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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해숲 Dec 18. 2021

학교에서 배운 것. 그리고 고등학교

다섯 번째 사연.

수디. 안녕하세요.

제가 일하는 고등학교의 시험이 끝났습니다. 코로나로 시험이 잘 진행될 수 있을까? 걱정했는데... 너무나도 다행히 잘 진행되었습니다.


시험 감독을 섰어요. 때로는 교실 안에서, 때로는 복도를 돌아다니며 자습 감독을 했습니다. 저희 학교는 시험을 연달아 보지 않고, 시험과 시험 사이에 자습시간이 종종 있거든요.


언젠가부터. 시험 감독을 서면서

아이들이 부정행위를 하나 안 하나를 매의 눈으로 바라보기보다는...

시험 치는 학생 친구들 한 명씩 한 명씩 눈길을 주며, 응원하게 되더라고요. 잘 봐라. 잘 봐라... 포기하지는 말자... 속으로 중얼거리면서요.

그냥. 제가 그렇게 하니. 마음이 편해요. 아이들을 의심의 눈으로 바라보지 않으니까요. 잘 모르겠지만, 누군가가 응원하고 있다는 걸 안다면... 그 친구도 좀 더 힘낼 거 같으니까요.


아무튼.

늘 시험감독 서는 것이 한 해 한 해 힘듭니다.

진지하게 시험을 치는 친구들이 점점 줄어들고 있어요. 시험은 그저 일찍 끝나는 날이라고 여기는 친구들도 많고요. OMR카드를 받자마자 시험 시작 종이 치기도 전에 1자로 찍고, 자는 아이들도 점점 많아지는 것 같고... 그래도 예의상? 시험지를 한번 정도는 쓰윽 보고 찍고 자는 친구들도 많아지고 있거든요.

또한... 시험이 주는... (사실 내신 등급이 주는, 대학입시가 주는...) 긴장감에 예민해지는 친구들도 많아집니다. 학교폭력이죠.


시험이 뭐길래. 이렇게 아이들을 힘들게, 고통스럽게 하나. 과연 이게 맞나... 나는 왜 여기에 있나. 이게 옳은가. 이런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뭅니다. 그리고 한없이 우울해져요. 힘듭니다.


노래가 하나 생각났습니다. 사실. 시이죠.

시인이자 영화감독인 유하의 <학교에서 배운 것>입니다.

인생의 일할을
나는 학교에서 배웠지
아마 그랬을 거야
매 맞고 침묵하는 법과
시기와 질투를 키우는 법
그리고 타인과 나를 끊임없이 비교하는 법과
경멸하는 자를
짐짓 존경하는 법
그중에서도 내가 살아가는 데
가장 도움을 준 것은
그런 많은 법들 앞에 내 상상력을
최대한 굴복시키는 법

유하 시 '학교에서 배운 것"


그리고 그가 만든 <말죽거리 잔혹사>에 김진표가 노래로 만들었지요.

이 노래를 함께 듣고 싶습니다.


오늘. 아니... 당분간은 그럼에도 학교에서 무엇을 이야기하는 것이 맞나. 나는 무엇을 해야 하나 고민해보려고요.




김진표(JP), <학교에서 배운 것(말죽거리 잔혹사 OST)>, 2004


인생의 일할을 나는 학교에서 배웠지

세월이 흘러 모든 것들이 변해가도

내 마음속 깊은 곳에 지워지지 않는 추억들

한참을 뛰어가다 돌아볼 때 어김없이

내 머릿속을 뒤집어 놓는 아픔 속의 기억들

내게 상처가 된 당신의 거짓말

이유도 모른 채 맞아야 했던 지난날

그럼에도 존경받기를 원하셨던 그 모습에

내가 배운 것은 보잘것도 없는 일할


매 맞고 침묵하는 법과 타인과 날 끊임없이 비교해대는 법

시기와 질툴 키우는 법과 경멸하는 자를 짐짓 존경하는 법까지


나의 추억을 되돌려 놔 줘 uh

산산이 부서져 버린 꿈들과 yo

닫혀진 내 입과 억눌린 감정과 네게 짓밟혀 숨어버린 웃음까지 모두 다

내 외침이라도 들어줘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이것뿐인걸 uh

억눌렸던 모든 것들을 토해 저 위 하늘 향해 끝까지 난 외쳐 볼 거야 uh


부푼 꿈 가슴 안고 첫발을 내딛을 때

누구나가 그렇듯이 설렘에 가득 찼지

온 가족 함께 나와 모두 내 주윌 감싸

넌 잘할 수 있을 거라 내 어깨를 살짝 두드렸지

하지만 첫날부터 악몽은 바로 시작됐지

하늘 날던 꿈들은 땅속 끝으로 곧바로 추락했지


약자의 비굴함과 강자의 오만방자

아직 어린 난 그곳에서 악랄한 사회를 경험했지

내 인생의 책 속 찢지 못한 페이지

내 맘 깊은 곳 잊지 못할 그때지

담장 밖이 내게 준건 내 전부의 구활

담장 안 내가 받은 것은 남은 일할

수많은 악칙과 악법 연필보단 주먹

동료가 되기 전에는 적

그중에서 내가 살아가는데 도움된 건

내가 가진 상상력을

이 많은 법들 앞에 굴복시키는 것


나의 추억을 되돌려 놔 줘 uh

산산이 부서져 버린 꿈들과 yo

닫혀진 내 입과 억눌린 감정과 네게 짓밟혀 숨어 버린 웃음까지 모두 다

내 외침이라도 들어줘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이것뿐인걸 uh

억눌렀던 모든 것들을 토해 저 위 하늘 향해 끝까지 난 외쳐 볼 거야 uh


인생의 일할을 나는 학교에서 배웠지

아마 그랬을 거야

매 맞고 침묵하는 법과 시기와 질투를 키우는 법

그리고 타인과 나를 끊임없이 비교하는 법과 경멸하는 자를 짐짓 존경하는 법

그중에서 내가 살아가는 데

가장 도움을 준 것은

그런 많은 법들 앞에 내 상상력을

최대한 굴복시키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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