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이야기
한강의 소설 <채식주의자>의 표지를 장식한 에곤 실레의 <네 그루의 나무>는 붉은 황금빛으로 물들어버린 세상과 짙은 대지의 기운에 함락된 나무의 이미지를 보여준다. 붉게 타올라 절정에 이르지 못한 채 소멸하고 말라버리는 나무의 황량함과 우울함이 <채식주의자>란 단어가 주는 이미지와 상반되는 묘한 이질감을 불러일으킨다. 개정판 표지인 푸른 배경 속 활짝 핀 흰 꽃은 확연히 다른 이미지를 보여주고 있는데 재미있는 것은 책을 읽고 나면 이 두 이미지가 거부감 없이 마음속에서 동시에 받아들여진다는 것이다.
<채식주의자>, <몽고반점>, <나무 불꽃> 세 개의 단편으로 이루어진 소설은 어느 날 갑자기 육식을 거부한 영혜를 둘러싼 세 인물 (영혜의 남편, 영혜의 형부, 영혜의 언니 인혜)의 시선으로 각각 서술되고 있다. 첫 이야기 <채식주의자>에서 평범했던 여인 영혜는 꿈속에서 어두운 숲 속 떨어진 고깃덩어리를 먹고 있는 자신을 만난다. 온몸에 묻은 피와 이빨에 씹히던 날고기의 생생한 감촉과 함께 익숙하면서도 낯선 자신의 얼굴을 꿈에서 맞닥뜨린 후 그녀는 이전의 삶으로 돌아갈 수 없게 된다. 평범함 때문에 그녀를 아내로 선택했던 남편은 그녀를 이해할 수 없었고 그녀의 친정 식구들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인혜의 집들이를 구실로 모인 가족들은 영혜에게 육식을 강요하고 그 과정에서 아버지의 폭력에 맞닥트린 영혜는 손목을 긋는다.
이어지는 이야기 <몽고반점>에서 인혜의 남편은 아내에게서 처제의 몸에 남겨진 몽고반점에 대한 이야기 들은 후 꽃처럼 피어나는 영혜의 육체에 대한 열망에 사로잡힌다. 비디오 아트 작가인 그는 영혜를 대상으로 자신의 생각 속 이미지를 작품으로 남기기로 마음먹고 후배를 이용해 꽃으로 가득한 두 육체의 결합을 영상에 담는 작업을 감행하다 욕망을 이기지 못하고 자신이 대상이 되어 영혜의 육체와 결합하는 작품을 완성한다. 영혜의 집을 찾은 아내 인혜는 그것을 목격한다.
마지막 인혜의 이야기 <나무 불꽃>에서 남편과 헤어져 아이와 단둘이 남은 인혜는 친정 식구들과도 단절하고 정신병원에 있는 영혜를 홀로 부양한다. 영혜의 일들을 겪으며 인혜는 자신이 좋은 딸, 좋은 아내라는 틀 속에 자신을 가뒀다는 것을 각성한다. ’그녀는 삶을 살아본 적이 없었다. 다만 견뎌왔을 뿐이다.‘ 불면증에 시달리던 인혜는 자살의 충동을 느낀 어느 새벽의 아침, ‘박명 속에서 일제히 푸른 불길처럼 일어서던 나무들 속에서 무자비하고 서늘한 생명의 말을 듣는다.‘ 인혜에게는 여전히 지켜내야 할 것들이 남아있다.
한강의 <채식주의자>를 읽고 인간이 가하는 폭력에 대해 생각이 머물렀다. 개인이 개인에게 가하는 폭력, 가족이 개인에게 가하는 폭력, 사회가 개인에게 가하는 폭력으로 폭력의 범주는 넓혀지며 우리는 모두 폭력의 피해자인 동시에 가해자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게 된다.
인혜의 집들이 날 영혜에게 가해진 아버지의 폭력과 그 폭력에 동조한 남동생, 아버지의 폭력을 말리지 못한 가족 모두가 폭력의 가해자다. 남과 다르다는 이유로 약하다는 이유로 또 여자라는 이유로 사회가 가하는 폭력들은 우리 삶 곳곳에 만연해 의식할 틈 없이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것은 아닐까? 평범함이 그녀를 결혼 상대로 받아들인 이유였다는 남편의 이기적이고 무심한 마음과 행동 역시 폭력의 또 다른 모습이다. 어린 영혜를 아버지의 폭력으로부터 방관한 어린 인혜도 폭력의 가해자라는 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영혜 또한 어린 시절 자신의 팔을 문 개의 가혹한 죽임을 동정심 없이 바라보고 그 고기를 먹기까지 한 폭력의 가해자였다.
그렇다면 폭력에 관한 이야기라는 점에서 <몽고반점> 속 인혜의 남편과 영혜의 이야기는 어떻게 이해되어야 할까? 영혜는 이미 사람들의 이해를 넘어선 자신만의 세상에 집중하고 있는 이인 반면 인혜의 남편은 예술과 자신의 욕망 사이에 균형을 잃은 인물이란 생각이 들었다. 인혜의 신고로 경찰과 구급차가 들이닥쳤을 때 남편은 몸을 날려 자살로 그 상황을 피하려 한다. 인간적인 부끄러움과 공포를 느꼈다는 것은 자신의 잘못을 인지하고 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꽃들이 만개한 육체의 향연 속 한 인간의 주체할 수 없는 욕망 역시 또 다른 모습의 폭력일 수 있다.
책의 제목 <채식주의자>는 육식으로 상징되는 폭력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고 폭력적인 인간으로서의 삶을 거부하며 나무가 되겠다는 한 인간의 선택을 함축적으로 표현하고 있다는 생각을 해본다. 책의 마지막 앰뷸런스에 실려 가는 영혜와 영혜의 곁을 지키며 ‘현실이 깨어날 꿈이길‘ 바라는 인혜, 여름의 열기 속 활활 타오르는 도로변의 나무들, 그 초록의 불꽃들을 항의하듯 쏘아보는 인혜의 끈질긴 눈빛에서 작은 희망이나마 포기할 수 없는 마음의 옅은 불꽃을 꺼뜨릴 수 없다. 저녁노을 속 불타듯 말라가는 나무와 암술과 수술을 드러내며 활짝 피어난 꽃의 이미지가 겹쳐진다. <몽고반점> 속 육체에 만개한 역동적인 꽃, 그 생명의 에너지를 복기하며 폭력을 거부한 채 나무가 되어버린 새로운 생명과 영원한 평안을 얻은 영혜를 떠올려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