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번째 사연.
수디. 안녕하세요.
언젠가 출근길 라디오에서, 이 노래를 만났습니다. 깜짝 놀랐어요.
"너무 좋다!"
그래서 출근길 중간에 차를 세워 놓고, 이 가수를 검색했습니다. 누굴까? 궁금해서 미칠 것 같았거든요.
바로. 정밀아의 <서울역에서 출발>입니다.
한 10년 만에 제 돈으로 음반도 샀습니다. 정밀아 3집 <청파 소나타>.
그녀는 서울역 뒤편, 청파동에서 터를 잡았다고 했어요. 그리고 이런저런 이유로 동네를 거닐었다고 했습니다. 사진을 찍고, 소리를 채집했어요. 아마 글도 쓰고 그림도 그렸을 거예요.
그렇게 자세히, 오래 동네를 바라보다. 말하고 싶어, 노래를 만들었습니다.
지리를 공부하고, 그것으로 밥을 먹고 있어요. 노래도 좋지만, 제게 매력적이었던 이유는 바로. 자신의 동네를 노래로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사실 이 노래 때문에 음악, 노래와 관련된 장소를 수집해봐야겠다 생각도 했지요. 제가 가르치는 아이들도 정밀아와 같았으면 좋겠어요. 제가 가르치는 지리 또한 이렇게 자신의 삶터를 오래 보고 자세히 보고 말하고 싶어 표현하는 것이 목표였으면 좋겠습니다.
서울살이의 시작은 서울역.
기차에 내려서 눈을 감고 깊이 숨을 들이마시며, 서울의 냄새와 맛을 느낍니다. 그리고 다짐을 하고, 기도를 하지요. 그렇게 우리는 힘겨운 서울살이를 시작합니다.
그리고 이곳에 치이고, 저곳에 치이며, 웃고 울어요. 어느새 서울역에서 출발한 그 시작을 잊지요.
전. 이 노래를 들으며, 그 시작을 생각해요. 그 다짐과 기도.
그래서 힘이 나요. 눈물도 나고. 따뜻해지지고 해요.
그리고 다시 출발합니다. 툭툭 털며.
함께 듣고 싶어요. 수디.
덧) 저도 노래는 못 만들지만, 사진은 동네를 거닐며 찍어야 겠어요.
정밀아. <서울역에서 출발> (2020)
아침 일찍 걸려오는 전화 소리에 걱정 가득 질문도 가득
어디 멀리 노래하러 갔었다더니, 그래 집에는 언제 온 거니?
글쎄 밤 열두 시 넘었는데 잘 모르겠네. 아주 늦은 밤은 아니었어요.
가게들은 문을 닫고 텅 빈 역 안엔 대낮같이 불만 켜져 있었어.
택시를 기다리는 사람 많아 이 추운 날에 고생할 뻔했는데
이제 이사하고 난 뒤로는 염려 없어요. 집에까지 금세 걸어왔어요.
근데 엄마 혹시 그날이 생각나세요? 내가 혼자 대학 시험 보러 온 날
옛날 사람 봇짐 메고 한양 가듯이 나도 그런 모양이었잖아요.
그날 밤 내가 걸어 나온 서울역 건물은 이제 근사하게 변했는데요
영화에나 나올듯한 그런 모습에 볼 때마다 사진에 담게 됩니다.
엄마 나는 대학 가면 그림 그려서 멋진 화가가 될 줄 알았지.
허나 딴짓을 아주 열심히 하였더만은 이젠 노래하며 잘 살아갑니다.
엄마 요즘 고향 가는 기차는 말야 아주 좋아 빠르고 세련됐어요.
서울역에서 출발하고 두 시간 남짓이면 우리 살던 동네에 도착하잖아.
내가 고등학교 내내 친하던 그 친구 있지. 걔도 지금 서울 살아요.
지하철 4호선 타고 서울역에서 출발하면은 한 시간이면 주희네 집이야.
서울역에서 출발한 내 스무 살은 한 백 번은 변한 것 같아.
그게 뭐 어떻다는 것은 아니고 그냥 그랬구나 하는 거예요.
봄 가고 아주 여름 오기 전 언제 바다에 가보려고 해.
서울역에서 출발하는 기차를 타고 푸른 바다에 가보려고 해.
서울역에서 출발하는 기차를 타고 푸른 바다에 가보려고 해.
푸른 바다에 가보려고 해.
서울역에서 출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