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 그 여름의 색<콜 미 바이 유어 네임>

여름 이야기

by 아미달라

입추가 벌써 지났건만 더위는 아직 물러설 기세가 없는 모양이다. 어릴 적 부산의 해수욕장은 8월 15일을 기점으로 폐장을 했더랬다.(십 수년 전부터 해수욕장의 폐장은 8월 31일 변경됐다) 그 기억 때문인지 더위와 상관없이 광복절을 끝으로 늘 찬란한 여름은 내리막을 향하고 있는 기분이 든다. 해수욕 시즌이 끝난 바다처럼.


일상에서 사계절을 보내며 예술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보자는 생각으로 <봄 이야기>를 시작으로 연재를 시작했지만 <여름 이야기>를 제대로 진행하지 못하고 있다. 글을 쓰고 싶은 마음이 통 올라오지 않아서였는데 지키지 못한 약속, 미뤄둔 여름 방학 숙제처럼 마음 한편이 무거웠기에 귀밑머리를 스치는 가을을 담은 바람을 느끼기 전 마음속 간직한 여름의 이야기들을 풀어보아야겠단 생각에 마음이 급해진 8월의 아침이다.


여름을 떠올릴 때 그려지던 이야기들. 영화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 <브로크백 마운틴>,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 소설 < 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 차이콥스키와 러시아의 보랏빛 무드 여름 그리고 말러 교향곡 5번의 아다지에토… 마음속에 담아두었던 이야기들을 하나씩 펼치며 길고 길었던 여름과 헤어질 결심을 해본다.



루카 구아다니노 감독의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은 ‘청춘’ 그 여름의 색을 온전히 보여주는 영화다. 1980년대 북부 이탈리아의 어느 곳. 쨍하게 빛나는 파른 하늘과 싱그러운 초록, 반짝이는 물, 햇살 내리쬐는 여름 정원에서의 만찬과 적재적소에 흐르던 아름다운 음악들, 땀에 젖은 아름다운 몸과 여름의 활기.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은 첫사랑의 설렘과 함께 완벽한 여름의 이미지로 각인되어 있다.


고고학자인 아버지를 따라 매년 여름 별장에 머무르던 엘리오는 아버지의 조교로 온 특별한 여름 손님 올리버를 맞이한다. 아름답지만 단조로운 엘리오의 여름에 등장한 올리버는 작은 불협화음 같은 느낌으로 다가온다. 자꾸만 신경 쓰이고 눈길이 가는.


처음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이 매력적으로 다가왔던 이유는 음악이었다. 영화의 분위기나 주인공의 감정을 직관적으로 보여주는 음악의 여운 때문에 다시 영화를 보고 싶었고 다시 보고 난 후 첫 관람 시 완전히 몰입하지 못했던 두 주인공의 사랑의 서사에 푹 빠져버렸다. 퀴어 영화라는 시각을 벗어나 이것은 사랑에 관한 이야기라는 것에 꽂혀버렸다. 두 청춘이 마주한 사랑에 마음이 아련하게 설레며 수티얀 스티븐스의 ‘vision of Gideon’가 흐르던 마지막 엔딩 크레디트에서는 급기야 티모시 살레메의 눈빛 연기에 그에게 입덕하게 되었다는. 배우들의 연기도 좋았지만 영화 내내 흐르던 음악들이 아니었다면 감정적으로 이렇게 깊이 영화에 빠져들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영화 초반부 경쾌하게 흐르는 류이치 사카모토의 M.A.Y. In the Backyard’도 인상적이었고, 추억을 불러오는 팝송 f.R David ‘words’는 그 이후에도 즐겨 듣고 있는 곡이다. 또 ‘Futile Devices’는 사랑에 빠진 청춘의 열병과 기다림이 영상과 어우러져 그대로 전달되는 곡이라 마음에 든다.


https://youtu.be/-X8pMHtcqvc?si=wIeQzldWZ9FvU0pW



“말하는 게 나을까? 침묵 속에 죽는 것이 나을까?”


라벨의 ‘거울 3. 바다 위의 작은 배’는 올리버에 대한 자신의 마음을 깨닫고 차마 바라보며 말할 수 없어 멀찍이 서서 올리버에게 내뱉는 엘리오의 외롭고 불안한 감정을 아름답게 대변해 준다.


https://youtu.be/SPTvBMZ_Cso?si=VbOJ2ZVbRDEosA6S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통해 만나 인생곡. 바흐 칸타타 ‘눈뜨라고 부르는 소리 있어.’는 말할 나위 없이 좋다. 이 노래를 들을 때마다 몇 년째 마음의 평화를 누리고 있으니.

https://youtu.be/qAgUqQJt_IU?si=6VUWDLzgBe9LuUwE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OST의 백미는 역시 ‘Mystery of Love’이지 않을까? 그 여름의 끝, 오롯한 둘만의 여행의 시작에 울려 퍼지는 노래. 자유와 환희 그리고 이별…. 청춘과 여름. 사랑의 경이로움을 아름다운 선율과 함께 선사하는 곡이다.

https://youtu.be/gVVhHjyC04k?si=HdBkhz2AlP-m3F7h



“지금의 그 슬픔 그 괴로움 모두 간직하렴. 네가 느꼈던 기쁨과 함께. “


올리버를 보낸 후 저물어 가는 여름밤 아버지가 아들에게 건네는 이야기. 자신에게 찾아왔던 사랑의 감정들을 오롯이 받아들이며 그것을 기억하고 애써 잊으려 하거나 마음을 괴롭히며 자신을 힘들게 하지 말라는 아버지의 이해와 위로가 담긴 말들이 사랑이 떠난 여름의 끝자락 엘리오의 상실감을 잘 보듬어준다.


빛. 색. 밝고 아름다운. 청춘의 열기. 향긋한 복숭아. 클래식. 80년대 팝송과 유로댄스.수프얀 스티븐스의 몽환적인 음악이 어우러진 OST의 향연… 그리고 티모시 살라메로 기억될 여름의 영화.

https://youtu.be/zO6sW9NAik8?si=pMX0ZUPMxt10Bp6l





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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