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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erard May 11. 2016

휴... 나란 인간

 주말이지만 비교적 한가한 지하철 안. 한 시각장애인 아주머니께서  장애인증 복사본을 나눠주시며 금전적 도움을 요청하고 있었다. 장애 급수와 함께 아주머니의 사연이 흰 종이 위를 채우고 있었다. 딸과 함께 살고 있는데 눈이 불편하여 도움이 필요하다는 내용.


 참... 나도 인성이 글러먹은 것이, 종이를 받자마자 짜증부터 났다. 첫 번째 이유는 나에게 괜한 죄의식을 갖게 만드는 것이었다. 왜 이런 마음의 짐을 나한테도 전가해서 금전적으로 도움을 주지 않으면 뭔가 잘못한 거 같은 기분이 들어야 하는지 짜증이 났다.


 두 번째 이유는 우리나라에 대한 짜증이었다. 어려운 사람들에 대한 배려는 눈곱만큼도 찾아볼 수 없는, 최소한의 사회적 안전망도 없는 나라. 보호는커녕 구걸을 해야만 하게 만드는 이 나라에 화가 났다.


 혼자 구시렁 거리며 종이를 접어 가방에 넣으려는데 아주머니께서 다시 종이를 수거하시는 게 아닌가. 더듬더듬 종이를 수거하시는 아주머니의 뒷모습을 보는데 왈칵 눈물이 날 것 같았다. 나쁘다는 말로는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나빴고, 죄송했고,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유튜브 어딘가 지하철 패륜남이라는 제목과 함께 내 얼굴이 전 세계에 공개된 것 같은 창피함이 들기도 했다.


 죄송한 마음과 함께 만원 짜리 지폐 한 장을 드릴까 생각하던 찰나 아주머니께서 종이를 가져가셨다. 다시 따라가서 지폐를 주는 것도 민망한 상황이 되어버렸다. (나한테 이런 것은 타이밍을 놓쳐버리면 실행하기 어려운 일 중에 하나다)


 지나가는 아주머니의 뒷모습을 바라보는데 앞에 앉은 한 수녀님이 동전지갑에서 동전 몇 개를 주섬주섬 꺼내더니 아주머니께 드렸다. 순간 망치로 머리를 얻어맞은 것 같았다. 별 고민 없이 소소하게나마 도움을 건네는 수녀님의 손길에는 한치의 망설임이나, 짜증은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일반화의 오류일 수도 있지만 아마 수녀님은 누군가가 도움을 요청하면 매번 작게나마 도움을 주시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날 지하철에 앉아있던 나란 인간은 타인에 대한 배려라고는 1도 없는 인간이었다. 다른 사람의 아픔에 최대한 공감하며 살아가자는 게 내 인생의 모토였는데, 그게 무너져 버리는 것 같았다. 그 죄로 죄책감에 시달리며 그날 하루를 보내야만 했다. 사실 만원이야 로또 한 번 안 사면 그만인 돈인 것을.


 조금 더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살자고 다짐했다. 큰 도움이 아니더라도, 그 마음이라도 갖자고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그날 저녁은 (가혹하게도) 다른 칸으로 천천히 걸음을 옮기는 아주머니의 뒷모습과 수녀님의 모습이 자꾸만 떠올라 이리저리 뒤척이다 잠을 이룰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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