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어려서부터 구름을 보거나 내리는 비를 보는 걸 좋아했다. 멍하니 바라보고 있으면, 품고 있던 생각이 정리되거나 새로운 것들이 솟아오르곤 했다. 장마가 시작된 후론 이런저런 생각이 많다. 비가 오는 날은 비만 오는 것이 아니어서 가슴께가 간지럽기도 시큰하기도 하다. 누군가 들으면 뱃속까지 풋내가 난다며 비웃을 그 시절의 나도, 세상 무너질 듯 좌절하던 또 다른 시절의 나도, 실체 없이 막연하게 보고 싶은 어떤 이도 어김없이 함께 오곤 한다.
2. 나는 이런 무용한 것들이 좋다. 잔잔한 연풍에 서로 부대끼며 내는 나뭇잎 소리도, 잔잔한 바다에 몸을 뉘인 산란된 빛들도 그리고 그것들과 함께하는 무용한 생각들도. 내가 말하는 무용이란 건 사전적 의미에 쓸모없음을 이야기하는 건 아니다. 늘 곁에 있지만, 관심을 쏟지 않으면 보이지 않는 것. 발견하게 되면 더 마음을 쏟게 되고, 아껴주게 되는 것. 왠지 모를 안쓰러움에 다독여주고 싶은 것. 나에게 무용이란 그런 것이다.
3. 엊저녁 산책길에 너와 함께 무용한 것들을 바라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지는 까치놀을 바라보거나. 별빛 아래서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주고받고. 손을 잡고 가보지 않은 동네 골목 곳곳을 거닐고. 무용한 것들을 함께하고 싶다는 것은 내가 가진 사랑의 최상위 표현이 아닐까 싶다.
오늘은 일찍 눈이 떠졌다. 반쯤 감긴 눈으로 쪽창을 바라보니 안팎을 가득 메운 시커먼 공기 위에 비 냄새가 포개져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