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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건 May 08. 2019

극락 핀란드 의료 vs 헬조선? 의료

핀란드 오울루 대학 교환학생 일기 #31

핀란드에서 공부를 하며 교환학생 기간을 1년으로 연장하고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핀란드의 아름다운 날씨와 존중받는 분위기 속에서 세상을 보는 눈이 조금씩 바뀌고 있었다. 어느 날 학교에서 유튜브를 보며 뒹굴거리고 있다가 밖에 나왔는데 갑자기 세상이 이상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당시에는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전혀 알 수 없었다. 다만 안경을 쓸 때 안경의 지문이 묻어있는 것처럼 세상이 이상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위의 사진보다 훨씬 더 심하게 뿌연 느낌이 강했다. 해당 일이 지난주 금요일에 있었다. 통각도 같이 동반되었다. 


핀란드에서는 주말에는 병원을 이용할 수 없다. 월요일이 될 때까지 기다리면서 멘털을 다잡는 수밖에 없었다. 핀란드의 의료 시스템에 대해서 여러 번 이야기했지만, 의료 시스템이 썩 괜찮은 편은 아니다. 공적 의료시스템의 경우 당연히 저렴하지만 너무 느리고 질이 좋지 않다. 


안과의 경우에는 아예 일반진료에 포함되지 않는다. 안과에 바로 가려면 사설 의료원을 이용해야 한다. -13 디옵터의 초 고도근시를 가지고 있어 아무 문제가 없어도 최소 1년에 한 번 검진을 받아야 하는 내게는 썩 좋은 조건은 아니다. 


친구의 도움을 받아 사설 의료원을 예약했다. 영어로 작성할 수 있는 곳을 찾느라 제법 고생했다. 

사설 병원

병원이랑 크게 다른 것이 있지는 않다. 다만 조금 더 깔끔하고 디자인에 신경을 쓴 느낌이다. 


결과를 들어보니 망막열공이다. 망막에 구멍이 생겨 출혈이 일어난 상태였다. 아주 응급한 상태로, 일주일만 방치하면 실명을 할 수도 있는 상태였다. 다행히 병원에 빨리 올 수 있었고, 진단을 받아 사설 의료원에서 대학 병원으로 예약을 해줬다. 


그렇게 사설 의료원에서 검사를 받고 대학 병원으로 예약을 잡아 주는데 132유로, 한화로 16만 원 정도의 진료비가 나왔다. 의료보험을 들고 핀란드에 왔기 때문에 아마 보험 청구가 가능할 듯 하지만, 혹시라도 보험이 없이 이곳에 왔다면 아찔하다. 


월요일 2시에 의사를 만나고, 대학 병원에서 가능한 빠른 시간 내로 전화가 올 것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집에 돌아왔다. 언제 대학병원에서 전화가 올지 모르기 때문에 전화기를 항상 붙들고 기다리고 있었다. 


오늘(화요일) 12시에 핀란드 계좌를 만들기 위해서 은행 예약이 잡혀 있어 은행을 가던 와중에 전화가 왔다. 


A : 군 아흔(Gun Ahn을 핀란드식으로 읽은 발음) 씨 되십니까?
네.
A : 대학 병원입니다. 현재 예약이 잡혀 있습니다. 바로 오셔야 합니다. 
바로가 얼마나 바로를 말하는 건가요? 혹시 지금 은행에 들렀다가 가도 되나요?
A : 안됩니다. 지금 당장 오셔야 합니다. 아주 긴급한 상황입니다. 


아직도 간호사(?)의 단호한 목소리가 잊히지 않는다. 아주 급한 상황이니 당장에 와야 한다는 그 단호함이 참 고마웠다. 


그렇게 친구와 함께 다시 대학병원을 찾았다. 

대학 병원

병원에서 어제 받은 검사를 동일하게 받고, 거의 바로 레이저로 치료를 받았다. 레이저로 망막의 구멍이 더 이상 확장되지 않도록 그 구멍 주의를 지지는 것이라고 한다. 진료부터 수술까지 24시간이 채 걸리지 않았다. 


이후에는 2주간 운동을 하지 않도록 권장받았고, 그 외에 글을 읽거나 모니터를 보는 것은 상관이 없다고 했다. 다만 현재에도 모니터를 보는 것은 초점이 잘 안 잡혀 눈이 굉장히 금방 피곤해지는 상태이다. 


다행히 빠르게 조치하여 큰 문제없이 치료받을 수 있었다. 


대학병원에서의 진료와 수술비는 추후에 우편으로 청구된다고 한다.


사람들이 사설 의료를 이용하는 이유


한 가지 재미있는 점은 내가 사설 의료원에서 받은 진료는 의학적으로 전혀 필요하지 않다는 점이다. 내가 사설 의료원에서 받았던 검사와 완벽하게 동일한 진료를 대학병원에서 받았다. 


그러나 만약 내가 먼저 일반 진료를 찾았다면 정말로 내 눈 한쪽의 기능을 잃었을 수도 있다. 일반의를 만나서, 눈에 문제가 있음을 인지하고 그 이후 다시 안과의 예약을 잡고 내 눈을 검사받기 까지 1주일이 걸렸을 수도 있다. 물론 이 스텝을 밟으면 거의 무료에 가깝다. 그러나 1주일만 늦었어도 내 왼쪽 눈으로는 다시 빛을 볼 수 없을 수도 있다. 


필자는 사설 의료원으로 바로 달려갔고, 내 상태가 응급상태라는 것을 진료받을 수 있었다. 그래서 대학병원에 예약을 바로 잡을 수 있었고, 응급상태 이기 때문에 모든 것을 다 제쳐 놓고 먼저 치료를 받을 수 있었다. 


경제적 여유와 지식이 의료의 질을 결정했다.


결과적으로 16만 원 정도의 금액을 내서 진료의 속도를 빠르게 할 수 있었다. 그 정도는 부담할 수 있는 여유가 있었기에 의료의 질이 아주 높아진 것이다. 한쪽 눈의 가치와 16만 원을 저울질한다면 당연히 한쪽 눈의 가치가 압도적으로 높다.


다만 필자는 구글링과 어머니(간호학 전공자이시다.)의 도움으로 현재 상태가 응급하다는 것을 안 상태였다. 그렇기에 쉽게 의료원을 결정할 수 있었다. 


그러나 만약 정말 빠듯해서 이 정도의 금액을 쉽게 감수할 수 없는 상태라면? 혹은 , 의료적 지식이 부족하여 16만 원을 투자하기보다는 1주일(정확한 기간이 얼마가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더 길어질 가능서가 높다.) 정도 기다려 일반의를 만나는 선택을 했다면? 그렇다면 정말로 한쪽 눈을 잃었을 수도 있다.


무언가에 의해서 의료가 결정되어서는 안 된다.


필자는 선택을 했어야 했다. 그리고 상대적으로 옳은 선택을 했다. 그러나 의료서비스를 받음에 있어 본인이 선택을 해야 하는 것이 많다면 그것이 좋은 의료서비스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한국이었다면 선택의 여지없이 안과로 달려갔을 것이다. 내 망막에 구멍이 생겼는지 확인하는데 16만 원(대학병원에서의 진료비를 제외한 금액이다.)이라는 돈이 나오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렇기에 필자는 한국의 의료시스템이 핀란드보다는 조금 더 좋다고 생각한다. 핀란드의 사설 진료에 비해 저렴하고, 공공진료에 비해 질이 높고 빠르기 때문이다. 


어느 나라나 문제가 있다. 


요즘 참 많은 사람들이 헬조선을 외치고, 이민을 생각한다. 이민을 생각하는 것은 절대 나쁘지 않다. 다만 막연하게 한국을 깎아내리지 않았으면 한다. 참 많은 문제가 있는 나라지만, 정말 많은 문제를 해결해온 나라이고 생각보다 많은 좋은 점이 있는 나라이다. 


핀란드인들은 의료시스템에 많은 불만을 가지고 있었지만, 적어도 한국에서 일반 진료에 불만을 가진 사람을 본 적은 없던 것 같다.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나라라는 핀란드에도 문제는 있다. 


한국에도 당연히 문제가 있다. 문제에 대해서 불평할 수 있다. 그러나 그 문제를 사회적으로, 조직적으로 어떻게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끄는 고민을 하는 사람이 조금이라도 더 많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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