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까지 긴장하며 마무리 잘하기
* 13일 차, Namche(3,440m) → Phakding(2,610m) 3시간 30분 소요 → Lukla(2,840m) 2시간 15분 소요
드디어 히말라야 트레킹 마지막 날 아침이 밝았다. 06시에 가벼운 마음으로 자연스럽게 눈을 떴다. 여유롭게 트레킹 준비를 마치고 식당으로 가면서 스스로 생각했다.
'건아, 중요한 건 마지막까지 긴장 늦추지 말고 안전하게 루클라까지 내려가는 거야'
그러나 아침부터 뭔가 삐그덕 했다. 식사 후 숙박과 식사 비용을 지불하려 하는데 갑자기 세금(총금액의 13%)을 추가로 지불하라는 게 아닌가.
'응? 올라갈 때는 그런 말이 없었는데. 갑자기 왜? 그리고 왜 여기서만 이러는 거지?'
갑자기 너무 황당했다. 사기 냄새가 아주 풀풀 풍겼지만 트레킹 마지막 날인 오늘의 좋은 기분을 망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다 알면서도 그냥 그러려니 하고 나와버렸다. 그런 게 아니었겠지만 괜히 이런 생각까지 들었다. 어제 내가 다시 왔을 때 세상 반갑게 인사하며 맞아준 게 이러려고 그랬던 건가. 마음을 비우기로 했다.
생각보다 몸은 상당히 가벼웠다. 오늘이 마지막 날이라는 것 자체가 믿기지 않았다. 이제 좀 뭔가 적응된 듯했고, 라즈랑도 손발이 맞아가나 싶었는데 벌써 마지막 날이라니...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날씨는 흐렸던 요 며칠과는 다르게 너무 맑고 화창했다. 날씨가 더워서 중간에 쉬는 동안 윗 옷을 벗었다. 얇은 긴팔 위에 반팔 하나만 입은 상태로 트레킹을 이어갔다. 남체에서 팍딩까지는 상당히 먼 거리였다. 올라올 때 경험한 5시간 이상의 가파른 오르막이 이번에는 3시간 30분 동안 가파른 내리막으로 변해있었다. 내려가는 길 역시 쉽지 않았다. 걷고 또 걸었다. 아슬아슬한 흔들 다리를 건너고 또 건넜다. 올라갈 때는 조급한 마음에 몸과 마음이 힘들었었다. 그러나 이제는 배낭은 물론 몸과 마음까지 가벼워졌다는 것을 나 스스로가 느낄 수 있었다. 그만큼 나도 성장하고 변했겠지?
계속해서 떠올랐던 올라갈 때의 느낌과 감정들을 돌아보며 첫날밤을 보냈던 2,610m 팍딩에 도착했다. 어제 남체에 도착했을 때처럼 반가운 마음이 자연스레 들었다. 올라갈 때 하루 머물렀다고 이렇게 편하게 느껴질 수 있나 싶을 정도였다. 비상식량으로 가지고 있던 마지막 봉지라면 하나를 개봉했다. 뜨거운 물과 흰쌀밥을 주문하여 뽀글이를 만들어 먹고 국물에 밥 까지 말아먹었다. 해외에서 먹는 라면, 그것도 히말라야에서 먹는 라면은 언제 먹어도 꿀맛이었다. 라면을 먹다 보니 엊그제 아저씨께서 나눠주신 신김치 생각이 났다. 그리운 한식 생각도 났다.
식당 밖에는 물이 졸졸 나오기는 했지만 그래도 간단한 세면이 가능했던 세면대도 있고 비누도 있었다. 히말라야에서 이런 곳은 정말 오성급 호텔 같은 곳이다. 거기서 며칠 만에 손과 얼굴을 씻는 라즈를 보니 세상에 이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나는 보기만 해도 이렇게 개운한데 라즈는 얼마나 씻고 싶었을까.
맛있게 식사를 하고 잠깐 휴식을 취한 후 12시 05분에 마지막 종착지인 루클라로 향했다. 올라갈 때와는 반대로 은근히 오르막 길이 많았다. 지금 가는 루클라는 점심을 먹었던 팍딩보다 고도가 높은 곳이다. 그래도 어렵지 않게 한발 한발 내디뎠다. 그동안의 훈련의 힘일까. 그것도 맞겠지만 해발고도 자체가 제법 낮아졌기에 이제는 정말 숨 쉬는 것부터 걷는 것까지 모든 게 많이 편해졌다.
그러나 갑자기 먹구름이 하늘을 가리는 게 아닌가. 이번 일정에서 처음으로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그래도 나처럼 이렇게 좋은 날씨 속에서 히말라야 트레킹을 10일 이상 한 사람도 정말 드물 것 같았다. 빗방울이 떨어져서 순간 불안하기도 했지만 빗줄기를 보니 왠지 비옷을 입지는 않아도 될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잠깐 동안 구름이 해를 가리고 소량의 빗방울만 떨어뜨린 후 하늘은 다시 맑은 얼굴을 보여줬다. 역시 최고다 정말. 어젯밤에 나는 오늘 카트만두로 넘어가는 항공편으로 미리 변경을 해놨다. 그래서 내 머릿속에는 온통 하산과 동시에 바로 비행기를 타고 카트만두(네팔의 수도)로 날아가서 거기에 있는 한식당으로 가고 싶은 생각뿐이었다. 그렇게 걷고 또 걸으며 드디어 루클라에 도착했다.
'예에, 진짜 해냈다! 내가 해냈어. 결국 또 해냈다고!'
정말 미칠 듯이 행복했다. 날아갈 것 같았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는 믿기지가 않았다. 내가 쿰부 히말라야 트레킹을 성공적으로 마쳤다니. 스스로가 정말 자랑스럽고 뿌듯한 순간이었다. 당장이라도 카트만두로 날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설렘과 기대감을 안고 변경된 비행기 티켓을 확인하러 갔다. 그러나 행복했던 순간도 잠시.
"어쩌죠. 안타깝지만 오늘 하루 여기서 더 머물러야 할 것 같네요."
"(믿고 싶지 않았다)네? 왜요?"
"한 시간 전에 갑작스러운 기상 악화로 인해 오늘 하루 모든 항공편이 취소됐어요."
"오 마이 갓"
이럴 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