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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erard Jun 21. 2016

'감성'이라는 마음의 비는...

동주를 보았다.


 처음 '별 헤는 밤’이라는 시를 보았을 때가 생각났다. 글을 읽기 싫어 만화책조차 보지 않던 나에게 글이, 시가 얼마나 멋스러운지 알려주었던. 어떤 생각과 고민을 했기에 날이 밝는 것을 아쉬워하며, 헤아릴 수 없는 수많은 별들을 헤아렸을까 궁금했다. 그리고 신기했다. 마음속의 묵직한 덩어리를 한 문장으로 표현할 수 있다는 사실이.


 안도현 시인의‘스며드는 것’이라는 시는 간장게장을 먹어보지 않은 사람은 쓸 수 없는 시다. 꽃게가 간장에 담겨 있는 모습을 관찰하지 않았다면, 짜디짠 냄새를 맡아보지 않았다면 쓸 수 없는 그런 시. 시라는 건 그런 거다. 한 단어에 모든 의미를 함축하기도, 한 단어를 한 페이지로 풀어쓸 수도 있다. 그 말은 어떤 사물을, 누군가를 그리고 나 자신을 시간을 내어 바라보아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동화 ‘모모’ 속에서 시간을 도둑맞은 마을 사람들처럼 무채색의 바쁜 세상을 살아내는 이들 중 시를 읽는 사람은 많지 않다. 시를 쓰는 사람은 더더욱 없다. 그 말은 청명한 하늘에 피어오른 구름을, 나와 닮아 정감이 가는 그 사람을, 때로는 밉지만 함께 할 수밖에 없는 나 자신을 바라보지 않는다는 뜻이기도 하다.


 어쩌면 지금은 시를 읽을 수도, 쓸 수도 없는 세상인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내리는 함박눈을 하염없이 바라보는 시간을 늘린다면, 조금은 더 촉촉한 감성을 가진 사람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만일 시인이 사전을 만들었더라면

-류시화-


만일 시인이 사전을 만들었더라면

세상의 말들이 달라졌으리라

봄은 '떠난 자들의 환생'으로 자리 바꿈하고

제비꽃은 '자주색이 의미하는 모든 것'으로

하루는 '영원의 동의어'로


인간은 '가슴에 불을 지닌 존재'로

얼굴은 '그 불을 감추는 가면'으로

새는 '비상을 위해 뼈속까지 비우는 실존'으로

과거는 '창백하게 타들어 간 하루들의 재'로

광부는 '땅 속에 묻힌 볕을 찾는 사람'으로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그 사람 가슴 안의 시를 듣는 것

그 시를 자신의 시처럼 외우는 것

그래서 그가 그 시를 잊었을 때

그에게 그 시를 들려주는 것


만일 시인이 사전을 만들었다면

세상의 단어들이 바뀌었으리라

눈동자는 '별을 잡는 그물'로

상처는 '세월이 지나서 열어보게 되는 선물'로

목련의 잎은 '꽃의 소멸'로

죽음은 '먼 공간을 건너와 내미는 손'으로

오늘 밤의 주제는 사랑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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