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프레제

아니, 그 빅뱅 말고요.

by 제쏘

1.

카프레제를 사랑한다.


2.

토마토를 좋아하기 시작한 게 언제부터였을까. ‘토마토를 좋아하는 나’에 대한 가장 오래 전 기억은, 내가 예닐곱살 때 엄마의 말을 들었을 때다.


“너 토마토 좋아하잖아.” 하는 그 말을 듣고는 ‘엥? 내가 토마토를 좋아하나? 그랬나? 그랬던 것 같기도 하고.’ 하는 마음으로 잠시 혼란스러웠던 순간을 기억한다. 왜인지 뿌듯해보이는 표정으로 토마토를 좋아하는 나를 주장(?)하며 내게 토마토 설탕절임을 내미는 엄마의 얼굴 앞에서, 나는 일단 “응! 맞아! 토마토 좋아!”라고 대답하고는 토마토를 열심히 먹었다. 그러고는 방에 돌아와서 내가 정말 토마토를 좋아했는지 한동안 곰곰히 생각을 했다.


그렇지만, 고민을 한 그 순간부터 나는 토마토를 좋아할 운명이었다. 그렇게 고민하고 토마토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결론을 내기엔, 이미 나는 토마토와 정이 들어 토마토가 점점 더 좋아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마치 십대 시절, 누군가를 좋아하는지 아리송한 마음을 친구에게 고백함과 동시에 그 좋아하는 마음이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커져버리는 것처럼 나는 그렇게 반은 타의로, 반은 자기주도적으로 토마토를 좋아해버리게 되었다.


3.

그러다 내가 좋아하는 토마토의 낯설고도 색다른 모습을 마주 한 것은 갓 스무살이 된 무렵 간 한 프랜차이즈 패밀리 레스토랑의 샐러드바에서였다. 토마토 슬라이스와 모짜렐라 치즈, 발사믹 글레이즈드가 어우러진 그 모습에서 나는 이상하게도 어떤 성스러움을 느꼈다. 지금 와서 생각 해 보면, 까맣게 빛나는 발사믹 글레이즈드와 토마토의 붉은 색, 그리고 모짜렐라의 흰색을 보며 검은 나의 죄를 예수님의 붉은 보혈로 씻어 눈처럼 희게 되었다는 기독교식 색채적 표현을 떠올렸던 것 같다. 그리고 그 위에 살포시 올라간 바질의 초록색까지, 내 마음에 숭고한 평화를 주기에 충분했다.


게다가 그 맛은 또 어떠한가. 간단한 요리일수록 신선한 재료가 중요하고, 또 신선한 재료를 쓰면 재료 본연의 맛을 느낄 수 있을 때 그 장점이 극대화된다고 생각하는데, 그 대표적인 음식이 바로 카프레제다. 아삭하고 상큼한 토마토와 쫄깃 담백하고 고소한 치즈, 적당히 달콤한 발사믹 글레이즈드에 향과 풍미를 더해주는 바질 잎까지. 혀의 감각에 집중해 음미하며 먹을수록 기분이 좋아지는, 맑은 음식.



4.

카프레제를 직접 만들어 먹기 시작 한 후부터, 나의 카프레제 요리방식은 상황과 취향에 따라 조금씩 변모했다.


처음에는 정석대로 큰 토마토와 모짜렐라 그리고 발사믹 글레이즈드를 이용했다. 그러나 큰 토마토 슬라이스를 먹기가 곤란하다는 이유로 방울토마토를 반으로 슬라이스 한 것으로 대체하였다. 그리고 씨앗부터 키우고 있던 바질이 있어 잎을 뜯어 씻어 그 위에 올리곤 했다. 그러고 나서는 한번은 모짜렐라가 없어서 벨큐브 크림치즈를 이용 해 봤는데 생각보다 너무 맛있어서 정착하고 말았다. 그래서 지금 나의 궁극의 카프레제 레시피는, 방울토마토 + 크림치즈 + 발사믹 글레이즈드 + 바질 잎이 조합된 방식이다.


5.

내일 아침에는 카프레제를 먹어야지. 냉장고에 있는 재료를 활용하기 위해 토마토 대신 자두로, 바질 잎 대신 바질페스토를 이용 해 봐야겠다. 이렇게 꼭 필요한 재료를 사야한다는 강박을 버리고 있는 재료를 적어두고 그것으로 창의성을 발휘해서 변형 해 보는 것도 요리의 즐거움 중 하나다. 그러다가 늘 더 맛있는 레시피를 발견하게 되고, 결국 자신만의 궁극의 레시피가 마치 팽창하는 우주의 끝처럼 계속 확장된다.


부록에는 나의 카프레제 사진과 레시피를 적어두겠다. 이 글을 읽는 당신에게도 카프레제의 빅뱅이 조만간 일어나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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