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Nini Mar 21. 2021

[일상] 특히 일요일 저녁 같은 때의 마음.

타성에 젖고 싶진 않다.

휴일, 특히 일요일 저녁 같은 때.
상황을 역전시키기 위한 어떠한 노력도 할 수 없지만
자신의 위태로운 처지를 곱씹어볼 여유는 있는 그런 때,
벤은 자기 마음속 공포를 뚜렷이 자각했다.

알랭 드 보통, 「사랑의 기초 : 한 남자」, 우달임, (주)문학동네, 2012, p.64


일요일 저녁의 마음을 잘 표현한 구절이다.



지금 내 삶은 일요일 저녁에 머물러 있는 것 같다.

정말로 커튼을 걷어내고 실천하는 삶 속에 있고 싶다.

자꾸 연습하는 마음으로 사는 거 말고.

해야 하는데, 정말 해야 하는데 하는 마음으로 사는 거 말고.



한동안 소확행이 유행한 적이 있다.

너무 애쓰지 말고 누릴 수 있는 소소한 행복을 만끽하며 사는 것 말이다.

소확행도 행복이다. 그마저도 없으면 너무 슬플 것이다.

그렇지만 나는 대확행을 꿈꾼다.

무언가를 성취해서 뛸 뜻이 기뻤던 그 마음을 잊고 싶지 않다.

와! 하는 감탄이 나올 정도의 성취감을 느끼며 살아가고 싶다.



철없는 생각일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절대로 절대로 냉소의 태도로 살고 싶지 않다.

선배들처럼 타성에 젖고 싶지 않다.



회사에서 하는 사소한 이야기들 말이다.

사실 별로 궁금하지 않다. 내가 이기적인가 보다.

"원래 그런 거야." 하는 선배들처럼 체념하는 말로 살고 싶지 않다.



어떻게든 더 좋아지려고 애쓰고 싶다.

설령 행동으로 쉽게 옮기지 못한다고 한들 끊임없이 뭔가를 찾아내려고 하는 그런 마음을 가지는 것 말이다.



올해가 시작되고 나서는 이런 글을 보았다.


사람은 생각보다 약아서 필요한 만큼만 적당히 노력하고 눈치 살살 봐가면서 운과 가능성에 기대어 산다. 만약 성공하고 인생을 역전할 수 있는 기회가 평생에 내일 딱 한 번밖에 없다고 하면,
우리는 잠이고 밥이고 만사를 제쳐두고 내일 그 한 번의 기회를 위해 오늘 하루를 올인할 것이다.

그런데 어차피 앞으로도 몇십 년은 더 살 테고, 살다 보면 언젠가 볕 들 날 오겠지,
좋은 기회가 생기겠지 하면서 눈에 보이지 않는 가능성에 기대서
적당히 열심히 그리고 적당히 대충 살게 되는 것이다.

권유진, 「청춘, 쉽게 살면 재미없어」, RAONBOOK, 2020, p.190



누군가 내게 나직이 말하는 것 같았다.

"솔직해지자. 네가 원하는 것은 어쩌면 그냥 남을 탓하고 마치 인생 전체를 바친 희생자의 좌석에 앉아
누군가 네게 구호품 같은 행운 꾸러미를 던져주는 것이 아니었을까?
그것의 속물적인 현현인 로또 같은 것도 있지."

공지영,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즈덤하우스, 2020, p.47



나도 가만히 앉아있으면서 어떤 기회와 행운 꾸러미가 나에게 다가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지 않았던가.

분명 미래의 모습은 지금과는 다를 것이라고 위안하며 말이다.

시간이 해결해주겠지 위로하며 말이다.



이제는 그만 커튼을 걷어낼 이다. 그리고서는 비가 오든 구름이 껴있든 그냥 맞이하는 거다.

쏟아지는 햇살을 만끽하려면 어쨌든 커튼을 걷어내야 한다.



핑계 댈 거리는 수두룩하다.

오늘은 마음이 영 아니야.

조금만 더 제대로 고민하고 시작하면 안 될까?


그런 마음이라면 언제까지고 시작할 수 없을 것만 같다.

더 이상 "내가 제대로 시작하기만 하면..."이라는 마음으로 둘러댈 수 없다.

끊임없는 비교에 열등감에 사로잡힌다면 미안한데, 나의 계획들을 실천하느라 바쁘다고 그렇게 말하고 나아가는 거다.


커튼으로 손을 살짝 뻗기만 하면 된다.

그리고 그 창문을 정면으로 마주 볼 수 있는 용기가 생기길.



일요일 저녁은 참 어렵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