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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erard Apr 03. 2016

2015년 4월 15일 나는 광화문광장에 있었다

사람들이 모여 있는 횡단보도 건너편, 시선을 가져다 놓는 것만으로도 왈칵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았다.  


‘2015년 4월 15일 나는 광화문광장에 있었다 ‘  


 슬프다는 표현만으로는 나타낼 수 있는 감정들이 아니었다. 머릿속에 조각된 듯 희미해지지도 않은 그 기억들은 틈만 나면 나를 울게 했다. 그날 전까지는 가두어 놓았던 감정들이 역류할까 차마 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날은 운(?)이 좋았던 것인지, 아니면 가야만 할 운명이었던 것인지 광화문 근처에 볼 일이 생겼다. 일을 마치고 나니 사무실로 들어가기 애매한 시간이 되었다. 사실 미팅을 할 때까지만 해도 내가 광화문에 있다는 자각을 못했으니 광장에 갈 생각은 더더욱 하지 못했으리라. 그런데 무엇에 홀린 듯 나는 발걸음을 옮겼고, 따듯했던 별들을 가슴속에 묻을 수밖에 없었던 그분들을 만나게 되었다.   


 가지런히 반별로 정렬하여 해맑게 웃고 있는 아이들의 사진. 한쪽 천막에 모여 노란 리본을 만들고 있는 봉사자들. 눈시울을 붉히며 서명운동을 벌이는 가족들. 그리고 종북 빨갱이, 사탄들은 물러가라며 소리치던 아주머니까지... 그 군중 속 한 외국인과 말이 안 통해 당황해하는  봉사자가 눈에 들어왔다.    


“죄송한데, 혹시 영어 할 수 있으세요?”

“네? 뭐… 네. 조금은…”

“이분이 유가족들 인터뷰하고 싶으시다는 데 좀 도와줄 수 있으세요?”    


 다행이었다. 때마침 나는 그날 광화문에 있었고, 영어를 한국말로, 한국말을 영어로 통역할 수 있었다. 단지 취업을 위해 또는 생계를 위해, 오롯이 나 자신을 위해 습득했던 능력을 가지고 미미하지만 이 사건의 문제점을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릴 수 있다는 것에 감사했다.    


 프레드릭은 프랑스 라디오 국제방송국 (RFI) 한국지사 기자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다음날 아침 세월호 1주기 특집으로 유가족 인터뷰 내용을 담고 싶다고 말하는 그의 행동에는 조심스러움으로 가득했다. 혹시나 자신이 누군가에게 또 다른 상처를 주진 않을까 걱정하는 것 같았다. 나 역시 조심스럽기는 마찬가지였다. 내가 아무리 감정적으로 이해하고 공감한다지만 자식 잃은 부모의 찢어지는 마음을 어찌 알겠나...    


 조심스럽게 인터뷰 의사를 여쭈었고, 유가족 중 한 분이 흔쾌히 인터뷰에 응했다. 눈물을 꾹꾹 눌러 담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고받던 중 갑자기 참았던 눈물이 터져 나왔다.     


“우리는 아직도 그날 팽목항에 살고 있어요”    


 인터뷰 중 담담하게 툭 던진 한 마디가 유가족 모두의 마음을 대변하는 것 같았다. 가슴이 아팠고 또 화가 났다. 자식 잃은 것도 서러울 텐데 왜 일 년이라는 시간을 차디찬 길바닥에서 보내야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어쩌면 차가운 건 길바닥이 아니라 사람들의 마음이었는지도 모른다. 일 년이라는 시간 동안 유가족들이 육체적인 고통보다 참기 힘들었던 것은 나몰라라 하는 정부는 무책임함과 ‘자식 시체 팔아 장사한다’ ‘안산 쓰레기 동네에서 어차피 쓰레기 될 거 잘 죽었다’와 같은 사람들의 날 선 말들이 아니었을까? 얼마 전 세월호 2차 청문회 영상을 보았다. 유가족의 한 어머니가 연단에 올라 연설을 했다. 몇 시 몇 분에는 어떤 일이, 몇 시 몇 분에는 어떤 일이 쳐다보는 자료 없이 눈물과 함께 읊고 있었다.    


 그분들에게 세월호 사건은 그런 것이다. 수백 번 수천 번을 되뇌다 보니 그냥 머릿속에 인이 박혀 지워지지 않는 어둡고 캄캄한 기억. 못 해준 것만 생각나서 시도 때도 없이 눈물이 흐르는 일상. 한 번만 딱 한 번만 볼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소망. 그분들이 사랑했던 아이들은 시간이 지나면 언젠가는 잊혀 버리는 연애와 같은 그런 사랑이 아니다. 그분들은 시간이 더 흐른다 해도 그날 팽목항에 살고 있을 것이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그리 많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유가족들의 아픔에 공감하고 별이 되어버린 아이들을 기억한다면 그분 들에게 조금이나마 힘이 될지도 모르겠다.




다음날 프레드릭에게 감사의 메일을 한 통 받았고, 4월 16일이라는 날짜가 날 또 눈물짓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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