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트밀

나는 정말 많이 배고팠다.

by 제쏘

1.

오트밀을 처음 먹어본 것은 호주 워킹홀리데이 3주 차 아침이었다.

그리고 그때 나는 배고팠다. 정말 많이 배고팠다.


2.

당시 유학을 준비하던 스물 두살의 나는, 캐나다에 있는 맥길 대학에서 음악과 신경과학을 접목시켜 연구하는 다니엘 레비틴 교수의 연구실에 무작정 찾아가 볼 패기 넘치는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그리고 거기서 무급 테크니션이라도 좋으니 잠시라도 일을 해보고 싶었다. 당시는 유학만이 나의 유일한 다음 스텝이었기 때문에, 유학을 가기 전 내가 유학을 가서 경험 할 것을 미리 경험 해 보고 이게 정말 내가 원하던 것인지 검증해보며 시행착오를 줄이고 싶었다. 그리고 이게 정말 내가 원하던 거라면, 그 곳에서 유학 할 학비도 벌면서 일 년 정도 영어 공부도 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캐나다 워킹 홀리데이를 두번이나 지원했는데, 희한하게도 아무 결격사유가 없는데 두번이나 떨어졌다. 그렇지만 나는 이미 워킹 홀리데이를 마친 뒤 듀얼디그리로 미국에서 공부하고, 미국이나 캐나다로 대학원을 가는 시나리오까지 전부 다 계획해 두고 준비해 두고 있었기 때문에 더 이상의 학기를 한국에서 다니는 것은 불필요했다. '그렇다면 영어 공부 하면서 학비나 벌자. 그리고 젊었을 때 나를 극한의 상황에 몰아 고생해보고, 그 과정에서 성장할 나를 기대해보는거야!’하는 마음을 가지고, 지원만 하면 붙어서 갈 수 있는 호주 워킹홀리데이에 즉흥적으로 지원했다. 나름대로 '가야금도 가져가서 거리 공연도 해 봐야지' 하며 신나 보이는 계획도 많이 세웠다. 결과는 당연히 합격이었고, 나는 2월에 지원하여, 5월 4일 어린이날 전 날, 호주로 출국했다.


3.

당시 나는 도착하자 마자 3일간 예약해 둔 백패커에서 지냈다. 여성전용 룸 12인실을 예약했지만, 하루에 3만원도 넘게 지불해야 했다. 백만원 들고 호주에 온 나는, 그 방에서 오래 살 수는 없었다. 그랬다가는 아무것도 안 먹고 숨만 쉬어도 한 달 만에 가져온 돈이 동날 것이었다. 그래서 거기서 머무르는 3일동안, 나는 필사적으로 쉐어를 구했다.


한국에서는 개방적이고 자유분방한 성격이라는 이야기를 꽤 들어 왔던 나다. 그러나 그건 어디까지나 한국, 그리고 내 친구들 기준이었다. 남녀칠세부동석의 유교 국가에서 나고 자란 나에게는, 남녀가 같은 플랫을 쓴다는 것은 타협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그래서 결국 여자만 사는 플랫만 필터링 해서 보게 되었고, 여기서 선택의 여지가 한 번 줄어들었다.


그리고 나는 돈이 별로 없었던 데다가, 언제 일을 구할지도 알 수 없었다. 빨리 일을 구하면 되지 않느냐고? 그건 장담 할 수 없었다. 대학교 2년을 갓 마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레스토랑에서 일을 하거나, 농장에서 일을 하거나, 아이를 돌보는 일 뿐이었는데, 그 중 영어 실력을 조금이라도 늘릴 수 있는 일은 레스토랑에서 일을 하는 것이었다. 그럼 가야금 연주는 어떻게 됐냐고? 호주와 파푸아뉴기니는 자연보호어쩌구 국가라서 나무로 된 것은 반입할 수 없단다. 비록 죽은 나무라고 해도 말이다. 그래서 가야금을 못 들고 왔다. 아무튼 내가 이 곳에 온 목적 중 하나인 영어실력을 늘리기 위해서는, 여러 옵션 중 레스토랑에서 일 하는 것만이 의미가 있었다. 그런데 내가 간과한 것이 하나 있다. 5월은 호주의 겨울이 시작되는 달이라는 거다. 즉, 호주의 비수기가 시작되고 있었고, 나는 50장이 넘는 이력서를 레스토랑에 돌리면서, “이런 비수기 상황에서는 원래 일하던 사람들도 직업을 잃어요.” 라는 말을 50번 들었다. 아무튼 그래서, 나는 저렴한 플랫을 구할 수 밖에 없었다. 여기서 또 한번 선택의 여지가 줄어들었다.


하루는 시드니 시내 중심에서 아주 조금 떨어진 외곽에, 여성만 살고 가격이 상대적으로 저렴한 플랫을 보러 갔다. 걸어서 갈 수 있을 정도로 가까웠지만, 나는 그 곳을 보러 가는 길에 벌써 몸이 얼어붙고 말았다. 그 넓은 땅에 내 시야에 들어오는 사람이 나 밖에 없는 것이다. 정말 조금만 벗어났을 뿐인데! 거기서 깨달았다. 왜 사람들이 “여자는 시티 중심에 사는 것이 안전해."라고 이야기 했는지를. 그 길로 나는 플랫을 보는 것을 바로 취소하고 다시 나의 백패커로 돌아왔다. 여기서 또 한번 선택의 여지가 줄어들었다.


결국 나는, 1) 여성끼리만 지낼 수 있고, 2) 가격이 저렴하며, 3) 시내 중심에 있는 플랫을 구해야만 했고, 그렇게 검색 한 결과 딱 하나의 플랫을 찾을 수 있었다.


4.

위치는 좋았다. 시드니 시내 한복판에 있는 월드타워라는 건물의 31층에 있는 플랫이었다.


나는 일단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2주일을 계약했다. 어쩔 수가 없었다. 백팩커 마지막 날이었다. (호주는 월급이 아닌 주급 단위를 사용하고, 따라서 렌트도 주마다 월세가 아닌 주세(?)를 지불해야 한다.) 그리고는 바로 알려준 위치로 짐을 가지고 향했다.


플랫은 정말 엄청났다. 여러가지 의미로 엄청났다. 일단은 방 하나짜리 오피스텔에 여자 8명이 살아야 했다. 작은 방 하나에 이층 침대 두개, 방보다 작은 거실에 이층 침대 하나, 그것보다 작은 발코니에 이층 침대 하나. 이렇게 10평도 안되어 보이는 집에 이층 침대 4개를 두고 한국 여자 서넛, 일본 여자 두셋, 영국 여자 하나까지 여덟명의 여자가 함께 살고 있었다. 물론 짐을 푸는 건 언감생심 상상도 할 수 없어 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렌트가 일주일에 15만원 정도, 그러니까 한 달에 60만원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그렇지만 시내 한복판에 있는 높은 건물의 높은 층인 덕분에, 발코니에서 보는 뷰는 또 다른 의미로 엄청났다. 정말 엄청나게 아름다웠다. 나는 그 엄청남들의 간극에서 일단은 지낼 곳을 구했다는 안도감에 쓰러지듯 잠이 들었다. 삐걱거리는 이층 침대의 2층에서, 튀어 나온 12개의 스프링들을 온 몸으로 느끼면서.


5.

그렇게 그 플랫에서의 생활이 시작되었다. 월드 타워 지하에는 '콜스'라는, 우리나라로 치면 이마트 정도 되는 대형마트가 있었는데, 나는 마음놓고 쓸 돈도 없으면서 그 곳에 자주 가서 사람과 음식을 구경하곤 했다. 여러 다채로운 음식 중에서 내가 사는 건 세가지 뿐이었다. 씻은 당근 한 봉지, 흰 우유 2리터, 식빵 한 줄. 그 세가지의 공통점이 뭐냐고? 호주에서 가장 저렴한 식재료라서, 단돈 1불에 살 수 있다는 거다.


사실 저 세가지 식재료 중 원래부터 싫어했던 음식이 있었는데, 바로 당근이었다. 엄청나게 싫어했다. 진짜 한국에서는 입에도 안 댔다. 근데 거기서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당근은 딱딱했고 뱃속에 오래 머물러서 허기를 채워주었다. 그리고 오래 씹을 수도 있었다. 어느 날은 허기를 달래며 당근을 씹다가 엄마와 스카이프를 했는데, 사정을 모르는 엄마는 “어머 어쩐 일로 당근을 다 먹어?” 하며 깜짝 놀라셨다. 나는 대충 비타민A 핑계를 대며 얼버무렸으나, 이 다음 들려오는 엄마의 말을 듣고는 인터넷 연결이 안좋다는 핑계를 대고 바로 통화를 종료해야만 했다. 눈물을 참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너 좋아하는 커피도 좀 마시고 그러니? 너무 아끼면서 지내지 말고 여유롭게 지내. 돈 필요하면 엄마한테 이야기 하고.”


6.

커피라니요. 당근, 우유, 식빵을 제외한 요리조차 못 먹은 지가 한참 되었는데, 커피라니요. 당시 나는 영양이 부족해서 항상 손발이 뱀파이어처럼 차가울 지경이었는데, 커피라니요.


물론 부모님께 이야기 하면 부모님이 넉넉히 돈을 보내 주셨을거다. 그런데 이 곳에 오면서 나는 나 자신과 약속을 했다. 나는 극한의 상황 속에서 성장할 나 자신을 기대하고 이 곳에 온 것이기 때문에, 내가 가지고 온 돈 이상으로 한국에서 돈을 받지 않기로 굳은 결심을 하였다. 그리고 그 과정 속에서 부모님을 걱정시키지 않기로도 약속했다. 그래야지 이 경험이 의미가 있으니까. 그래서 그것과 위배되는 행동을 할 수는 없었다.


아무튼, 그 커피 대화 이후로 나는 더 필사적으로 일을 찾아보기 시작했고, 주류를 취급하는 레스토랑에서 합법적으로 일할 수 있는 자격증인 RSA도 피같은 돈 20만원을 지불하여 시험을 보고 취득했다. 그래도 시드니 시내에서는 일자리를 구할 수 없었고, 결국 지하철을 타고 40분인가를 가야만 출근할 수 있는, 한 현지인이 운영하는 카페에 아침 일찍 키친핸드로 면접을 보러 갔다.


7.

그 카페에서 나는 트라이얼로 오전에 세시간인가 일을 해 보았는데, 한국인 여자 하나와 외국인 여자 하나가 있었던 것 같다. 세시간 남짓 한 시간동안 나는 생전 처음으로 샌드위치에 들어갈 토마토를 잘라 보았다. 그리고 사실 토마토 자르면서 내 새끼손가락도 살짝 잘랐다. 근데 면접 떨어질까봐 티는 안 내고 몰래 지혈도 했다. 그리고 포치드 에그, 그러니까 수란도 처음 만들어봤다. 한국에서 대학생활과 과외만 하던 나에게는 모든 것이 처음 경험 해 보는 것이었고, 이것은 또 이것 나름대로 흥미로웠고 나쁘지 않았다.


한시간 정도였을까. 일을 하다가 잠깐 숨을 돌리는 시간에 다른 한국인 여자가 스텝밀 개념의 간단한 아침을 내게 주었다. 바나나와 시나몬이 들어간 죽 같은 걸 먹으며 나는, 짧게는 이주 만에 먹어보는 요리에, 길게는 생전 처음 먹어보는 이 음식에 완전히 매료되어 눈이 동그래지며 물었다. "What is it? It's so delicious!"


무슨무슨 임금님이 피난길에선가 목어를 먹고, 너무 맛있어서 금어라고 이름을 하사했다는 그 스토리와 매한가지였다. 나도 그 상황에서는 그 음식이 세상에서 제일 맛있게 느껴졌다. 열심히 먹는 나를 보며, 동료들이 웃으며 말했다. "이건 오트밀 포리진데, 이게 그렇게 맛있어?"


8.

그렇게 오트밀 포리지를 먹고는, 호주인 사장은 나의 동료들에게 나에 대한 평가를 물었다. 동료들은 처음 일을 해본 것 치고는 나쁘지 않다고, 성실하다고 말했고, 사장은 나를 따로 불러 처우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너는 이제 일을 처음 하니, 시급을 10불 줄게."


그 말을 들은 나는 어이가 없어서 화가 날 지경이었다. 당시 호주의 최저시급은 20불 정도였기 때문에 10불의 시급은 불법이었다. 게다가 나는 RSA도 취득하여 불법으로 일 할 이유가 전혀 없었고, 영어도 그럭 저럭 할 수 있었다. 그런데 불현듯 전에 들었던 이야기가 생각났다. 한국인 사장들이 호주에서 영어를 못하는 한국인들에게 최저임금의 절반 정도 금액인 10불 정도만 주고 일을 시킨다고. 그래서 호주인들도 한국인들에게는 최저임금의 절반 수준만 주면서 일을 시킨다고. 그래도 한국인들은 일을 할 걸 아니까 벌어지는 일들이라고.


나는 너무 벙쪄서 어이가 없었지만, 일단 그 곳에서는 생각해보겠다고 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곰곰이 생각했다. '나에게 최저임금 이하의 시급을 주는 것은 불법이다. 더군다나 나는 불법 체류자도 아니고, 영어도 할 줄 알고, RSA까지 취득했다. 불법적으로 일 해야 할 이유가 단 하나도 없다. 그럼에도 이 제안을 받아들인다면, 이 곳에서 한국인들을 대하는 방식에 있어 좋지 않은 선례에 더욱 일조하는 것이다.' 라고 결론을 내고, 이대로 사장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그리고 사장은 알았다고, 다른 일을 찾아보라며 답장이 왔다.


9.

그 뒤에 어떻게 됐냐고? 결국에는 시드니에 이주 더 머무르다가, 브리즈번으로 넘어갔다. 그리고 그 곳에서 이주 더 머무르며 이주 내내 호주의 우기를 경험하고는, 결국 한국으로 돌아왔다. 돌아와서는 호주의 최저 임금보다 훨씬 높은 시급의 과외를 하며 돈도 모으고, U.S Airforce 안의 레스토랑에서 웨이트리스로 3개월간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내가 원하는 영어 경험도 쌓았으며, 두둑하게 받은 팁을 현금으로 가지고 미국으로 떠났다는 후문. 그 곳에서의 경험도 정말 재밌었는데, 또 글로 쓸 기회가 있을 것이다. 아마 오믈렛 편에서?


10.

아무튼 내게 오트밀은 눈물 젖은 음식이지만, 나는 앞의 그 임금처럼 금어를 다시 먹어보고는 별로라고 도로 목어로 만들어서 도루묵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다시는 안먹는, 그런 사람은 아니다. 오히려 더욱 자주 먹고, 그 때 마다 잔잔한 행복이 내 안에 일렁이는 것을 즐긴다. 비록 그 곳에서 한달 반 남짓 한 시간동안 더할 수 없이 막막하고 힘들었고 많이 울었지만, 아름다운 추억이 더 많기 때문이다.


일본인 플랫메이트 카나와 얼마 남지 않은 피같은 돈으로 피셔스 마켓에 가서 생 연어와 굴, 새우튀김 등을 최대한 조금씩 사서 밖에 나왔는데 갈매기에게 갈취당하고 미친듯이 웃었던 기억. 일을 못 구해서 우울하게 앉아 있는 나를 일으켜서 버스 태워 본다이 비치 해변에 데려가서 눕히고 자기도 내 옆에 나란히 누워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해 주던 카나의 목소리. 브리즈번으로 가는 16시간짜리 야간 버스를 타는 나를 배웅해주다가 눈물을 흘리며 다시 월드타워로 돌아가자며 조르던 카나의 얼굴. 아보카도를 잘라서 간장에 찍어먹으면 참치 회 맛이 난다는 것을 알려주었던, 나보다 어렸지만 나보다 언니같았던 내 친구 카나.


그리고 브리즈번으로 가는 야간버스에서 본, 내 심장을 터질 것 처럼 뛰게 만들었던 쏟아질 듯한 별과 은하수. 브리즈번에 도착해서 지냈던 백패커에서 만난 이스라엘 친구 Yael와 이탈리아 친구 Alessia, 그들과 했던 욕설과 웃음이 난무하던 카드게임, 그들과 나누었던 부드러운 대화, 그들이 내게 써 준 편지, 친구가 선물했는데 고장났다는 목걸이를 고쳐주자 뛸 듯이 기뻐하며 나를 껴안던 Alessia, 떠날 때 '한번 안아보자'며 나를 안아주던 그 친구들의 따뜻함을 아직도 아름답게 기억한다.


11.

부록에는 내가 아침으로 자주 먹는 오트밀의 레시피를 적어두겠다. 몇 가지 방법 중 그 날 기분에 따라 골라 사용하는데, 하나같이 간단하다. 오트밀은 나의 추억의 음식이기도 하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식이섬유와 단백질이 풍부한 곡물이기도 하다.


Who knows? 한번 먹어보면, 당신에게도 오트밀과 관련한 재미있는 추억거리가 생기게 될 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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