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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쿄 소시민 Sep 23. 2016

헬조선에 대한 간략한 고찰

우리 안의 전근대성

 최근 들어 우리 눈에 가장 많이 띄는 단어는 단연코 '헬조선' 일 것이다. 이 신조어는 한 인터넷 사이트에서 만들어진 이후 많은 이들의 공감을 사며 불길처럼 퍼졌다. 광복절 경축사에서 대통령이 언급할 정도로 널리 퍼진 '헬조선'의 정체는 단순히 '사는 것이 지옥 같아서 힘듦', 혹은 '세대차이에 의해 세상을 부정적으로 보는 것' 이 아니다. '헬조선'은 우리 내부에 존재하는 전근대성에 대한 고발이다.

 헬조선은 두 단어, 'Hell(지옥)+조선'의 조합이다. 지옥은 말 그대로 현재 한국 사회의 삶이 지옥 같다는 의미이다. 그리고 조선은 일제시대 일본이 한국을 비하하던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많은 이들은 전자에 포커싱을 맞춘다. 현재의 취업난, 직장 문화, 국가의 부재 등을 지옥 같다고 표현한다고 이해하는 것이다.

헬조선을 경제적인 측면에서만 이해하는 사람들도 많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후자, '조선'이다. 후자는 구조(거시)와 행위자(미시)를 관통하는 전근대성을 의식하고 있는 표현이다.

 타율적인 근대화의 결과 한국 사회의 행위자와 구조에는 많은 부분 전근대성이 남아있다. 근대화는 크게 3 프로젝트의 완성이다. 국가 만들기, 산업화, 민주주의이다. 외부에서의 압력에 의한, 자율성이 결여된 근대화로 인하여 한국의 경우 앞의 두 개만을 간신히 성취할 수밖에 없었다. 산업화를 이룩하고 근대 민족 국가를 만들었지만 민주주의는 미완으로 남았다. 식민지와 독재를 거치면서 민주주의와 자유주의의 핵심인 근대적 '개인'은 완성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즉, 한국 사회의 행위자 내면의  많은 부분은 근대적 개인이 아닌 것이다.

 행위자들의 행동은 내면의 인지(지식), 가치(규범), 감정, 선호에 의하여 결정된다. 그리고 이 행동들이 모여 제도를 형성하고 안정적인 제도가 구조를 만들기에 우리는 행위자의 내면에 먼저 관심을 보여야 한다. 미완의 근대적 개인인 한국 사회 행위자들의 내면은 크게 근대적인 인지와 전근대적인 규범의 결합이라고 생각한다. 19세기 후반부터 지속된 근대 교육의 영향으로 행위자들의 인지(지식)의 영역은 근대화되었다. 그러나 행위를 결정하는 또 하나의 영역 가치(규범)는 전근대에 머물러있다.

인지가 규범의 기반을 형성하지만, 식민지라는 타율적인 상황에서 대다수의 행위자들은 근대 교육의 세례를 받을 수 없었다. 또한 해방 이후에도 물질적인 결핍 속에서 근대 교육의 수혜를 받는 행위자들은 한정적이었다. 더 나아가 수혜를 받은 행위자들도 전근대적 규범이 재생산되는 가정, 군대, 등에서 다른 전근대적 규범과 인지를 갖고 있는 행위자들과 상호작용하면서 근대적 인지에 걸맞은 근대적 규범을 배양할 기회를 잃어버렸다. 이에 따라 한국 사회 행위자들의 가치는. 독립된 개인이 존재하지 않는 폐쇄적 공동체주의, 가부장적 사고방식, 등 상당히 전근대적인 수준에 머물러 있다.

이분의 내면은 어느 시대에 머물러 있을까?

 이러한 행위자의 전근대적 가치와 규범이 가장 잘 느껴지는 곳은 바로 가정과 회사이다. 명절 때 듣는 잔소리와 후진적인 조직문화는 모두 전근대적 가치의 산물이다.  독립된 개인이 아니기에 '우리'의 관점에서 '우리'의 기준을 강요하는 것이다.  기업들의 경우 주말출근이나 야근을 당연시 여기는 현상이 많다. 이는 개인의 부재->사적 영역의 부재 이기 때문이다. 사적 영역이 없다고 생각함으로 엄연히 개인의 시간이어야 하는 시간을 업무에 종속시킨다.

사적 영역을 포기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기업

  이러한 전근대성은 그 구조로 이어진다. 국가, 시장, 사회의 영역 전반에서 중세적인 면모를 찾아볼 수 있다. 국가의 경우, 국가 상부구조의 무능과 하부구조의 비대화, 형식적 민주주의, 등 전근대적인 면을 끝없이 나열할 수 있다. 특히 최근 들어 가장 주목받는 것은 국가의 부재이다.

세월호, 메르스, 최근의 지진에서 우리는 국가를 찾아볼 수가 없었다. 어떤 사람들은 왜 국가를 찾아볼 수 없냐고 반문할 수 있다. 실제로 우리 주변에서 국가는 세금을 징수하며 군대를 운용하고 여러 정책을 시행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국가의 관료제로서 하부구조이다. 의사결정이 이루어지는 국가의 상부구조는 여러 경험을 통해 느끼고 있듯이 존재하지 않는다. 이렇게 국가의 상부구조가 약한 원인에 대해서 다양한 해석이 있을 수 있지만 중세(전근대)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사실에는 이견이 없다. '한국'이라는 국가(State)는 중세에 머물러 있는 것이다.  

 시장 영역은 신자유주의 원리의 무분별한 수용으로 봉건적인 모습과 더불어 지옥과 같은 면을 가장 잘 드러내고 있다. 국내 기업들의 봉건적 원리에 따른 기업 운영은 근대 자본주의 경제가 아니다. 또한 최근의 취업난과 비정규직 문제는 한국 사회 구성원들의 삶을 지옥 수준으로 떨어트리고 있다.

 사회 행위자들의 상호작용에 의한 '사회'의 다양한 면들도 전근대성을 내포하고 있다. 타율적 근대화에 의한 약한 시민사회, 시민성은 그 일면에 지나지 않는다. 가장 큰 문제는 관용의 부재이다.

한국인들은 모두 '당연히' 동성애자가 아니다라고 생각한다.

근대의 핵심 이데올로기 중 하나인 자유주의의 가장 큰 덕목은 관용이다. 그러나 한국 사회는 관용과는 거리가 매우 멀다. 한국 사회는 '남과 다름'을 쉽게 인정하지 않는다. '눈치'를 과도하게 보는 것이 대표적이다. 냉전 반공 이데올로기에 의하여 강화된 이 특징은, 한국 사회 행위자들의 행동과 사고의 폭을 좁힌다.

 이렇듯, 한국 사회의 행위자와 구조 모두 전근대성이 강하게 남아있다.  잔존하는 전근대성이 근대적 원리들과 부딪힐 때, 여러 갈등 상황이 야기된다. 2010년 이후 헬조선이라는 표현이 나온 것은 따라서 우리 사회 행위자들 중 상당한 수가 근대적인 인지, 규범, 감정, 선호를 갖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진정한 의미의 근대화가 시작된 것이다.  아직까지도 군대, 학교, 가정 등 다양한 제도 속에서 전근대적 가치와 규범들이 확대-재생산되고 있지만, 불리한 환경 속에서도 점점 근대적 개인들이 탄생하고 있다. 이러한 추세대로라면 역사적 경로에 의하여 중세와 근대가 동시에 존재하는 한국 사회에서 언젠가는 근대화가 완료될 것이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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