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조해숲 Dec 05. 2021

이야기 하나. 그리고 학전

두 번째 사연.

수디. 안녕하세요.

날이 어느새 추워지더니, 벌써 12월이네요. 춥습니다. 매년 이렇게 추운 겨울이면, 봄은 올까? 생각이 들어요. 종종 안 올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고요.

또 오늘 하루가 지나갑니다. 멀어져 갑니다.


서른이 되었을 때 생각납니다. 나이에 니은이 붙는 날이요. 전 세상이 확! 변하는 줄 알았어요. 저도 뭔가 크게 변할 줄 알았어요. 기대보다는 무서웠고, 두려웠습니다.

후배들이 놀리면서 김광석의 <서른 즈음에>를 부르며 점점 멀어져 갔습니다.


그런데...

전 스물아홉과 서른이 크게 달라졌다는 느낌은 없었어요. 그냥 그렇구나. 별 차이 없구나. 정말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구나. 그렇게 생각했지요.


그런데 서른한 살이 된 그해 1월. 많이 힘들었습니다.

김광석의 <서른 즈음에> 노래가 온몸 곳곳에 들어왔고, 가만히 있으면 눈물이 났어요.


그때 만났던, 김광석 인생 이야기 앨범의 <이야기 하나>.


이야기 속 후배가 되어 한숨을 쉬며 끄덕거리다가,

그렇게 이야기하는 김광석 앞에서
아니라고! 난. 일정 부분 포기하고! 일정 부분 인정하고... 그렇게 살지 않을 거라고. 20대처럼 계속 일을 벌이고, 깨지고, 상처 입고, 아파하며 살 거라고.
술 취한 듯. 소리도 질렀습니다.


정말. 많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계속 그가 틀렸다는 것을 보여주겠다고... 말했지요. 다짐했습니다.

그런데 알아요. 그렇게 제가 이 노래를 들은 건...
그때 많이 아팠고, 그래서 포기하고, 그 사실을 인정하고 싶었다는 걸요. 아하며 살고 싶지 않기 때문이라는 걸요.
다만... 스스로 아프지 않다고 믿고 싶었다는 걸요.

술에 취했으면서, 취하지 않았다고 이야기하는 것처럼.
그것이 마치 지는 것이라고 생각했던 거죠.


그 이후로 벌써 십 년이 지났습니다. 여전히 이 노래, 이 이야기를 듣습니다.

더 이상 그가 틀렸다고 말하지 않아요.


다만 종종 생각합니다. 그가 느낀 마흔은 어떨까? 그가 마흔 즈음에 후배에게 어떤 이야기를 할까? 학전 소극장을 찾은 관객에게 어떤 이야기를 할까?  


상상하면... 아마... 도...

"정신없으시죠? 힘드시죠? 여유가 없다고요? 이곳도 겨우 왔다고요? 아이고...
혹시 10년 전에 제가 말한 '재밋거리'는 좀 찾았어요? 아... 찾지 못했다고요. 사실 저도 그래요.
이제... 용기 내고, 내려 으려고요. 내려놓으면 재밋거리가 스스로 오지 않을까 싶어요. 어때요?

뭐 그런 내용들을 새로운 앨범에 담았습니다.

주변에서 이렇게 듣으시더니 괜찮대요.

여유 있으시면... 아! 없다고요?(웃음)

감사합니다."


수디는 어떤가요?

김광석 인생 이야기 앨범의 <이야기 하나>. 함께 듣고 싶습니다.


봄은 오겠죠?


많이 그립습니다. 도. 봄도. 그때도.


아! 장소. 장소는

대학로 학전 소극장이죠. 당연히.


https://youtu.be/0HMTS4jcLu4 



김광석,  1995.8.27, <이야기 하나> 인생 이야기(1996) 수록


반갑습니다. 안녕하시지요?

네. 어, 처음 보내드린 곡이 서른 즈음에 라고 하는 노래였습니다. 공감하시는지요. (웃음)

음, 누구나 스스로의 나이에 대한 무게는 스스로 감당해 내면서 지냅니다.

10대 때에는 거울처럼 지내지요. 자꾸 비추어 보고 흉내 내고. 선생님, 부모님, 또 친구들.


그러다 20대 때쯤 되면 뭔가 스스로를 찾기 위해서 좌충우돌 부대끼면서 그러고 지냅니다.

가능성도 있고, 나름대로 주관적이든, 일반적이든, 뭐 객관적이든 나름대로 기대도 있고 그렇게들 지내지요.

자신감은 있어서 일은 막 벌리는데 마무리를 못해서 다치기도 하고 아픔도 간직하게 되고 그럽니다.

그래도 자존심은 있어서 유리처럼 지내지요. 자극이 오면 튕겨내 버리던가 스스로 깨어지던가...

그러면서 그 아픔 같은 것들이 자꾸 생겨나고 또 비슷한 일들이 일어나면 더 아프기 싫어서 조금씩 비켜나가죠. 피해 가고... 일정 부분 포기하고 일정 부분 인정하고...

그러면서 지내다 보면 나이에 ㄴ자 붙습니다.


서른이지요.

뭐 그때쯤 되면 스스로의 한계도 인정해야 되고 주변에 일어나는 일들도 뭐 그렇게 재미있거나 신기하거나 그렇지도 못합니다.


얼마 전에 후배 하나를 만났는데 올해가 서른이에요.

"형!"

"왜?"

"답답해."

"뭐가?"

"재미없어."

"아 글쎄 뭐가?"

"답답해."

"너만 할 때 다 그래."

근데 그 키가 180이에요.

"형이 언제 나만해 봤어?"(웃음)

"그래 나 64다." (웃음)

"숏다리에 휜다리다, 왜"


뭐 그런 답답함이나 재미없음이나 그런 것들이 그즈음에, 그 나이 즈음에 저뿐만이 아니라

또 그 후배뿐만이 아니라 다들 친구들도 그렇고 비슷한 느낌들을 가지고 있더군요.

해서, 계속 그렇게 답답해하면서 재미없어하면서 지낼 것인가.

좀 재밋거리 찾고 이루어 내고 열심히 살아보자.

뭐 그런 내용들을 지난 7월에 발표한 4집 앨범에 담았습니다.

주변에서 이렇게 듣으시더니 괜찮대요.

여유 있으시면...(웃음)

감사합니다.



지도로 만나는 지리는 라디오
https://www.google.com/maps/d/edit?mid=1A-GS3fN2EZBTXtmSK79OmGMDnxVl9lDu&usp=sharing


작가의 이전글 나에게 쓰는 편지. 그리고 길음동 구석방.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