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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한 미국유학생활

"그럼에도 불구하고"

by 안건

불안하다. 미국에서 박사과정을 하기에 참으로 불안한 요즘이다. 여행을 하면 돌아올 수 있을지, 심지어 갑자기 쫓겨나는 것은 아닐지 불안함을 느낀다. 미국에서 유학생활을 하고 있는 외국학생들은 거의 대부분 이런 감정을 공감한다. 불안함을 느껴서 해야 하는 일에 집중도 잘 되지 않는다.


불안은 "무엇에 대한" 불안인지가 매우 불명확하다. 구체적인 '무엇에 대해'가 있는 두려움과 불안은 그런 점에서 다른 것이라며 <불안사회>의 저자 한병철은 말한다. 막연하게 불안함이라는 감정을 느끼지만, 정확히 무엇에 대해서 지금 내가 불안해하고 있는지 명확하지 않다. 그 막연함 자체가 불안함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역설적이게도 내가 가장 불안해하는 것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생각해 보는 것이 도움이 된다.


내가 가장 불안해하는 것은 현재 나의 꿈이자 목표였던 창업이 현실화되지 않는 것이다. 6개월 전에 신청했던 영주권을 받지 못할까 불안하고, 혹시라도 박사과정을 하던 중 입국을 못하게 되거나, 미국에 체류 자격이 없어질까 불안하다. 나는 항상 미래에 사는 사람이다. 목표 지향적인 삶을 살아왔다. 고등학교 때는 서울에 있는 종합대에 가는 것이 목표였고, 서울대학교에 갔을 때는 유학을 가는 것이 목표였으며, 엠아이티에 유학을 와서는 창업을 하는 것이 목표다. 어렸을 때 마냥 좋아하기만 했던 목표 지향의 문제점을 살아오면서 깨달은 것이 하나 있다. 그것은 바로 목표가 이뤄지지 않았을 때의 괴로움이다. 삶을 살아가면서 내가 세우는 목표는 점점 난이도가 높아진다. 목표를 이루고 나면 그 행복감이 그렇게 오래가지 않는다. 결국 새로운 목표가 필요하다. 그리고 점점 내가 영향을 끼칠 수 없는 것들이 많아진다 미래에 살 때의 문제점은 내가 원하는 것이 이뤄지지 않은 것이 "상실"로 느껴지기 때문이다. 돌아보면 2020년에 우울감에 빠졌던 것도 유학에 실패했던 것에서 오는 '상실감"이 큰 영향을 끼쳤다.


미래를 준비하되, 내가 지금 당장 미래를 준비하여 할 수 있는 행동에 집중하자. 하늘에 둥실둥실 날아다니는 사람이 아닌, 땅에 발을 붙이되, 눈으로는 하늘을 바라볼 수 있는 사람이 되고자 노력해보려 한다. 2025년 3월 29일을 외국인으로서 미국에서 살아가는 사람인 나는 지금 당장, 어떤 노력을 할 수 있을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희망이다. 희망은 낙관주의와 다르다. 낙관주의가 부정적인 것을 무시하고, 현실을 외면하는 것이라면, 희망은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정신이다. 희망은 절망 속에서도 앞으로 나아가려고 애쓰는 능동적인 마음가짐이다. 상황을 더 좋게 만들기 위해서는 동력이 필요하다. 그리고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애쓰는 희망은 그 동력도 제공해 준다. 우리가 처한 현실을 정확하게 직시하고, 그 이후 더 나은 방향으로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필요한 것에 대해 고민하는 것이다.


희망은 당연하게 생겨나지 않는다. (...) 많은 경우 일부로 일깨우거나 불러일으켜야 한다. 결단이 필요 없는 낙관주의와 달리, 행위하는 희망에는 적극적 참여라는 특징이 있다. -<불안 사회> 한병철


내가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을 구별하자. 내가 불안해하는 것이 내가 노력해서 변화할 수 있는 영역의 것이라면 노력에 집중하면 된다. 반대로 내가 노력해서 변화할 수 없는 영역의 것이라면 그것은 최대한 신경을 끄려고 노력해야 한다. 기독교는 아니지만, 평온을 비는 기도는 언제 외워도 인생에 도움이 되는 오래된 지혜다.

Grant me the serenity to accept the things I cannot change the courage to change the things I can and the wisdom to know the difference.

바꿀 수 없는 것은 받아들이는 평온함을, 바꿀 수 있는 것은 바꿀 수 있는 용기를, 그리고 이 둘을 분별할 수 있는 지혜를 주소서. - 평온을 비는 기도(Serenity Prayer)

지금 미국이 돌아가는 것에 외국인 신분으로 있는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없다. 내가 걱정하고 불안해한다고 해서 나에게 어떤 일이 일어날 확률에 전혀 영향을 끼치지는 않는다. 다만 엠아이티에서는 내게 평상시에 돌아다닐 때 나의 신분을 증명할 수 있는 서류를 들고 다니라고 권고 사항을 이메일로 보냈다. 나는 나의 학교가 나를 위해 조언한다고 믿는다. 그래서 적어도 나는 나의 신분을 증명할 수 있는 I-94를 소지하고 다닌다. 이 행동은 적어도 나에게 무슨 일이 일어날 확률을 아주 작게나마 줄여준다. 이러한 행동을 함으로써 조금이나마 나의 불안이 줄어든다.


주위 사람들에게 조금 더 따듯해지려고 한다. 이건 명확하게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다. 지금 시대의 혼란은 결국 많은 사람들의 삶이 각박해서 생겨난 부분이 많다. 감정적으로 불안해하고, 분노하는 사람이 많을수록 극단적인 포퓰리즘을 지지할 가능성이 높다는 연구결과[1]도 있다. 일상생활 중에 그런 사람들에게 조금이나마 따듯해진다면 조금씩 세상이 조금 더 나아지지 않을까. 희망하는 이는 타인을 향해 나아가니까.


현재로 돌아가자. 불안하지 않고, 충만함을 느끼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지금 이 순간에 살아야 한다. 과거에 사는 사람은 후회하게 되고, 미래에 사는 사람은 걱정하게 된다. 혹시라도 최악의 경우로 정말 박사과정 중에 미국을 떠야 하는 상황이 오면 어떠한가, 한국에 돌아가도 되고, 유럽에도 정말 좋은 기회가 많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연구에 집중하여 열심히 노력하자. 내 마음가짐은 언제든지 나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부분이다.


최대한 감사할 점을 찾으려고 한다. <불안사회>를 읽고 진행 한 독서토론에서 한 분은 자신이 가장 불안해하는 것이 "자신의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라고 공유해 주었다. 자신이 진정으로 좋아하는 것을 하면서 사는 것은 너무도 어렵다고 공유해 주었다. 나는 정말 감사하게도, 내가 정말로 좋아하는 것을 하면서 살고 있다. 나는 우울증을 정말로 이해하고 싶고, 우울증을 겪는 사람들을 조금이라도 도와주고 싶다. 나는 감사하게도 우울증을 연구하는 박사과정을 하고 있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일로서 하는 것은 행운이다. 너무도 감사할 일이다. 내가 가진 행운에 감사하며, 내가 살아가며 할 수 있는 일 하나하나에 최선을 다해야겠다.


이러한 노력이 나와 내 주변에서 불안해하는 사람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길 바란다.


참고자료


[1] Rico, G., Guinjoan, M., & Anduiza, E. (2017). The emotional underpinnings of populism: How anger and fear affect populist attitudes. Swiss Political Science Review, 23(4), 444-461.


한병철 (2024). 불안사회. 다산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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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9qS1B6WXXl0?feature=shar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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