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컨 앤 에그

마치 지구로 이제 막 착륙한 외계인 같았던 날들

by 제쏘

1.

베이컨 앤 에그를 처음 해 먹은 것은 2015년 2월 베를린에서였다.


2.

당시의 나는 어떤 일로 인해 너무 지쳐 있었으며, 나 자신을 잘 돌보지 못했다.


수면이나 음식 등 기본적인 필요마저 무시하며 그 일을 해결하고자 몰두했지만, 슬프게도 그 일을 해결하는 것은 내 능력 밖이었고, 나는 그 일로 인해 상황이 더 나빠지지 않게 애를 쓰고 막는 것 밖에 할 수가 없었다.


그러다가, 어쨌거나 간접적으로는 그 일을 해결하기 위한 이유였지만, 아이러닉하게도 두달 간 직접적으로 그 일에서 조금 떨어져 있을 수 있는 시기가 왔고, 그 때가 바로 그 겨울이었다.


3.

나는 그때 일상적이라고 여겨지는 일을 하는 그 감각이 너무 생경해서 문득 눈물이 쏟아지곤 했다. 이를테면 나를 위해 요리를 한달지, 나를 위해 빨래를 한달지, 따뜻한 욕조에 몸을 담그고 있달지 하는 사소한 일들을 하는 내 모습은 마치 지구로 이제 막 착륙한 외계인 같았다. 익숙한 곳에서는 어쩔 수 없이 낯선 일들을 하다가, 낯선 곳에 와서 ‘익숙해야 할 것 같은’ 일을 하는 기분은 얼마나 낯설었는지, 혹은 익숙하지 않았는지, 혹은 둘 다 인지.


혹자는 둘 다 같은 말 아니냐고 물을 수도 있지만, 그 둘은 염연히 다르다. 누군가를 싫어하지 않는 다는 말과, 그 사람을 좋아한다는 것이 천지차이 인 것 처럼.


4.

아무튼 다른 나라를 거쳐 그 곳에 도착한 밤은 거의 우박이 내리는 밤이었다. 겪어 본 사람은 알 것이다. 유럽의 비 오는 겨울이 얼마나 뼈가 시리게 추운지. 설상가상 휴대폰 배터리까지 없어 나는 정말 울고 싶은 기분으로 숙소로 향하는 초행길을 혼자 헤메다가 집에 들어갔다.


얼마나 지쳤던지 거의 3일을 칩거하며 문밖출입을 삼갔다. 몸과 정신의 안정을 찾는 게 당시의 나에게는 그렇게나 버거운 일이었다.


5.

삼일 째 되는 날 아침, 배가 고파 못견디겠어서 밖으로 나왔다. 걸어서 5분 거리에 마트가 있었다. REWE 라는 마트였는데 독일어로는 레베라고 불렀다. 그 곳에서 익숙해 보이는 식재료를 샀다. 계란, 베이컨, 우유, 요거트, 양파, 감자. 베를린은 서울보다 물가가 쌌다. 그리고 맥주랑 와인이 물 보다 싸서 맥주랑 와인도 샀다. 하리보랑 쿠기도 샀다. 이 모든 것을 쇼핑할 때 레베에서는 파이스트의 게이트 키퍼가 나왔는데, 그걸 듣자마자 소름이 돋았다. 너무 좋아서. 아무튼 아사할 뻔 한 걸 참고 장을 봐 계산을 하는데 17유로 정도였나. 풀어놓으니 산더미였다.


집에 와서 물을 끓이고 감자를 삶고, 팬을 꺼내 버터를 두르고 베이컨 앤 에그를 만들었다.

식빵도 토스터기에 넣고, 양파도 볶았다. 요거트도 꺼냈다. 우유도 따랐다.

요리가 익숙치 않아, 한 상 거하게 차리고 보니 한시간 반 정도가 지나 있었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하면 이상한 이야기지만, 이걸 한시간 반 동안 차려서 먹으면서도 울었던 것 같다. 그리고 얼마나 고칼로리였던지 하루에 이런식으로 한 끼만 만들어 먹어도 충분했고, 행복하기까지 할 지경이었다.


6.

언제부터였는진 잘 모르겠다. 그치만 이 때도 잘 하든 못 하든 요리를 사랑했다. 요리를 할 때 마다 삶과 연관된 철학들도 깨우쳤다.


일단 재료가 좋아야 한다는 것. 익히느라 오래걸리는 것을 먼저 해야 나머지것들이 평가절하되지 않는다는 것. 아주 약간의 디테일에 따라 맛이 크게 차이난다는 것. 약간의 술이 필요하다는 것. 과유불급이라는 것. 빨리 준비되는 건 대부분 몸에 해롭다는 것. 어울리는 재료가 있다는 것. 눈으로 보는것도 중요하다는 것. 여러번 하면 빨라지고 익숙해 진다는 것. 남을 위해 할 때 더 즐겁다는 것. 항상 마무리가 힘들다는 것. 마무리는 빠를수록 좋다는 것. 마지막은 달콤해야 한다는 것.


7.

아무튼 이 베이컨 앤 에그는 나에게는 ‘나 자신에게 집중하여 나를 돌본다’는 느낌을 주는 나의 소울푸드로 자리잡았는데, 여기에 얽힌 또 다른 이야기도 있다. 그건 오믈렛 편으로 미뤄두고, 부록에는 몇가지 팁을 적어두겠다. 불을 써서 요리를 한다는 게 처음엔 어색하고 느릴 수 있다. 그렇지만 괜찮다. 그런 어색한 나의 모습도 나름대로 사랑스럽게 봐주려면 또 봐줄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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