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술찌질이, 알콜쓰레기다. 간의 알콜 해독 능력이 요즘 으르신들이 걱정하는 Z세대들의 문해력보다 두드러지게 떨어지는 편이다.
그럼에도 아주 가끔 혼술은 한다. 얼굴이 붉어지고 평상시보다 조금 느슨해질지언정 웬만해선 취하지 않기 때문이다. 좌뇌가 간을 이기는 타입이랄까. (멋모르고 마시던 대학시절, 섭취한 음식물이 역류할 때도 당시 현장 분위기를 스캔했고 그 기억은 지금도 생생하다. SSD는 아니고 HDD정도의 기능.)
이렇듯 자기 신뢰도가 있기에 귀갓길 44km를 앞두고도 혼술을 하는 것이 그리 우려될 일은 아니다. 야근 후, 가을비 추적추적 내리는 밤. 으슬으슬해진 날씨에 출출함이 더해져 위장에 뜨끈한 것을 채워넣지 않고는 도저히 귀가할 힘이 생기질 않을 것 같아 주변 밥집을 마구 찾아댔다. 그러던 중 눈에 들어온 #스지만사성
다른 혼밥 가능한 식당들은 빨리 닫거나 순댓국밥을 파는 곳 뿐이고, 혼술할 수 있는 곳은 생각한 예산에 비해 많은 돈을 지출해야 했다. 스지만사성은 국수와 고량주 칵테일을 합쳐도 12,000원대의 가격, 밤 10시 마감으로 끼니를 놓친 혼밥러도 부담없이 갈 수 있는 곳이었다.
야근 후 성수동 인근에서 갈 수 있는 곳이라곤 편의점 말곤 없었는데 간만에 좋은 곳을 알게 됐다. 생긴지 얼마 안됐다고 하는군.
일반 토마토스튜보다는 조금 더 짠맛이 강하지만 밥 한 공기가 별도로 제공돼 어느 정도 중화가 되고, 무엇보다 고량주 칵테일과 참 잘 어울린다. 스지는 아닌 소 살코기가 먹기 좋은 크기로 세 덩이 정도 들어있다. 부드럽고 고소했다.
지난한 장거리 통근자에게 소소한 기쁨은 이런 것 같다. 어중간한 밤에 혼밥할 수 있는 곳을 찾고 그곳에서 괜찮은 식사를 하는 것. 거기에 피로를 가시게 해 줄 적당한 알콜을 곁들이는 것.
대중교통계 최고 난이도라는 경중선과 1호선을 이용하면서도 잘 버텨낼 수 있는 것도 오늘의 든든한 식사가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