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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해숲 Dec 06. 2021

이런 내가 되어야 한다. 그리고 문리대 동관 로비

세 번째 사연.

수디. 안녕하세요. 

얼마 전, 기분 좋은 저녁식사자리가 있었습니다. 

제가 몸담고 있는 지역에서, 제가 밥 벌어먹고 살고 있는 지리교육을 위해서 열심히 일하고 계신 선생님과 함께 였어요.

열심히 고민하고, 질문하고, 공부하고, 사람들에게 함께 이야기하자고 말하는 선생님입니다. 

그분을 보며, 멀리서 끄덕끄덕거리고, 속으로 멋있다 말하고, 마음으로 응원하고 있었는데...

문득. 대학생일 때가 생각났습니다. 

가만히 있으면 안 되겠다 생각했아요. 그리고 용기 내 먼저 연락을 드렸습니다.

이름만 들었지, 얼굴도, 나이도, 심지어 남자인지 여자인지도 하나도 모르면서요. 엄청 부끄러웠어요.


대학생 때. 문리대 동관 로비였습니다.  

어떤 일로 그 로비에서 구호를 외쳤는지, 지나가는 학생들에게 어떤 글이 적힌 유인물을 나눴는지 기억나지는 않습니다. 추웠고, 외로웠고, 조금은 화도 났던 기억뿐이에요. 


시간이 지나, 수업 때문에 그곳을 지나던 종운이가 말없이 생수 한 병을 건네주었습니다. 

응? 하며 고개를 돌려 종운이를 쳐다봤어요. 종운이는 씨익 웃을 뿐이었습니다. 


그때 느꼈던, 따뜻함. 웃음. 위로. 용기. 힘. 울컥거리던 마음. 

시끄러운 구호 소리는 사라지고, 순간 멈춰버린 그 장면도...

잊을 수 없습니다. 

그 생수는 가방에 꽤 오랫동안 넣고 다녔습니다. 

시원했던 생수였는데, 따뜻해졌습니다. 


그 샘에게 따뜻한 생수 한 병 드리고, 고맙다고 말씀드리고 싶었어요. 

그 선생님께서 외롭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생각난 노래는 대학 때 많이 듣고, 불렀던 노래. 소리타래의 <이런 내가 되어야 한다>입니다. 

"힘들 땐 힘들다고 얘기하고, 안아달라 솔직하게 내보이고..." 이 가사 하나에 용기 얻어서 힘들다고, 안아달라고 이야기한 수많은 시간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세상과 사람에 지친 벗들, 작지만 소주 한 잔 건네주고..." 이 가사대로는 살지 못했네요. 

부끄럽습니다. 

남은 삶. 그런 내가 되겠습니다. 


https://youtu.be/bT26ezgUShA



소리타래 <이런 내가 되어야 한다>, 1998


힘들 땐 힘들다고 얘기하고, 안아달라 솔직하게 내보이고

더디 가도 사람 생각하는 마음 가슴속에 꼭 담고


세상과 사람에 지친 벗들, 작지만 소주 한 잔 건네주고

아무리 사는 게 바빠도 노래 한 자락 하는 거야


이런 내가 되어야 한다. 쉽지만은 않겠지만

어두운 세상 작은 빛으로 이 세상 살기 위하여

한 번 두 번 아니 여러 번 좌절하게 되더라도

삐걱 데는 세상. 작은 나사로 이 세상 살기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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