홀 등 결혼 정보 검색을 많이 하던 중 광고 타깃이 됐음에 틀림없다. 결혼 준비가 막막하기도 했지만, 도대체 우리나라 결혼 산업의 구조는 떨까 궁금했다. 호기심과 경계 어린 마음으로 코엑스의 작은 홀에 도착해보니 예복, 플래너, 예물 업체가 규격화된 책상을 따라 즐비해 있었다. 등록 데스크 주변에는 웨딩 스튜디오 화보집이 전시되어 있었는데, 한눈에 나는 내 친구의 스튜디오를 찾을 수 있었다. 앨범 속 모델이 내 친구가 아니라는 점만 빼면, 친구의 웨딩 사진 똑같았기 때문이다.

'OO야, 너 여기서 촬영한 거 맞아?'

'오, 어떻게 알았어? 나 그 스튜디오에서 촬영했어!'

친구는 그녀의 웨딩 앨범 속에서 충분히 빛났지만, 친구와 같은 사진을 가진 사람이 어쩌면 수 백 수 천 명이 있을 수 있다 생각하니 기분이 묘했다. 공장에서 찍어내는 기분이랄까... 나를 위해 맞춤형으로 제작되는 것도 아닌데 가격은 또 어마무시하다.


공장형 스튜디오 전시장을 지나, 작은 테이블에 웨딩 플래너와 마주 앉았다. 우리를 맞이한 플래너 님은 우리 취향과 예산에 맞는 여러 업체를 소개해주고자 정말 친절하게 상담을 해주셨지만, 상담 끝엔 불합리한 선택지와 선택에 대한 압박이 남았다.

'박람회 특가라, 오늘까지이 가격에 드려요! 계약을 지금 하고 가시는 건 어떠세요?'

한두 푼이 드는 것도 아닌 결혼식에 당장 의사 결정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고객 한 분 한 분이 수입원인 웨딩 플래너를 뒤로하고 박람회를 나왔다. 역시나 불합리하고 불투명한 결혼 산업에 진절머리가 나는 것과 동시에, 1시간이나 상담을 해주고 아무것도 얻지 못한 그분께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웨딩플래너가 잘 추려 준 선택지를 보며 결혼을 준비하는 것은 편리하고 효율적일 수 있다. 루종일 일 하기도 바쁜데, 예물, 예복, 웨딩홀 등 수많은 업체를 찾을 여력이 없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편리함과 효율성을 명목으로 불합리한 결혼 산업 구조가 정당화되서는 안된다. 더욱이 우리는 어쩌면, 남들이 제시하는 해답지만을 가지고 선택을 내리는데 길들여진 게 아닐까. 그렇기에 나는 내 결혼을 준비할 때만큼은 스스로 해내어 증명하고 싶다. 삶의 매 순간에 내 주도권을 지키기 위한 나만의 작은 투쟁이다.


결혼 준비를 시작했다. 결혼식 장소는 한눈에 반한 한옥을 예약했다. 식사 외엔 아무것도 제공되지 않고, 꽃 장식부터 음향 장비 업체까지 내가 직접 찾아야 한다. 리고 이 때문에 나는 여기를 선택했다! 간을 대여해주는 사장님은 아는 업체를 소개시켜주실 뿐, 자신이 소개해주는 업체와 굳이 할 필요가 없다고 하셨다. 스튜디오 촬영은 하지 않기로 했다. 대신 남자친구와 내게 의미 있는 장소에서 스냅 촬영을 하기로 했다. 신혼여행도, 예물도, 예복도 아직 미정이다. 청첩장은 남자 친구의 가장 친한 친구에게 디자인을 부탁했다. 6개월 전엔 스튜디오를 정하고, 드레스샵 투어를 가고, 3개월 전엔 청첩장을 완성하는 등 결혼식을 앞두고 몇 개월 단위로 해야 할 것들이 정해져 있다고 하지만, 아무것도 정해지지 않은 나는 조금도 답답하지도 조급하지도 않다. 우리가 어떤 결혼식을 만들고 싶은지가 분명하기 때문이다. 하나하나 챙겨야 할 게 많지만 온전히 내 손으로 소중한 분들을 모시는 행사를 만들 수 있다는 것만으로 더 자유롭고 더 큰 정성을 들이게 된다. 


결혼식 업체가 신랑 신부를 돈으로만 보지 않고, 함께 아름다운 이벤트를 준비하는 파트너로 볼 수 있는 날이 곧 오기를 바라며, 내 삶의 주도권을 잃지 않는 작은 투쟁의 막이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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