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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쿄 소시민 May 01. 2016

아무도 없는 곳을 찾아서

O-Train 낙동강 상류 트레킹

 그런 날이 있다. 사람들에 지치는 날이 있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고객들, 답답한 상사, 팀플 모임 때마다 무슨 일이 있는 팀플 조원 등 사람 때문에 피곤한 날들이 온다. 그런 날이 왔을 때 양원역에서 승부역 사이 낙동강 상류는 좋은 도피처이다.

산과 계곡과 물소리뿐

 O-Train은 매주 월요일을 제외하고 서울-영등포-수원-천안 등을 지나 철암까지 운행한다(철암, 승부, 양원의 대략적인 위치는 지도를 참고하면 된다). 충청북도, 경상북도, 강원도를 하나로 연결한다고 하여 O-Train이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다. 수원에서 8:50분경 승차하여 목적지인 양원역에 오후 1시 반쯤 도착하였다. 이름도 처음 듣는 곳이기에 바로 지도를 켜서 위치를 확인해 보았다. 행정구역상 경상북도 봉화군인 이곳은 정말 아무도, 아무것도 없었다.


장작이 쌓여 있는 건물이 양원역 대합실이다.


 기차는 나를 포함해 6명을 내리고 떠났다. 기차에서 내리자마자 역은 갑자기 북적였다. 할머니들은 산나물들을 우리들에게 소개하셨고, 식당 주인분은 식당 메뉴판을 들고 나오셨다. 나머지 5명의 일행이 먼저 길을 떠나자 역은 또다시 조용해졌다. 4시간 동안 아무것도 안 먹었기에 배가 고파서 나는 이곳의 유일한 식당에서 감자전을 먹으면서 식당 주인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식당 주인은 열차 승무원이 이야기해준 것을 한번 더 확인해 주었다. 양원역은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민간에서 지은 역이며 하루에 기차가 6번 정차한다는 것이다. 정말 작은 역이다.

 감자전을 먹고 길을 나섰다. 5명의 일행이 먼저 출발하여 트레킹 코스에는 나 혼자였다. 낙동강의 시원한 물소리만 있을 뿐이었다. 몇십만 년 동안 낙동강이 깎은 이름 모를 계곡은 또 다른 아름다움이었다. 로키산맥처럼 장엄하지는 않지만 색다른 멋이 있는 풍경이었다. 길을 가면서 입이 딱 벌어지는 장관은 아니었지만 눈이 만족스러웠다. 다보탑보다는 석가탑에 가까운 아름다움이다. 또한 우리 산에 많은 소나무 덕분에 4월의 산이었지만 앙상하지 않았다. 봄 산의 미묘한 아름다움이 있었다. 군데군데 드러난 산의 맨살과 푸른 소나무를 보니 마치 산이 씨쓰루 옷을 입은 듯했다.

신라시대 화랑들이 뛰어다니며 몸을 닦았을 것 같은 계곡과 바위들의 연속이었다. 맑고 시원한 물소리가 만족스러운 풍경과 어우러져 마음이 편안해졌다. 우리나라에 이런 풍경이 있는 줄 전혀 몰랐다. 왜 우리나라가 금수강산이라고 불리는지 이제야 깨달았다.

 계곡을 나 혼자 즐길 수 있어 더 좋았다. 2시간 반을 걸어 다니는 동안 사람 그림자는 보지 못했다. 나의 사진 찍는 소리만이 울릴 뿐이었다. 산과 바위와 물소리만 있었다. 그 사실 자체가 사람에 지친 나의 마음을 달래 주었다.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라고는 하지만 이러한 자발적 고립감도 가끔씩은 필요하다.

하늘도 세평 화단도 세평인 승부역

  2시간 반 동안 신선처럼 돌아다니다가 드디어 목적지인 승부역에 도착했다. 승부역은 한 역무원이 지은 시로 유명한 작은 산골 역이다. 이 작은 역에서 화단을 가꾸던 한 역무원은 하늘을 보다가 시상이 떠올랐다.

"하늘도 세평이요

 꽃밭도 세평이나

 영동의 심장이요

 수송의 동맥이다 "

역이 첩첩산중에 있음을 표현한 하이쿠 같은 시다. 시를 보고 나서 얼마나 하늘이 좁은지 기대하면서 올려봤지만 세 평은 과장이고 족히 30평은 되어 보였다. 하늘은 생각보다 넓었지만 양원역처럼 작고 쓸쓸한 역이었다. 한가함, 혹은 한적함을 구현하는 곳이다. 북적거리는 수도권의 전철역들과 달리 오랫동안 머물고 싶은 역이었다. 역 벤치에 앉아 나보다 먼저 출발한 5명의 사람들과 함께 열차를 기다렸다.

 화물열차를 개조한 협곡열차 v-Train을 타고 내가 걸어온 길을 보면서 다시 양원역 방향을 향했다. 창 밖의 흐르는 낙동강을 무심하게 쳐다보는 사이 열차는 분천역에 도착했다. 분천역에서  다시 O-Train기차에 몸을 실으며 아무것도 없는 곳을 뒤로했다.


•여행정보

-O-Train: 서울, 영등포, 수원, 천안, 오송 등지에서 출발하여 분천, 양원, 승부, 철암에 정차.

수원 8:49->양원 13:27

승부 16:24->분천 16:48

분천 17:08->수원 21:24

양원에서 승부역은 6.5km 정도다.

양원역에는 식당이 한 곳 있으며 메뉴는 감자전, 껍데기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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